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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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장 제출할 계획은 없지만, 그렇다고 준비하지 않는 것도 아닙니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2차 추가경정예산안 편성에 대한 기획재정부 예산실 관계자의 말이다. 2차 추경 편성과 관련해 문재인 대통령을 비롯한 정부 관계자들은 공식적으로 편성 불가 방침을 밝히고 있다.

하지만 실제로 예산실 실무자들은 편성 준비를 하고 있고, 기자들에게도 공공연히 준비 중이라는 사실을 전한다. "아직 1분기도 지나지 않았다는 점과 재정건전성을 감안할 때 2차 추경은 시기상조"라는 정부의 공식 논리와 상충된다.

이같은 언행불일치는 정권 교체기라는 특수성에서 비롯된다. 현 정부의 방침을 따라야 하는 가운데 5월 10일 출범하는 새 정부의 요구도 거부할 수 없는데 따른 딜레마다. 지난 24일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는 기재부 업무보고를 받으며 "2차 추경안을 조속히 준비해달라"고 주문했다.

경제부처 공무원들은 "비슷한 문제는 대통령이 바뀔 때마다 있었지만 이번에는 유독 심하다"고 전했다. 문 대통령과 윤석열 당선인의 국정철학이 워낙 다르기 때문이다. 부동산 세제와 탈원전, 기업 규제 정책 등을 놓고도 담당 공무원들은 비슷한 딜레마를 겪고 있다.

현 정부가 주택 관련 보유세 및 양도세 기조 유지를 천명하고 있는 가운데, 인수위에는 관련 개편안을 보고해야 한다. 산업통상자원부는 표면적으로 탈원전 정책을 계속 추진하면서도 인수위 보고에서 관련 정책의 반성문을 써냈다. 현 정부에서 힘이 실렸던 공정거래위원회도 정책의 방향성을 기업 규제에서 경쟁 촉진으로 옮겨가기 위해 내부적으로 안간힘을 쓰고 있다.

이에 따라 중앙 부처 공무원들은 일상적인 업무 시간에는 현 정부의 기조에 맞춰 충실히 업무를 진행하면서, 저녁 등에 따로 시간을 내 인수위의 입맛에 맞는 보고서 작성에 매달리고 있다. 이런 일이 늘다보니 세종 정부청사 일대에는 '낮문밤윤(낮에는 문재인의 일, 밤에는 윤석열의 일)'이라는 말까지 돈다.

한 국장급 공무원은 "지금 있는 장·차관들이 정권 교체와 함께 물러나더라도 다음 정부와 관련된 업무를 보고하지 않을 수는 없다"며 "동일한 사안에 대한 상반된 내용을 간부회의에서 동시에 논의하기가 서로 곤혹스럽다"고 말했다.

공무원들 사이에서는 불만도 나온다. 부동산 정책과 탈원전 정책은 현 정부가 몇년 더 집권하더라도 수정했을 정책이라는 것이다. 한 공무원은 "앞뒤가 맞지 않는 무리한 정책에 실무자들만 일을 두배로 하고 있다"고 했다.

노경목 기자 autonom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