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2위 vs 22위…군사력은 숫자에 불과했다 [여기는 논설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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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당초 예상과는 다르게 전개되는 양상이다. 며칠을 못 버티고 수도 키이우가 함락되며 러시아에 백기를 들 것으로 보였던 우크라이나가 초반 열세를 딛고 오히려 반격에 나서는 모습이다. 양측이 터키 이스탄불에서 29일(현지시간) 가진 5차 평화협상에서는 종전에 대한 긍정적인 메시지들이 나오기도 했다. 러시아 대표단은 키이우와 우크라이나 북부 체르니히우에서의 군사활동을 크게 줄이겠다고 밝혔다. 두 나라 정상간 회담 가능성까지 제기됐다.
30일 주요 외신 보도를 종합하면 러시아가 지난달 24일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지 벌써 한 달이 넘었지만, 수도 키이우를 점령하지 못하고 오히려 퇴각하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러시아 군은 전략적 요충지 중 한 곳인 남부 해안 항구도시 마리우폴을 사실상 점령한 것을 제외하면 나머지 지역에선 우크라이나군의 거센 반격에 주춤하거나 밀리고 있다.
세계 2위의 군사 대국 러시아와 22위 우크라이나의 군사력 차이는 단지 숫자에 불과했다는 사실이 점점 분명해지고 있다. 왜 그럴까? 국가 지도자와 국민의 결사 항전 태세에 SNS 등을 활용한 홍보·심리전, 서방의 최신 무기 지원 등이 어우러져 상황을 반전시켰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를 만만하게 본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오판도 한몫했다는 분석이다. 우크라이나의 가장 강력한 비밀병기는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이었다. 코미디언 출신으로 무책임하게 나토(NATO) 가입 문제를 거론해 전쟁의 빌미를 제공했다는 비난을 듣던 젤렌스키 대통령은 전쟁 초기부터 단호한 모습으로 '수도 사수'를 선언했다. 한때 외국으로 도망갔다는 소문이 나돌기도 했지만, 사실이 아니었다. 화상으로 미국과 유럽연합(EU) 등 세계 각국 지도자들에게 연설하며 러시아군의 만행과 전쟁의 참상을 알리며 서방의 지원을 끌어냈다.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은 지난달 2일 ‘어떻게 젤렌스키 대통령은 우크라이나를 수호하고 세계를 통합시켰나’라는 제목의 특집 기사를 냈다. 젤렌스키 대통령이 지난달 1일 유럽의회에서 “삶이 죽음을 이길 것이며, 빛이 어둠을 이길 것이다”라고 연설한 것을 두고 “찰리 채플린이 윈스턴 처칠로 변모한 것 같았다”고 했다. 푸틴은 비밀 암살단을 보내 수차례 젤렌스키 대통령 암살을 시도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키이우포스트는 러시아 특수부대 암살단 25명이 슬로바키아-헝가리 국경 인근에서 우크라이나 당국에 체포됐다고 지난 28일 보도했다. 키이우포스트는 "젤렌스키의 생명을 노리는 또 다른 시도가 실패했다. 그들의 유일한 목적은 우크라이나 대통령을 암살하는 것이었다"고 전했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전쟁 발발 이후 젤렌스키 대통령이 여러 번 암살 시도를 겪었지만, 무사히 살아남았으며 조국을 위해 끈질기게 저항하고 있다고 밝혔다. 영국의 더 타임스는 젤렌스키 대통령이 2월 마지막 주에만 세 번의 암살 시도를 겪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그를 암살하기 위해 크렘린궁이 후원하는 바그너 그룹의 용병과 체젠 특수부대의 병사들이 파병된 것으로 알려졌다. 영부인 올레나 젤렌스카는 '숨겨진 병기'였다. 그는 240만명의 팔로어를 보유한 인스타그램을 통해 러시아의 침공을 세계에 알리는 데 일조했다. 미국 CNN 등은 젤렌스카 여사의 소셜미디어 활동을 보도하면서 "그는 우크라이나 생존을 위한 전투에 집중하고 있고 나라의 수호자로 부상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영국 텔레그래프는 젤렌스카 여사가 공개한 사진과 글 등을 공유하며 "우크라이나의 비밀병기"라고 언급했다.
