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학영 칼럼] 난세에 드러나는 지도자의 진면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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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남매의 조롱과 도발에
뭉개져버린 '강한 대통령' 호언
"미국이 돌아왔다" 큰소리 치곤
아프간·우크라이나 연속 헛발질
유가쇼크까지 자초한 美 바이든
이학영 논설고문
뭉개져버린 '강한 대통령' 호언
"미국이 돌아왔다" 큰소리 치곤
아프간·우크라이나 연속 헛발질
유가쇼크까지 자초한 美 바이든
이학영 논설고문
![[이학영 칼럼] 난세에 드러나는 지도자의 진면목](https://img.hankyung.com/photo/202203/07.21333375.1.jpg)
북한 정권이 개성 내 대한민국 자산인 남북한연락사무소 건물을 제멋대로 폭파해버리고, 북측 해역에서 표류하던 대한민국 국민을 처참하게 살해하는 것으로 응수한 데 대한 그의 반응이 그랬다. 보란 듯이 건드리고 도발해도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는 지도자에게 돌아온 건 노골적인 모욕과 조롱이었다.
‘구호 정치’로 호기를 부리고는 큰 낭패에 빠진 지도자가 또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다. 작년 1월 국제사회를 향해 “미국이 돌아왔다(America is back)”는 구호를 외치며 화려하게 출범한 바이든 미국 정부가 연거푸 곤경에 빠져 헤매고 있다. 전임 트럼프 행정부 시절의 ‘미국 우선주의’를 중단하고 세계의 ‘맏형’으로서 평화적 질서 유지에 앞장서겠다던 다짐을 취임 첫해부터 공수표로 만들었다. 작년 여름 섣부른 군사 철수 조치로 아프가니스탄을 반미(反美) 과격 세력에 내준 게 ‘고장 난 구호’의 신호탄이었다.
최근 벌어지고 있는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간 전쟁과 그에 대한 대응은 바이든 구호 정치의 허술함을 여러모로 보여준다. 전쟁을 도발한 러시아 독재자 블라디미르 푸틴을 ‘전범’에 이어 ‘도살자’로 규정하고는 “권좌에 있어서는 안 된다”는 비난까지 쏟아냈지만 ‘말 폭탄’일 뿐이다. 오히려 그의 어설픈 외교적 판단이 전쟁을 부추겼다고 진단하는 국제 전문가들이 많다. 지난해 우크라이나 정부가 러시아 침공에 대비해 신형 지대공 미사일 등 미국산 군사장비 도입을 추진했지만 바이든이 “그러면 러시아를 자극한다”며 제동을 건 게 대표적 사례다.
당당하게 추진할 수 있는 방법이 있는데도 외면하고 있다는 게 더 큰 문제로 꼽힌다. 미국 땅에 풍부하게 묻힌 셰일석유와 가스 생산을 늘리는 것이다. 바이든이 ‘2050년 탄소 제로 달성’을 구호로 내걸고 족쇄를 채우기 전까지만 해도 미국은 세계 최대 산유국이자 순(純)수출국이었다. 단지 생산량만 많은 게 아니었다. 수평시추 방식의 청정 천연가스 생산으로 선진국 가운데 온실가스 배출 감축을 가장 성공적으로 이뤄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었다. 그런 미국 석유·가스업계를 바이든은 ‘즉각 감축에 들어가야 할 적폐분야’로 몰아붙였고, 신규 시추 금지 및 수송관 운영 기준 강화로 손발을 꽁꽁 묶었다.
기후재난을 막기 위해 에너지 전환이 필요하다는 데 대부분 전문가가 동의한다. 문제는 ‘속도’다. 태양광·풍력 등 재생에너지가 안정화될 때까지 수십 년간 석유와 가스의 역할을 외면할 수 없는 게 현실이다. 그런 사실에 눈 감음으로써 국제 유가가 배럴당 100달러 이상으로 치솟는 데 일조한 바이든의 ‘탈화석연료’ 일방통행은 온갖 문제를 드러낸 채 폐기를 앞둔 문재인 대통령의 ‘탈원전’ 강행과 닮은꼴이다. 명분과 방향이 맞는다는 이유만으로 현실이 어떻건 ‘묻지마’로 밀어붙이는 구호 정치는 위험하다. 출범을 앞둔 윤석열 정부가 새겨야 할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