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ESG] ESG 클럽 월례포럼
3월 23일 그랜드 인터컨티넨탈 서울 파르나스에서 열린 ESG 클럽 월례 포럼에서 이성훈 인지상종 대표가 발표를 하고 있다.사진=이승재 기자
3월 23일 그랜드 인터컨티넨탈 서울 파르나스에서 열린 ESG 클럽 월례 포럼에서 이성훈 인지상종 대표가 발표를 하고 있다.사진=이승재 기자
“인권은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중 어디에 속하는 주제인가요?” 인권경영에 대한 전 세계인의 관심이 높아지면서 국내 인권경영 현황 점검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에 지난 3월 23일 그랜드 인터컨티넨탈 서울 파르나스에서 열린 ‘대한민국 ESG 클럽’ 월례포럼에서 이성훈 한국국제협력단 비상임이사가 인권경영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 이 이사는 “현재 기업에서 인권경영을 ESG 중 어느 부분의 이슈로 보고 있느냐 물으면 대부분 사회 부문으로 분류한다. ESG는 기업, 인권, 지속 가능 개발 목표(SDGs)의 교차점에 있는 개념이므로 인권을 별개로 보기보다는 함께 연결해 이해해야 한다”고 말했다.

인권경영 핵심은 지배구조

2011년에 발표한 ‘UN 기업과 인권 이행 원칙’에는 인권경영이 국가의 보호 의무와 기업의 인권존중 책임, 그리고 국가와 기업의 실효적 구제에 대한 접근을 실천하는 경영이라고 명시돼 있다. 국가는 보호 의무가 있으며, 기업은 이를 존중할 책임이 있다. 국가와 기업은 문제가 발생했을 때 사법적·비사법적 구제 수단을 제공해야 한다는 것을 명확히 한 것이다. 이전까지는 인권경영이 기업 자율 사항이었으나 법률로 의무화하는 추세가 확대되며 기업들이 인권경영 대응책을 마련하느라 분주하다. 국내에서는 대표적으로 포스코와 SK이노베이션이 ‘인권경영’을 명시한 가이드라인을 만들고 지속 가능 경영 내 인권 실사를 진행하고 있다.

기업 내 인권을 정의하는 주요 용어는 범위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다. 유엔에서는 ‘기업과 인권(Business and Human Rights, BHR)’을, OECD에서는 기업의 책임을 강조하는 ‘기업책임경영(Responsible Business Conduct, RBC)’을 사용한다. ‘인권경영(Human Rights-based Management, HRM)’은 한국에서만 사용하던 표현으로, 현재 국제사회에서도 조금씩 그 범위를 넓혀가고 있다.

인권은 ESG 모든 분야에 적용 가능한 권리다. 환경(E)의 경우 환경권, 사회(S)는 노동권·성평등·안전권·정보 인권 등이, 지배구조(G)에는 정보접근권(알 권리)·투명성·책무성·참여권리·인권침해를 구제받을 권리 등이 속한다. 이 이사는 “인권의 핵심은 지배구조다. S는 인권경영을 적용하는 대상에 관한 것이며, 실제로 인권경영을 만드는 것은 올바른 지배구조를 확보하는 데서 시작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동시에 인권경영은 기업들이 다루기 부담스러워하는 주제 중 하나다. 정치적으로 해석될 여지가 높고, 권리 사이의 충돌로 일어나는 갈등 해결이 까다롭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주제의 피로도 때문에 문제 해결을 피한다면 국내 인권경영의 발전은 어려울 것이라는 지적이다.

이 이사는 모든 사회문제가 인권문제로 귀결되는 것은 아니며, 기업 내에서 인권을 다루기 위해서는 인권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는 것이 우선임을 강조했다. 이 이사는 “모든 사회문제가 정치문제는 아니다. 모든 정치문제가 인권문제가 되지는 않으며, 인권문제가 생기더라도 그것이 모두 인권침해로 연결되는 것도 아니라는 점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국민의 알권리와 사생활 보호, 표현의 자유와 인격권, 집회의 자유와 영업 및 재산권 등 서로 상충하는 권리가 충돌하면서 갈등이 생기는 것이다. 특히 인권을 내세운 무력행사, 강제력 동원 등이 갈등을 증폭시키는 원인이 된다.