지도자의 강력한 리더십 아래 우크라이나 국민도 똘똘 뭉쳐 항전에 나섰다. 해외에 머물던 우크라이나인들은 전쟁 소식을 듣자 조국을 지키기 위해 속속 귀국했다. 복싱, 테니스, 축구 등 스포츠 스타들도 예외가 아니었다. 폴란드 국경에는 가족을 피신시키고 우크라이나로 돌아가는 차량 행렬이 줄을 잇기도 했다.
여기에 실시간 중계되는 SNS 등을 통한 홍보 활동과 러시아군 포로들을 활용한 심리전도 먹혀들었다. 남루한 차림의 러시아군 포로가 우크라이나 측이 제공한 빵을 들고 울면서 고향 러시아에 있는 부모와 통화는 장면이 전 세계 언론에 보도됐다. 영문도 모른 채 훈련인 줄만 알고 끌려 나왔다는 젊은 병사를 통해 전 세계와 러시아에 반전 여론을 들끓게 하려는 심리전이었다. 현대전이 정보·여론전 양상을 띤다는 사실을 확인시켜준 실례로 꼽힌다.
사례는 더 있다. 더 타임스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내무부 고문인 빅토로 안두르시프는 최근 페이스북을 통해 러시아군의 한 병사가 이탈해 보상금으로 한화 1200만원가량을 받기로 하고 탱크를 넘기고 투항했다고 주장하며 관련 사진을 올렸다. 안두르시프는 페이스북 등을 통해 전쟁과 관련한 다양한 정보를 전달하며 러시아를 상대로 한 여론전을 펼치는 인물이다.
서방이 지원한 첨단 무기의 활약상도 빼놓을 수 없다. 세계 최강으로 불리는 러시아 전차군단을 맥 못 추게 한 미국의 대전차 유도 미사일 '재블린'(FGM-148 Javelin)이 대표적이다. 재블린은 사거리가 2.4km 정도여서 매복 공격을 하기가 쉽다. 외신 등에 따르면 재블린의 공격으로 러시아군은 300여대의 전차를 잃은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에는 러시아 군의 진격을 막은 우크라이나 드론부대도 소개됐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64㎞를 늘어섰던 러시아의 진군 행렬을 우크라이나 드론부대가 막았다고 보도했다. 드론 조종사와 특수 부대 대원 등 30명으로 구성된 팀이 키이우 인근 이반키우에서 드론을 활용한 심야 매복 공격으로 러시아군 차량 행렬의 진군을 저지했다는 것이다. 보도에 따르면 특수부대원들은 산악용 사륜 오토바이를 타고 산길을 달려 러시아군 행렬을 추격했다. 1.5㎏짜리 폭탄을 투하할 수 있는 드론도 작전에 투입됐다. 이 드론엔 야간투시경과 저격소총, 원격 폭파 지뢰 등이 장착됐다.
영양분이 많아 '흙의 황제'로 불리는 우크라이나의 흑토(黑土·체르노젬)도 러시아군의 탱크 진격을 저지하는 데 큰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러시아와 벨라루스, 북부 우크라이나 일대에는 매년 봄 해빙기면 꽁꽁 얼어붙었던 흑토가 녹아 진흙탕으로 변하는 '라스푸티차'(rasputitsa) 현상이 일어난다. 러시아 원정에 나섰던 나폴레옹과 2차 세계대전 당시 소련을 침공한 독일군도 이 진흙탕을 돌파하느라 고전했으며, 이는 패전 원인 중 하나로 꼽힐 정도다.
내외부의 복합적인 요인이 우크라이나를 지켜내고 있지만, 가장 강한 동력은 역시 지도자와 국민의 결사 항전 의지에서 찾을 수 있다. 미국 등 서방의 원조와 러시아에 대한 경제 제재가 우크라이나 항전에 도움이 된 건 사실이지만, '내 손으로 조국을 지키겠다'는 우크라이나 국민의 강한 의지가 없었다면 이런 지원은 무용지물이었을 것이다. 더구나 서방은 뒤에서 지원할 뿐 군사를 보내는 등 직접 나서지도 않았다.
글로벌 파이어 파워(GFP)에 따르면 한국의 군사력은 세계 6위로 평가받는다. 최근 연일 미사일 발사로 무력 시위를 벌이고 있는 북한은 30위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사태에서 보듯 전쟁의 승패는 단순한 군사력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지도자의 강력한 리더십과 국민의 결집이 뒷받침돼야 군사력도 첨단 무기도 빛을 발할 수 있다. 이제 곧 윤석열 정부가 출범하면 대북 정책의 궤도가 수정될 가능성이 크다. 안미경중(安美經中)의 외교정책도 바뀔 전망이다. 새 정부는 우크라이나 사태를 반면교사로 삼아 국민과 안보 역량을 결집시키는데 힘을 쏟아야 한다.
