사진=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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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계·기업의 빚이 사상 처음 4500조원을 넘어섰다. 한국은행은 불어난 민간의 빚더미가 신용·유동성 위기로 번질 수 있는 만큼 금리 인상으로 부채 증가 속도를 억제해야 한다고 진단했다.

한은이 24일 발표한 ‘2022년 3월 금융안정상황 보고서’를 보면 작년 말 가계와 기업 부채를 합산한 민간부채(자금순환표 기준) 추정치는 4540조원으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민간부채는 2020년 말보다 409조원 늘어난 것으로 분석됐다. 지난해 말 가계부채(가계빚)는 2180조원, 기업부채(기업빚)는 2360조원으로 각각 2020년 말보다 181조7000억원, 227조6000억원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명목 국내총생산(GDP) 민간부채 비율은 220.8%로 전년 말보다 7.1%포인트 상승했다. GDP 대비 가계부채와 기업부채 비율은 각각 106.1%, 114.7%로 전년 말보다 2.7%포인트, 4.4%포인트 상승했다. 민간부채, 가계부채, 기업부채 비율은 모두 관련 통계를 작성한 2000년 1분기 말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가계부채가 불어난 것은 치솟는 집값을 마련하는 동시에 공모주 청약 등을 위해 가계가 ‘빚투(빚내서 투자)’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음)’에 나선 결과다. 코로나19 사태로 현금창출력이 약해진 자영업자와 중소기업이 차입금을 늘리면서 기업부채도 늘었다.

처분가능소득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173.4%로 전년 말보다 4.3%포인트 올랐다. 빚 상환 부담이 커졌다는 의미다. 안팎으로는 치솟는 가계·기업의 빚이 소비와 투자를 억누를 수 있다는 평가가 많다. 작년 말 가계부채 비율(106.1%)은 국제결제은행(BIS)의 가계부채 비율 임계치(80%)를 훌쩍 넘어섰다. 가계부채가 임계치를 웃돌면 이자·원리금 상환 부담이 커지면서 가계가 씀씀이를 줄인다는 분석이다.

한은은 가계부채 증가 속도를 억제하기 위한 가장 효과적 대책으로 금리인상을 꼽았다. 한은은 이날 보고서에서 "가계대출 증가 억제효과는 금리 수준이 높을수록 더 확대된다"고 밝혔다. 한은의 분석에 따르면 2012년 1분기~2021년 3분기 대출금리가 평균 연 3%일 경우 1분기 동안 가계대출이 34조1000억원 불어나는 것으로 집계됐다. 하지만 대출금리가 연 3.5%로 오를 경우 가계대출 증가폭이 26조3000억원으로 다소 줄어든다. 대출금리가 연 4.0%까지 오르면 증가폭은 다시 16조원으로 쪼그라든다.

정부가 추진하는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도 가계대출 증가세를 꺾겠지만 취약계층을 유동성 위기로 몰아갈 수 있다고 경고했다. DSR은 소득 대비 갚아야 할 원리금 비율이다. 정부는 올 1월부터 총대출액이 2억원 이상일 경우(2단계), 오는 7월부터는 1억원 이상일 경우(3단계) 차주 단위 DSR 비율을 40%까지 적용할 방침이다.

한은은 오는 7월부터 시행되는 3단계 규제 적용으로 신규 가계대출이 13.4% 줄어 가계대출 증가율은 4.5%포인트 하락할 것으로 분석했다. 하지만 DSR 규제를 받지 않는 부문으로 대출이 몰리며 풍선효과를 유발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여기에 소득수준과 신용도가 낮은 실수요자나 취약계층의 유동성 위험이 커질 수 있다고 봤다. DSR규제 여파로 중·저신용자 일부는 제2금융권에서도 밀려나며 대부업으로 향하고 있다는 진단도 나왔다. 한은에 따르면 신용점수가 665∼839점인 중신용자와 664점 이하인 저신용자가 상호금융이나 카드사 등 비은행금융기관에서 대부업으로 이동해 새로 대출받은 금액은 2021년 3분기 기준 각각 1700억원, 1900억원으로 집계됐다. 1년 전보다 각각 1000억원, 1600억원 늘었다.

김익환 기자 lovep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