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가 국내 통신망에서 대량의 트래픽을 유발하면서 망 투자 의무는 거부하고 있어 넷플릭스를 구독하지 않는 이들에게 비용 부담이 전가되고 있다는 해외 전문가의 지적이 나왔다.

"넷플릭스 보는 500만명 위해 2300만명이 비용 부담"

로슬린 레이튼 미국 포브스지 선임칼럼니스트 겸 덴마크 올보르대 박사는 국내 기자들과 온라인 간담회를 열고 "현재 구조는 넷플릭스 구독자 500만명을 위해 통신서비스에 가입한 2300만명에게 공통으로 비용 부담을 지우는 식"이라고 지적했다.

레이튼 박사는 인터넷 규제 경제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은 망 사용료 분야 전문가다. 2016년엔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인수위원으로 활동하며 미 연방통신위원회(FCC) 정책 수립에 관여했다.
그는 "통신사 이용자 중 일부만 넷플릭스를 이용하는데, 통신사는 넷플릭스의 트래픽 비중 때문에 망을 증설해야 한다"며 "결국 넷플릭스를 보지 않는 나머지 망 사용자도 넷플릭스 스트리밍에 들어가는 비용을 부담하는 문제가 있어 이용자 입장에서 공정하지 않은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오픈커넥트, 콘텐츠 생태계에 도움 안 돼"

레이튼 박사는 넷플릭스가 콘텐츠 트래픽을 줄일 수 있다고 그간 주장해온 오픈커넥트(OCA) 기술의 공공 효용성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했다. 넷플릭스의 오픈커넥트는 인터넷서비스기업(ISP)이 근거리 넷플릭스의 OCA에 직접 연결하거나 OCA를 통신망 내에 분산 설치하는 구조다.

넷플릭스는 이 기술이 트래픽 양을 약 95% 줄일 수 있다고 주장해왔다. 지금까지 각국 주요 통신사가 이를 확인 검증한 사례는 없다.

레이튼 박사는 "OCA는 넷플릭스의 이윤을 극대화하지만 다른 콘텐츠 사업자(CP)와의 경쟁을 저해하는 성격이 있다"고 지적했다. OCA는 오로지 넷플릭스 콘텐츠 전송에만 쓰이는데, ISP가 망 내 물리적 공간에 OCA를 배정할 경우 그만큼 다른 CP가 쓸 수 있는 공간은 없어진다는 얘기다.

그는 "OCA 설치 논리를 그대로 따르면 망 사업자가 모든 콘텐츠 사업자로부터 이 같은 장비를 받아 써야 할 것"이라며 "이 경우 사실상 망 운영이 불가능해진다"고 했다.

"CP별 망 투자 부담 차별화해야"

레이튼 박사는 망 투자 분담 의무를 지울 때 콘텐츠 사업자의 규모와 트래픽 비중 등을 따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중소형 사업자에게까지 망 투자 분담 의무를 일괄 적용하면 중소규모 CP들의 성장 동력이 떨어질 수 있어서다.

그는 "망 이용료는 기성·대형 스트리밍 사업자를 대상으로 생각해야 한다"며 "한국이 만약 망 이용료를 정책적으로 법제화할 것이라면 중소형 사업자에게는 부과하지 않는 조항을 마련해 시장의 우려를 해소해야 한다"고 말했다. 통신업계에 따르면 이동통신 기준 세계 트래픽 발생량의 40%가 소수의 글로벌 CP에 의해 발생한다.

세계 통신사 모임도 "망 투자의무 분담 필요"

넷플릭스는 24일 레이튼 박사의 의견에 대해 "망 이용료 논의는 콘텐츠 전송의 질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한국 중소규모 CP들의 혁신역량을 저해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해외 다른 ISP들도 넷플릭스에 망 이용대가를 요구하고 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했다. 국내에서 세계 최초로 벌어지고 있는 SK브로드밴드와 넷플릭스간 망 이용대가 관련 소송과 비슷한 소송건은 아직 없다는 설명이다.

콘텐츠업계에선 비슷한 갈등이 언제든 또 터질 수 있다는 예상이 나온다. 지난달엔 도이치텔레콤(독일)·오랑주(프랑스)·텔레포니카(스페인)·보다폰(영국) 등 유럽 4대 통신사 최고경영자(CEO)들이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를 통해 CP에 망 투자의무 분담을 요구하는 공동 성명을 냈다.

유럽 4대 통신사들은 "동영상 스트리밍 기업 등이 인터넷 인프라에 무임승차하고 있다"고 성명을 통해 알렸다. 코로나19 이후 콘텐츠 수요가 폭증해 넷플릭스 등이 이득을 보는 동안 통신사들은 인터넷망 증설에 막대한 비용 투자가 필요했다는 설명이다.

이달 초엔 세계이동통신사업자연합회(GSMA)가 넷플릭스, 유튜브 등 글로벌 콘텐츠 기업(CP)들도 데이터 전송망 투자를 분담할 책임이 있다는 데에 의견을 모았다. 국내외 통신사가 CP의 망 투자 필요성에 대해 공식 입장을 결정한 최초 사례다. GSMA는 세계 220여 개국에 걸쳐 통신 사업자 750곳이 참여한다.

오는 5월 소송전 2차 변론

넷플릭스는 작년부터 SK브로드밴드와 망사용료 관련 법정 다툼을 벌이고 있다. 넷플릭스는 오픈커넥트로 트래픽을 줄일 수 있으니 망 사용료를 내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SK브로드밴드는 2018년 6월부터 넷플릭스에 전용회선을 제공하고 있으니 넷플릭스가 이에 대한 제값을 내야 한다고 보고 있다. 넷플릭스의 데이터 이용량이 막대해 일반망을 쓰면 데이터 병목현상이 일어나서다.

이를 두고 SK브로드밴드가 2019년 방송통신위원회에 협상 중재 신청을 했지만 넷플릭스가 이를 거부하고 2019년 소송을 제기했다.

한국 법원은 작년 6월 말 1심 판결에서 SK브로드밴드의 손을 들어줬다. 넷플릭스는 판결에 불복해 지난해 7월 항소를 제기했고. SK브로드밴드는 같은 해 9월 반소(맞소송)로 맞서고 있다. 지난 16일엔 항소심 첫 변론기일이 열렸다. 양사의 망 이용대가 소송전 2차 변론기일은 오는 5월18일로 예정돼 있다.

선한결 기자 alwa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