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윤 원장
오동윤 원장
“노키아 몰락 후 기업 주도 정책을 펼쳐 세계 최대 벤처생태계를 조성한 핀란드 정책을 참고해야합니다."

국내 유일 중소기업 전문 법정 연구기관인 중소벤처기업연구원의 오동윤 원장은 24일 차기 정부의 경제 정책방향이 기존 산업 정책 중심에서 기업 정책 중심으로 전환해야한다며 이같이 주장했다. 1999년부터 2011년까지 세계 휴대폰 제조시장 1위를 기록한 노키아는 한때 핀란드 수출의 40%를 차지했다. 하지만 노키아가 무너지면서 핀란드 경제 역시 위기를 맞을 것이란 전망이 많았다. 핀란드 경제는 2012~2013년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고 노키아가 포함된 핀란드의 전기전자 산업 비중은 2005년 30%에서 2019년 15%로 반토막났다.

하지만 핀란드는 국가 위기를 기업정책으로 해결했다는 게 오 원장의 설명이다. 오 원장은 "핀란드 정부는 '대마불사'인 노키아를 살리기위해 혈세를 투입하지 않았다"며 "대신 퇴직 인력 중 좋은 스타트업 아이디어를 가진 사람에게 최대 2만 유로의 창업 지원금을 제공했다"고 말했다. 국가 위기시 정부가 직접 개입해 산업의 회복을 추진한 것이 아니라 기업 주도로 헬스 금융 게임 등 신산업 전환을 유도했다는 것이다. 그는 "핀란드식 기업정책은 토지, 노동, 자본 등 생산요소를 투입해 산업 회복을 추진하는 기존 한국식 산업정책과는 달랐다"며 "기존 주력산업을 보호 육성하기보다 기업 주도로 생태계 전환을 유도했다"고 설명했다. 덕분에 핀란드에선 1000개 이상의 중소기업이 탄생했고 '스타트업 사우나'(스타트업 중심지)와 '슬러시'(유럽 최대 스타트업 컨퍼런스)로 유명한 세계 최대 벤처 생태계가 조성됐다. 유럽인구의 4%인 핀란드에서 유럽 전체 스타트업의 4분의 1이 탄생했고 유럽 핀테크도 주도하게 된 것이다.

그는 정부가 주도해 수소경제를 키운다거나 시스템반도체, 미래차, 바이오헬스 등 '빅3'분야를 앞장서 지원하는 것에 대해서도 쓴소리를 했다. 첨단 산업은 기업이 알아서 선제적으로 투자하는 데 왜 정부가 혈세를 들여 지원하려고 하냐는 것이다. 또 기존 산업정책으로는 현재의 낮은 경제성장율을 극복할 수 없으며 대기업 중심의 산업정책은 양극화와 불평등만 만들어낼 뿐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글로벌 공급망 역시 기업이 만드는 것이고 정부가 만들 수 없다"며 "기업이 곧 산업이 되는 시대"라고 강조했다.

중소기업 정책 역시 스케일업이 중심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재 우리나라 중소기업은 전체 기업수의 99%, 전체 근로자수의 83%를 차지한다. 이 '9983'구조가 독일(9959), 스웨덴(9956), 프랑스(9953) 등처럼 선진국형으로 바뀌어야한다는 것이다. 그는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도 평소 '기업의 성장사다리를 놓겠다'고 강조했듯이 차기 정부도 스케일업을 위해 흩어진 기업 정책을 통합해야한다"고 강조했다.

소상공인은 '보호'에서 벗어나 장기적으로 '진흥'과 '성장'위주의 정책이 필요하다며 소상공인 전담 차관이 신설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그는 "소상공인이 중소기업의 90%인데 실장급이 어떻게 다른 부처와 협의해 문제를 해결하겠나"라며 "전담 차관을 둬야한다"고 말했다. 또 중소기업의 중견기업, 대기업으로 도약을 중장기적 지원하기 위해 정부 내 기업정책 전담 조직과 경쟁력강화위원회 설치 등도 권고했다.

그는 차기 정부가 잡아야할 3가지로 '물가와 금리','원자재', 'Z세대'를 꼽았다. 그는 "경제와 사회적으로 불공정을 많이 경험한 Z세대가 현 정부에 반감을 많이 가진 것일 뿐 이들이 대부분 보수 성향을 보이는 것은 아니다"라며 차기 정부가 지속적으로 공정 가치에 유념해야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과거 산업주도 성장에서 이번에 소득주도 성장을 추구했다면 앞으로는 기업주도 성장을 추구해야한다"며 "한국경제가 아직은 조금 더 '성장'중심이 돼야하고 이제는 그 작업을 정부가 아닌 시장과 사람이 주도해야한다"고 말했다.

안대규 기자 powerzani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