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희 서원대 교수
김병희 서원대 교수
제92회 아카데미상 시상식에서 감독상을 받은 <기생충>(2019)을 모르는 분은 아마 없으리라.

작품성과 흥행성 모두에서 성공한 이 영화에 세계인들은 찬사를 보냈다.

영화의 성격은 식구 모두가 백수인 기택(송강호 분)네의 장남 기우(최우식 분)가 박사장(이선균 분) 자녀들을 대상으로 고액 과외를 하려고 그 집에 들어가면서부터 벌어지는 블랙코미디요 우화(寓話)에 가깝다.

두 가족의 만남은 결국 걷잡을 수 없는 수렁에 빠지게 된다. 다들 알고 있을 영화의 줄거리를 여기에서 소개할 필요는 없을 듯하니, 영화에서 말하는 기생(寄生)의 의미만 살펴보려 한다.

2019년 5월 30일, 우리나라에서 개봉된 <기생충>은 프랑스, 스위스, 호주, 뉴질랜드, 베트남, 대만, 홍콩, 인도네시아, 미국, 러시아 등 해외 각국에서 개봉되며, 대부분의 나라에서 역대 개봉한 한국영화에서 흥행 1~2위를 달성할 정도로 흥행 몰이를 이어갔다.

해외 각국에서의 인기 몰이도 주목을 끌었지만, 나라마다 조금씩 다르게 만든 영화 포스터도 화제를 모았다. 영화 포스터를 만든 현지의 광고인들은 현지 문화에 알맞게 조금씩 변형한 포스터를 제작함으로써 또 다른 이야기꺼리를 만들어냈다.

우리나라의 <기생충> 포스터에서는 영화의 흐름과 상징성을 표현했다. 기택 가족들의 눈에는 까맣게, 박사장 가족들의 눈에는 하얗게 모자이크 처리를 했다. 포스터의 왼쪽 하단에는 여성의 다리만 배치했는데 기괴한 느낌을 준다.

영화를 본 다음에 다시 포스터를 보면 영화의 줄거리가 파노라마처럼 스쳐간다. 미국 포스터에서는 한국 포스터의 이미지를 그대로 차용하고 <기생충(PARASITE)>이란 영어 제목을 썼다.

프랑스 포스터에서는 박사장(이선균 분)이 연교(조여정 분)에게 귓속말하는 장면을 활용했다. 두 사람이 무슨 밀담을 나누는지 자못 진지한 표정을 짓고 있다.

스위스 포스터에서는 기택(송강호 분)의 가족과 박사장(이선균 분)의 가족이 마치 한 가족처럼 가족사진을 찍고 “침입자를 찾아라”라는 카피를 써서, 영화에 대한 궁금증을 유도했다. “침입자를 찾아라”라는 카피는 프랑스의 다른 포스터나 독일 포스터에서도 가족사진과 함께 그대로 써서 영화에 대한 기대감을 높였다.

스위스, 독일, 스페인을 비롯한 여러 나라에서는 기택의 가족과 박사장의 가족이 마치 한 가족이나 된다는 듯 가족사진 장면을 활용했다.

프랑스에서는 포스터를 여러 개 만들었다. 영화에 나오는 장면을 그대로 포스터에 활용하기도 했고 박사장의 가족사진에서 인물을 흐릿하게 지운 것도 있었다.

나라별 포스터에서는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기생충이다” 혹은 “침입자를 찾아라” 같은 카피를 써서 영화에 대한 주목도를 한껏 높였다.
위에서부터 차례로 한국, 미국, 프랑스, 스위스의 <기생충> 포스터
위에서부터 차례로 한국, 미국, 프랑스, 스위스의 <기생충> 포스터
일본, 러시아, 홍콩, 베트남의 극장에 붙은 <기생충> 포스터에서는 한국 포스터의 이미지는 그대로 쓰고 영화 제목이나 카피만 약간 바꾸는 정도로 수정했다.

일본 포스터에서는 영어 제목을 암시하는 <빠라사이또(パラサイト)>로 영화 제목을 바꾸고 “반지하의 가족”이란 부제를 붙였다.

러시아 포스터와 베트남 포스터에서는 <기생충>이란 제목을 그대로 썼지만, 홍콩 포스터에서는 <상류기생족(上流寄生族)>이란 제목을 붙여 예측할 수 없는 사건이 연쇄적으로 벌어지는 영화에 대한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이밖에도 호주, 뉴질랜드, 인도네시아, 싱가포르, 말레이시아의 포스터에서는 “잘못된 가족(Misplaced Familyhood)”이란 카피를, 헝가리 포스터에서는 “공격받은 장소(Location in Attack)”라는 카피를 써서 영화에 대한 궁금증을 증폭시켰다.

제목을 <상류기생족>으로 바꾼 마카오 포스터에서는 “가난은 막다른 길이 아닐 수 있다(Poverty might not be a dead-end)”는 카피를 덧붙였다.

