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향후 10년간 총 1조달러(약 1219조원) 규모의 재정적자를 줄인다는 목표를 세웠다. 코로나19 대응에 막대한 돈을 끌어 쓰면서 악화한 재정건전성을 개선하기 위해서다. 다만 각종 지출을 줄이는 가운데 국방예산은 늘리기로 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안보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고 판단해서다.

사회복지·기후변화 예산 제외

백악관은 28일(현지시간) 5조8000억달러 상당의 2023 회계연도(2022년 10월 1일~2023년 9월 30일) 예산안을 마련해 의회에 제출했다. 지난해 바이든 대통령이 취임한 뒤 내놓은 2022 회계연도 예산안(6조1000억달러)보다 4.9%(3000억달러) 감소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전임 정부로부터 물려받은 재정 혼란을 바로 잡고 실질적 진전을 이루기 위해 내년 예산안을 짰다”며 “올해 1조3000억달러, 향후 10년간 추가로 1조달러의 재정 적자를 줄이겠다”고 말했다.

백악관은 국가 재정건전성을 개선하기 위해 씀씀이를 줄이기로 했다. 우선 바이든 대통령의 역점 사업인 2조달러 규모의 ‘더 나은 재건 법안’ 예산을 제외했다. 바이든 행정부는 지난해까지 사회복지 및 기후변화 부문에 2조달러를 투입하는 예산안을 추진했으나 민주당 내 중도파 의원들의 반대로 의회 통과가 무산됐다. 오는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민주당 중도파뿐 아니라 공화당 의원들을 설득하기 힘들다고 보고 이 법안을 제외한 것으로 알려졌다.

백악관은 세수를 늘리기 위해 ‘부자 증세’를 추진할 방침이다. 백악관은 1억달러 이상의 자산을 보유한 납세자를 대상으로 이른바 ‘억만장자세’를 도입하기로 했다. 이들의 미실현 자본 이득을 포함한 모든 소득에 최소 20%의 세율을 부과할 계획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대부분의 미국인은 지난 몇 년간 매우 힘들고 한계점에 다다랐는데 억만장자와 대기업은 오히려 더 부유해져 불공평하다”며 억만장자세의 추진 배경을 설명했다.

백악관은 세출 구조조정과 세수 증대를 통해 미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재정적자 비율을 2021년 12.4%에서 2032년에 4.8%로 개선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사상 최대 국방예산 책정

백악관은 재정건전성을 강화하기 위해 대부분의 예산을 줄였지만 국방예산은 늘렸다. 두 달째 이어지고 있는 우크라이나 전쟁과 중국의 군사력 확대에 대응하기 위해서다.

구체적으로 2023회계연도 미국의 군사비 지출 예산 총액은 8130억달러로 전년보다 4% 증가했다. 국가 안보 지출 금액 기준으로 세계 최대 규모다. 이 가운데 국방부 예산은 7730억달러로 전년보다 8.1% 증액됐다. 특히 핵전력 강화 등을 위한 연구개발(R&D) 비용은 역대 가장 많은 1301억달러로 늘렸다. 우크라이나 관련 예산도 10억달러가 배정됐다. 유럽 방위 구상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지원 예산 등으로 69억달러도 포함됐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미국이 내년에 폭격기를 비롯해 사일로(고정식 발사대)와 잠수함에서 발사되는 장거리 핵미사일 등을 새로 만드는 데 초점을 맞췄다고 보도했다. 다만 이 예산안이 미 의회에서 오는 11월 중간선거 이전에 승인될 가능성은 작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통과되더라도 의회 처리 과정에서 상당 부분이 변경될 전망이다.

이미 공화당은 억만장자세와 국방비 문제를 거론하며 백악관 예산안에 거부감을 표시하고 있다. 미치 매코널 공화당 상원 원내대표는 “백악관이 마련한 예산안은 미국 가정이 실제로 필요로 하는 것과 동떨어져 있다”며 “무엇보다 위험한 시기에 국방예산이 턱없이 부족하다”고 더 많은 국방비 증액을 요구했다.

워싱턴=정인설 특파원/박상용 기자 surisur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