이건호 논설위원
30일 주요 외신 보도를 종합하면 러시아가 지난달 24일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지 벌써 한 달이 넘었지만, 수도 키이우를 점령하지 못하고 오히려 퇴각하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러시아 군은 전략적 요충지 중 한 곳인 남부 해안 항구도시 마리우폴을 사실상 점령한 것을 제외하면 나머지 지역에선 우크라이나군의 거센 반격에 주춤하거나 밀리고 있다.
세계 2위의 군사 대국 러시아와 22위 우크라이나의 군사력 차이는 단지 숫자에 불과했다는 사실이 점점 분명해지고 있다. 왜 그럴까? 국가 지도자와 국민의 결사 항전 태세에 SNS 등을 활용한 홍보·심리전, 서방의 최신 무기 지원 등이 어우러져 상황을 반전시켰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를 만만하게 본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오판도 한몫했다는 분석이다. 우크라이나의 가장 강력한 비밀병기는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이었다. 코미디언 출신으로 무책임하게 나토(NATO) 가입 문제를 거론해 전쟁의 빌미를 제공했다는 비난을 듣던 젤렌스키 대통령은 전쟁 초기부터 단호한 모습으로 '수도 사수'를 선언했다. 한때 외국으로 도망갔다는 소문이 나돌기도 했지만, 사실이 아니었다. 화상으로 미국과 유럽연합(EU) 등 세계 각국 지도자들에게 연설하며 러시아군의 만행과 전쟁의 참상을 알리며 서방의 지원을 끌어냈다.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은 지난달 2일 ‘어떻게 젤렌스키 대통령은 우크라이나를 수호하고 세계를 통합시켰나’라는 제목의 특집 기사를 냈다. 젤렌스키 대통령이 지난달 1일 유럽의회에서 “삶이 죽음을 이길 것이며, 빛이 어둠을 이길 것이다”라고 연설한 것을 두고 “찰리 채플린이 윈스턴 처칠로 변모한 것 같았다”고 했다. 푸틴은 비밀 암살단을 보내 수차례 젤렌스키 대통령 암살을 시도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키이우포스트는 러시아 특수부대 암살단 25명이 슬로바키아-헝가리 국경 인근에서 우크라이나 당국에 체포됐다고 지난 28일 보도했다. 키이우포스트는 "젤렌스키의 생명을 노리는 또 다른 시도가 실패했다. 그들의 유일한 목적은 우크라이나 대통령을 암살하는 것이었다"고 전했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전쟁 발발 이후 젤렌스키 대통령이 여러 번 암살 시도를 겪었지만, 무사히 살아남았으며 조국을 위해 끈질기게 저항하고 있다고 밝혔다. 영국의 더 타임스는 젤렌스키 대통령이 2월 마지막 주에만 세 번의 암살 시도를 겪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그를 암살하기 위해 크렘린궁이 후원하는 바그너 그룹의 용병과 체젠 특수부대의 병사들이 파병된 것으로 알려졌다. 영부인 올레나 젤렌스카는 '숨겨진 병기'였다. 그는 240만명의 팔로어를 보유한 인스타그램을 통해 러시아의 침공을 세계에 알리는 데 일조했다. 미국 CNN 등은 젤렌스카 여사의 소셜미디어 활동을 보도하면서 "그는 우크라이나 생존을 위한 전투에 집중하고 있고 나라의 수호자로 부상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영국 텔레그래프는 젤렌스카 여사가 공개한 사진과 글 등을 공유하며 "우크라이나의 비밀병기"라고 언급했다.
지도자의 강력한 리더십 아래 우크라이나 국민도 똘똘 뭉쳐 항전에 나섰다. 해외에 머물던 우크라이나인들은 전쟁 소식을 듣자 조국을 지키기 위해 속속 귀국했다. 복싱, 테니스, 축구 등 스포츠 스타들도 예외가 아니었다. 폴란드 국경에는 가족을 피신시키고 우크라이나로 돌아가는 차량 행렬이 줄을 잇기도 했다.