호주에서는 다른 영화의 포스터에 <기생충>의 스티커를 붙이는, 다시 말해서 다른 영화의 포스터에 ‘기생하는’ 포스터가 등장했다. 기생충의 의미를 한껏 살려낸 기발한 아이디어였다.
위에서부터 차례로 일본, 러시아, 홍콩, 베트남의 <기생충> 포스터
위에서부터 차례로 일본, 러시아, 홍콩, 베트남의 <기생충> 포스터
단언컨대, <기생충>은 한국 영화의 위대한 발자취다. 이런 성과도 중요하지만 영화에서 말하는 기생(寄生)의 의미를 톺아보는 것은 더 중요하다.

영화에는 세 가족이 등장한다. 기택(송강호 분)의 가족, 박사장(이선균 분)의 가족, 그리고 가정부로 일하는 문광(이정은)의 가족이다. 문광의 남편은 지하실의 비밀 공간에서 살고 있다.

영화를 피상적으로 보면 기택의 가족과 문광의 가족이 박사장 네에 기생하는 것 같지만, 사건이 전개될수록 냄새에 지극히 민감한 박사장네가 그들 위에 기생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깊어진다.

홍콩과 마카오의 포스터에서는 이런 점을 강조하려고 굳이 ‘상류기생족’이란 제목을 붙였을 수도 있다.

기생하는 목적은 결국 행복한 삶을 위해서이다. 기택의 가족이 박사장의 가족에 기생하는 것 같지만, 알고 보면 박사장네도 다른 차원에서 기택의 가족에 기생하고 있고, 문광네나 박사장네 역시 어떤 부분에서는 서로 기생한다.

박사장네가 캠핑을 떠난 다음 비오는 어느 날, 문광이 그 집에 다시 찾아와 지하실의 비밀 공간이 열리자 사건은 걷잡을 수 없이 전개되고, 또 다른 기생 관계가 시작된다.

이 영화에서는 사람 관계가 어느 쪽이 다른 쪽에 일방적으로 기생하는 관계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서로가 상대방 ‘덕분에’ 살아가는 기생(寄生) 관계이자 한발 더 나아가 공생(共生) 관계라는 것이 이 영화의 참 주제라고 할 수 있다.

코로나19 시기에도 방역에 애쓰는 분들과 치료와 돌봄에 애쓰신 분들 덕분에 우리는 일상생활을 유지할 수 있었다.

농부의 손이 여든여덟 번이나 닿은 덕분에 우리는 쌀을 얻을 수 있고, 자동차를 만든 분들 덕분에 우리는 자동차를 탈 수 있다. 모든 것을 신속히 배달해주는 배달 노동자의 수고 덕분에 우리는 물건을 편리하게 받을 수 있다.

생각해보면 세상에 ‘덕분에’의 원리가 작용하지 않는 것은 없다. 그들의 노동에 대가를 지불하기 때문에, ‘덕분에’라고 생각할 필요가 없고 기생 관계는 더더욱 아니라고 주장한다면 지나치게 옹졸하고 이기적인 생각이다.

우리는 모두 다른 이들의 수고에 기대어 살아간다. 누군가의 노고와 희생에 기대어 그 덕분에 살아가는 존재들이다.

김한수 신부는 스스로 반성하는 이성적 능력을 갖춘 기생충이 있다고 상상해보자고 하면서 기생의 중요성을 이처럼 강조했다.

“자신의 삶을 이성적으로 바라볼 수 있기에 숙주를 향한 무한 감사와 애정이 솟아납니다. 나는 당신으로 말미암아 살아갑니다(寄生).” 숙주의 노고 덕분에 모두가 불로소득의 삶을 이어가고 있다는 뜻이다.

누군가 자신에게 기생한다고 느껴질 때, 기생이 아니라 서로에게 기대는 공생(共生) 관계라고 생각을 바꾸면 더 행복한 삶을 가꾸게 될 것이다.

심지어 우리 몸 속의 대장균마저도 우리에게 필요한 공생 관계다. 대장균은 사람을 비롯한 포유류의 장내에 서식하는 장내 세균이지만, 대장균이 없으면 우리 몸은 비타민K를 만들지 못한다. 체내에 비타민K가 부족하면 혈액 응고에 걸리는 시간이 길어지는 비타민K 결핍증이 발생해 문제가 심각해진다.

그러니 어찌 대장균을 우리 몸에 기생하는 세균으로만 폄하할 수 있겠는가? 대장균과 우리 몸은 분명히 공생 관계다.

우리는 혼자서 잘난 체 하며 살아갈 수 없다. 모두가 서로들 덕분에 살아간다. 숱한 사회 문제를 야기하고 있는 갑을(甲乙) 관계도 공생 관계라는 쪽으로 생각을 바꾸면 모두가 더 행복한 삶을 꾸려갈 수 있다.

모두가 더 행복해지기 위하여, 서로가 서로에게 기대며 살아간다는 ‘공생의 철학’을 깊이 통찰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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