인권을 이해하는 방식에 따라 갈등이 생기기도 한다. 역사적으로 인권을 주장하는 학파는 크게 4가지가 있었다. 네덜란드의 뎀부르가 분류한 4가지 학파는 천부인권, 신성불가침한 영역으로서 인권을 분류하는 ‘자연권학파’와 인권은 민주화 투쟁의 도구임을 주창한 ‘저항학파’, 인권을 정치적인 합의이며 계약으로 본 ‘심의학파’, 인권은 프레임이며 이데올로기임을 주장한 ‘담론학파’로 나뉜다. 이 이사는 “민주주의가 대두되며 심의학파에 힘이 실리게 됐다. 현재 한국의 인권은 심의학파, 담론학파까지 흘러왔다. 담론학파는 주로 두 권리가 충돌할 때 그 우선순위를 어디에 둘 것인가를 판단하는 접근법을 사용한다. 한국은 지금 이 2가지 학파 사이에서 인권을 바라보고 있다”고 덧붙였다.

인권의 보호, 침해를 이야기하는 인권 방정식에서는 다음과 같은 식이 성립한다. ‘A가 B에게 C를 근거로 D를 요구한다. B가 A에게 C를 근거로 D를 보장한다.’ A는 권리의 주체, B는 의무의 주체, C는 법·도덕·계약과 같은 권리의 근거이며 D는 권리의 내용이다. A와 B에 들어갈 수 있는 주체는 의무부담자 침해자(가해자), 이해관계자, 옹호자(지킴이), 권리보유자·피해자다. 기업은 보통 이해관계자로 분류됐지만 기업의 역할이 커지면서 옹호자, 침해자의 위치로 확장될 수 있다는 관점도 제시됐다.

구성요소 중 어떤 것에 가치를 더 두느냐에 따라 인권경영의 종류도 달라진다. 인권은 정치·도덕·법을 구성요소로 한다. 어떤 구성요소가 더 강조되느냐에 따라 윤리(도덕)경영, 사회적책임경영, 준법경영으로 분류할 수 있다. 차이점은 자율성과 강제력이다. 자율성이 높을수록 윤리경영에 가까워지고 강제력, 법과의 연계성이 높아질수록 준법경영에 가까워진다.

인권경영 법제화 대응 필요

그렇다면 인권경영은 왜 하는가. 위험 관리, 외부 압력 대응을 위해서가 가장 큰 이유다. 정치적 압력, 갈등 해결, 법적 규제 대응을 위한 접근이 그다음이다. 이 이사는 기업들은 인권경영을 하면 어떤 점이 ‘좋은지’ 이해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인권경영은 법과 정치, 도덕적 관념의 모든 이슈를 포함하기에 통합적이며, 동시에 구체적 가이드라인을 제공할 수 있다. 또한 인권이란 국내외에서 모두 통용되는 개념이기에 보편적 규범의 성격도 띤다. 이 이사는 “국제사회와의 연계성을 높이는 인권경영을 도입하면 기존 제도나 절차도 활용 가능할 수 있다. 오히려 선제적으로 인권경영을 도입하는 것이 ESG 경영 내재화에는 효율성이 높은 방안”이라고 말했다.

2017년에 열린 G20 지속 가능한 글로벌 공급망 챕터에서는 UN 기업과 인권 이행 원칙(UNGPs), OECD 다국적기업 가이드라인, 기업과 인권(BHR), 국별 행동계획(NAP), 인권실천 점검의무(실사, Due Diligence), 국내연락사무소(NCP)와 같은 인권 관련 행동을 언급하며 회원국의 적극적 참여를 장려했다. 이 이사는 “국내에서는 법무부 주도의 인권경영 제도화가 주된 흐름이 되고 있다. 새 정부는 국제규범을 만드는 데 기여할 수 있는 적극적 위치로 한국이 도약하도록 관련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속가능발전기본법이 지난 1월 국회를 통과했다.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하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올해 발효되는 인권정책기본법의 절차적 법제화도 인권경영과 관련된 주요 법안 내용이다. 이 이사는 “기업이 인권에 대한 책임을 법적으로 부담하고 책임져야 할 시기가 가까워지고 있다. 인권경영의 법제화는 아직 달성하지 못했지만 정책적 차원에서 법무부가 해설 자료 및 가이드라인을 제공하고 있다. 국제 흐름을 파악해 대응한다면 리스크로 작용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음 월례포럼은 4월 27일 수요일 5시, 그랜드 인터컨티넨탈 서울 파르나스 5층에서 진행한다.

조수빈 기자 subin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