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드리히 '인생의 단계들'
다양한 연령대의 인물들
유년·청소년·성인·노년 상징
지평선 밖으로 향하거나
오랜 항해에서 귀항하는 배
인간의 여정 나타내
중앙에 배치된 두 아이
미래 세대 주인공 강조한 것
![카스파르 다비드 프리드리히의 걸작 ‘인생의 단계들’](https://img.hankyung.com/photo/202203/AA.29368320.1.jpg)
그림의 배경은 프리드리히가 태어난 독일 북동부 그라이프스발트 근처 우트키에크의 해안가 마을이다. 하늘이 노을빛으로 물든 바다에는 다섯 척의 배가 떠 있고,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곶의 바위 언덕에는 5명의 인물이 등장했다. 이들은 실존 인물로, 프리드리히와 그의 가족이다. 그림 왼쪽부터 모피 코트와 검은 모자를 쓴 노인이 지팡이를 짚고 스웨덴 국기를 가지고 노는 아이들을 향해 걸어가고 있다. 관객에게 등을 돌린 늙은 남자는 프리드리히 자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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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를 항해하는 배 다섯 척과 해안가에 등장한 인물 5명의 숫자가 같은데 이는 우연의 일치일까, 의도한 것일까? 각각 다른 위치에 있는 범선 다섯 척은 항구로 들어오는 중일까, 먼바다로 떠나는 것일까? 그림의 중심에 스웨덴 국기로 장난을 치는 두 아이를 배치한 의도는 무엇일까? 화면 중앙에 위치한 가장 큰 범선의 돛대는 십자가 형태와 유사하고 꼭대기의 깃발이 스웨덴 국기와 일치하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이렇듯 신비스러운 상징으로 가득 찬 그림의 수수께끼를 풀어보자.
먼저 바다는 인간의 전 생애를 상징한다. 흔히 인생을 거친 바다를 항해하는 배에 비유하지 않던가. 따라서 5척의 범선은 5명의 인물을 상징한다. 크기, 모양, 위치가 각각 다른 범선들은 출생에서 죽음에 이르는 인생의 여러 단계를 상징한다. 노인과 젊은 남자, 소녀, 두 아이 등 다양한 연령대 인물들은 유년기, 청소년기, 성인기, 노년기를 상징한다. 인생이라는 바다를 처음으로 경험하기 위해 출항하는 배도 있고, 지평선 밖으로 항해하는 배도 있고, 길고 험난한 항해를 무사히 마치고 귀항하는 배도 있다. 미술사학자들은 항해의 종착지인 항구는 인생의 최종 목적지인 죽음을 향해 나아가는 인간의 여정을 상징한다고 해석한다. 고대 로마의 철학자 키케로도 “내가 죽음에 점점 다가가는 것은 마치 오랜 항해를 한 뒤 육지를 바라보면서 마침내 항구에 들어서는 것과 같다”고 항구를 죽음에 비유하기도 했다.
가장 큰 범선의 돛대가 그리스도교의 기본적 개념인 삼위일체와 십자가를 떠올리게 한 부분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것은 프리드리히의 깊은 종교적 믿음을 상징한다고 학자들은 설명한다. 삼위일체 형태는 화면 왼쪽에 서 있는 세 개의 말뚝과 삼각형 형태의 곶에서도 발견된다. 루터 신앙을 믿는 엄격한 가정에서 태어난 프리드리히는 헌신적인 신자로서의 삶을 살았다. 독실한 신앙인이던 프리드리히에게 자연 풍경은 신의 현존이자 영혼을 고양시키는 경이와 숭배의 대상이었다.
두 아이를 그림 중앙에 배치한 것은 어린이들이 미래 세대의 주인공이라는 의미를 강조하기 위해서였다. 독일 화가인 프리드리히가 스웨덴 국기를 그려 넣은 것은 스웨덴을 향한 그의 동경심을 말해준다. 프리드리히의 고향인 그라이프스발트는 스웨덴 왕국의 지배를 받은 마지막 서유럽 영토였으며, 1815년 프로이센에 귀속됐다. 프리드리히는 그라이프스발트 영토권이 스웨덴에서 프로이센으로 바뀐 지 약 20년 후인 1835년에 이 그림을 그릴 때까지도 자신이 반은 스웨덴인, 반은 독일인이라고 믿었다고 한다. 61세에 이 작품을 완성한 프리드리히는 5년 후인 1840년 66세로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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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옥 사비나미술관 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