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중견 건설회사인 호반건설이 사모펀드(PEF) 운용사 KCGI가 보유 중이던 한진칼 지분 13.97%를 인수하면서 한진칼 경영권 분쟁이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호반건설은 단순 투자 목적이라고 지분 인수 배경을 밝혔지만 항공업계에선 호반건설이 조만간 경영 참여에 나설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2018년부터 한진칼 경영권을 놓고 분쟁을 벌여왔던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과 3자연합(KCGI·반도건설·조현아)의 지분 경쟁도 안갯속에 빠졌다.

◆4년 만에 엑시트 나선 KCGI

28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한진그룹 지주사인 한진칼 최대주주는 조 회장으로, 특수관계인을 비롯해 18.34%의 지분(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 지분 제외)을 보유하고 있다. 당초 2대 주주(17.41%)였던 KCGI가 이날 13.97%의 지분을 호반건설에 매각하면서 3자연합의 한 축이던 반도건설이 2대 주주(17.02%)가 됐다. 이어 △호반건설 13.97% △델타항공 13.21% △산업은행 10.58% △KCGI 3.44%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 2.59% 등의 순이다.

대한항공의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위해 2020년 12월 3자배정 유상증자 방식으로 한진칼 경영에 참여한 산은 지분까지 포함하면 조 회장 측 우호지분은 42.13%에 달한다. 조 회장과 경영권 분쟁을 벌여왔던 3자연합 지분은 37.02%였다. 이 같은 지분율 차이로 인해 지난 23일 열린 한진칼 주총에서 3자연합이 제시한 주주제안은 모두 부결됐다.

강성부 대표가 이끄는 KCGI는 2018년 한진칼 지분을 사들이면서 공개적으로 조 회장과 경영권 분쟁을 벌여왔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산은이 사실상 조 회장의 백기사로 나선 것이 결정적이었다. 이 때문에 경영권 분쟁 동력을 잃은 KCGI가 펀드 조합 청산을 통해 엑시트(자금 회수)에 나설 것이라는 관측이 투자은행(IB)업계에서 꾸준히 제기돼왔다.

호반건설 관계자는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통합을 계기로 항공업에 투자할 좋은 기회로 판단했다”고 밝혔다. 호반건설은 KCGI가 보유한 3.44% 잔여지분을 인수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호반건설은 이 지분을 살 수 있는 권리(콜옵션)도 보유하고 있다.

◆산은과의 오랜 악연도 변수

문제는 호반건설이 어느 편에 설지 공식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호반이 조 회장 측 백기사로 나선다면 2018년부터 이어졌던 경영권 분쟁은 완전히 끝나게 된다. 조 회장 측 우호지분이 56.1%로, 과반에 달하기 때문이다. 호반건설 측은 “이번 지분 인수에 앞서 한진그룹과도 의견을 나눴다”며 “3자연합의 한 축인 반도건설과는 소통한 적이 없다”고 밝혔다. 조 회장 측의 백기사로 나설 수 있다는 뜻을 우회적으로 내비친 것이다.

하지만 한진그룹은 지분 인수 관련 호반건설과의 소통은 없었다는 입장이다. 호반건설이 KCGI를 대신해 3자연합에 합류하면 상황은 달라진다. 호반건설이 자금력을 앞세워 한진그룹 경영권을 노리고 지분을 추가 매입할 가능성도 예상된다. 호반건설의 지분 인수 소식이 알려진 뒤 한진칼 종가는 전날 대비 7.19% 급락한 5만9400원에 장을 마쳤다.

호반건설과 산은 간 오랜 악연도 변수가 될 수 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호반건설은 2015년 금호산업과 2018년 대우건설 인수전에 뛰어들었다가 중간에 인수 의사를 철회하면서 두 기업의 주채권은행인 산은과 갈등을 빚었다. 호반건설이 인수 기업 내부사정을 들여다보기 위한 목적으로 인수전에 뛰어들면서 인수 프로세스를 망치고 있다는 의혹도 꾸준히 제기돼왔다. IB업계 관계자는 “향후 한진칼 경영 참여 과정에서도 산은과의 갈등이 불거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강경민/차준호/남정민 기자 kkm1026@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