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24일 서울 종로구 통의동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사무실 앞에 마련된 ‘프레스 다방’에서 기자들과 만나 질문에 답하고 있다. /김병언 기자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24일 서울 종로구 통의동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사무실 앞에 마련된 ‘프레스 다방’에서 기자들과 만나 질문에 답하고 있다. /김병언 기자
문재인 대통령과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 간 ‘신구(新舊) 권력 충돌’이 전방위로 확산하고 있다. 대통령 집무실 이전에서 한국은행 총재 등 인사권 문제로 번지면서 회동 일정조차 잡지 못한 채 갈수록 꼬여만 가는 형국이다. 문 대통령과 윤 당선인이 직접 공개 설전에 나서면서 오는 5월 새 정부 출범 전까지 대치 양상이 이어질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尹 “매도인이 집 고치나”

먼저 포문을 연 것은 윤 당선인이었다. 윤 당선인은 24일 서울 통의동 대통령직인수위원회로 출근하던 중 기자들로부터 인사권 갈등에 대한 질문을 받자 “원칙적으로 차기 정부와 다년간 일해야 할 사람을 마지막에 인사 조치 하는 것은 별로 바람직하지 않다”고 했다. 전날 문 대통령이 이창용 국제통화기금(IMF) 아시아태평양 담당 국장을 차기 한은 총재로 지명한 것에 대해 불편한 심기를 드러낸 것이다.

윤 당선인은 문 대통령의 인사를 부동산 매매계약에 비유하며 작심 발언을 이어갔다. 윤 당선인은 “당선인은 부동산 매매 계약에서 대금을 다 지불하고 명도만 남아 있는 상태(매수인)”라며 “(매수인이) 곧 들어가 살아야 하는데 아무리 법률적 권한이 매도인(기존 집주인)에게 있더라도 들어와 살 사람의 입장을 존중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본인(매도인)이 살면서 관리하는 데 필요한 조치는 하지만 집을 고치거나 이런 건 잘 안 하지 않느냐”고 반문한 뒤 “인사가 급한 것도 아닌데 원론적으로 바람직하지 않은 것”이라고 강조했다.

윤 당선인 발언이 나온 뒤 박수현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이날 오전 참모들과의 회의에서 나온 문 대통령의 발언을 공개했다. 문 대통령은 “나는 곧 물러날 대통령이고, 윤 당선인은 새 대통령이 되실 분”이라며 “두 사람이 만나서 인사하고 덕담을 하고, 혹시 참고가 될 만한 말을 주고받는데 무슨 협상이 필요한가”라고 했다.

문 대통령은 “답답해서 한 말씀 더 드린다”며 “(윤 당선인은) 다른 이들의 말을 듣지 말고 당선인께서 직접 판단해주시기 바란다”고도 말했다. 정치권에서는 문 대통령 발언에 대해 “이른바 ‘윤핵관(윤석열 핵심 관계자)’들이 이명박 전 대통령 사면이나 인사권 문제를 들고나와 회동을 어렵게 하고 있다는 생각을 직접적으로 드러낸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文 “황교안도 인사권 행사”

윤 당선인 측은 문 대통령 발언에 대해 격앙된 반응을 나타냈다. 김은혜 당선인 대변인은 브리핑에서 “윤 당선인의 판단에 마치 문제가 있고, 참모들이 당선인의 판단을 흐리는 것처럼 언급하신 것은 대단히 유감스럽다”고 밝혔다.

김 대변인은 “코로나19와 경제위기 대응이 긴요한 때에 두 분의 만남을 덕담 나누는 자리 정도로 평가한 것에 대해서도 쉽게 동의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정치권에서는 한은 총재 등 인사권 행사를 놓고 빚어진 문 대통령과 윤 당선인 충돌이 두 사람 간 감정적 대립 양상으로 번지고 있다는 우려가 나왔다. 이날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분명한 것은 인사는 대통령의 임기까지 대통령의 몫”이라며 “찾아보면 아시겠지만 황교안 전 대통령 권한대행도 마지막까지 인사를 했다”고 했다.

김 대변인은 “저희는 차기 대통령이 결정되면 인사를 하지 않겠다”고 응수했다. 그는 “대선이 끝나고 나면 가급적 인사를 동결하고, 새로운 정부가 새로운 인사들과 함께 새로운 국정을 시작할 수 있도록 협력하는 것이 그간의 관행이자 순리”라고 했다.

한편 윤 당선인은 산업은행의 부산 이전을 공약한 것에 대해 “제가 부산으로 본점을 이전시킨다고 약속했으니까 지킬 것”이라고 못 박았다. 윤 당선인은 “가급적 이른 시일 내 옮기는 게 간단한 문제는 아니다”라면서도 “선거 때 표를 얻기 위해서 일시적으로 한 것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여성가족부 폐지 공약을 번복할 가능성에 대해서도 윤 당선인은 “공약인데 그럼 내가 선거 때 국민에게 거짓말을 했다는 이야기인가”라며 일축했다.

오형주/임도원 기자 oh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