여기에 실시간 중계되는 SNS 등을 통한 홍보 활동과 러시아군 포로들을 활용한 심리전도 먹혀들었다. 남루한 차림의 러시아군 포로가 우크라이나 측이 제공한 빵을 들고 울면서 고향 러시아에 있는 부모와 통화는 장면이 전 세계 언론에 보도됐다. 영문도 모른 채 훈련인 줄만 알고 끌려 나왔다는 젊은 병사를 통해 전 세계와 러시아에 반전 여론을 들끓게 하려는 심리전이었다. 현대전이 정보·여론전 양상을 띤다는 사실을 확인시켜준 실례로 꼽힌다.
사례는 더 있다. 더 타임스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내무부 고문인 빅토로 안두르시프는 최근 페이스북을 통해 러시아군의 한 병사가 이탈해 보상금으로 한화 1200만원가량을 받기로 하고 탱크를 넘기고 투항했다고 주장하며 관련 사진을 올렸다. 안두르시프는 페이스북 등을 통해 전쟁과 관련한 다양한 정보를 전달하며 러시아를 상대로 한 여론전을 펼치는 인물이다.
서방이 지원한 첨단 무기의 활약상도 빼놓을 수 없다. 세계 최강으로 불리는 러시아 전차군단을 맥 못 추게 한 미국의 대전차 유도 미사일 '재블린'(FGM-148 Javelin)이 대표적이다. 재블린은 사거리가 2.4km 정도여서 매복 공격을 하기가 쉽다. 외신 등에 따르면 재블린의 공격으로 러시아군은 300여대의 전차를 잃은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에는 러시아 군의 진격을 막은 우크라이나 드론부대도 소개됐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64㎞를 늘어섰던 러시아의 진군 행렬을 우크라이나 드론부대가 막았다고 보도했다. 드론 조종사와 특수 부대 대원 등 30명으로 구성된 팀이 키이우 인근 이반키우에서 드론을 활용한 심야 매복 공격으로 러시아군 차량 행렬의 진군을 저지했다는 것이다. 보도에 따르면 특수부대원들은 산악용 사륜 오토바이를 타고 산길을 달려 러시아군 행렬을 추격했다. 1.5㎏짜리 폭탄을 투하할 수 있는 드론도 작전에 투입됐다. 이 드론엔 야간투시경과 저격소총, 원격 폭파 지뢰 등이 장착됐다.
영양분이 많아 '흙의 황제'로 불리는 우크라이나의 흑토(黑土·체르노젬)도 러시아군의 탱크 진격을 저지하는 데 큰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러시아와 벨라루스, 북부 우크라이나 일대에는 매년 봄 해빙기면 꽁꽁 얼어붙었던 흑토가 녹아 진흙탕으로 변하는 '라스푸티차'(rasputitsa) 현상이 일어난다. 러시아 원정에 나섰던 나폴레옹과 2차 세계대전 당시 소련을 침공한 독일군도 이 진흙탕을 돌파하느라 고전했으며, 이는 패전 원인 중 하나로 꼽힐 정도다.
내외부의 복합적인 요인이 우크라이나를 지켜내고 있지만, 가장 강한 동력은 역시 지도자와 국민의 결사 항전 의지에서 찾을 수 있다. 미국 등 서방의 원조와 러시아에 대한 경제 제재가 우크라이나 항전에 도움이 된 건 사실이지만, '내 손으로 조국을 지키겠다'는 우크라이나 국민의 강한 의지가 없었다면 이런 지원은 무용지물이었을 것이다. 더구나 서방은 뒤에서 지원할 뿐 군사를 보내는 등 직접 나서지도 않았다.
글로벌 파이어 파워(GFP)에 따르면 한국의 군사력은 세계 6위로 평가받는다. 최근 연일 미사일 발사로 무력 시위를 벌이고 있는 북한은 30위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사태에서 보듯 전쟁의 승패는 단순한 군사력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지도자의 강력한 리더십과 국민의 결집이 뒷받침돼야 군사력도 첨단 무기도 빛을 발할 수 있다. 이제 곧 윤석열 정부가 출범하면 대북 정책의 궤도가 수정될 가능성이 크다. 안미경중(安美經中)의 외교정책도 바뀔 전망이다. 새 정부는 우크라이나 사태를 반면교사로 삼아 국민과 안보 역량을 결집시키는데 힘을 쏟아야 한다.
이건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