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한경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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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험업계가 실손의료보험(실손보험) 보험금 지급 기준 정비에 나선다. 과잉진료를 막고 보험금 누수 규모를 줄이기 위해서다. 비급여 항목 중 과잉진료가 많은 대표적인 사안인 도수치료와 백내장 수술의 보험금 지급 기준이 강화되는 게 골자다. 보험사가 가입자에게 검사지, 의사 소견서 제출을 요구하거나 의료자문 의뢰를 통해 수술 및 치료의 적정성을 판단하고 이에 따라 보험금 지급 여부를 결정하는 식이다.

30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국내 보험사들은 도수치료와 백내장 수술에 대한 보험금 지급 기준을 강화한다. KB손해보험은 다음 달부터 새로운 도수치료 보험금 지급 기준을 도입한다. 도수치료 20회 이상 이용 시 의사 소견서 제출을 통해 치료 필요성 및 효과를 검토하고, 이에 따라 보험금을 지급한다. 도수치료 50회 이상 이용 시에는 보험사가 의료자문을 의뢰해 치료 적정성을 심사하고 보험금 지급 여부를 결정한다는 방침이다.

일부 보험사에서는 도수치료의 과잉진료를 막기 위해 이미 강화된 보험금 지급 기준을 시행하고 있다. 현대해상은 현재 20회 이상 도수치료를 받은 가입자에 의료자문을 의뢰하고 있다. 이를 통해 치료 적정성을 판단하고 보험금 지급 여부를 결정하는 방식이다. 메리츠화재는 올해부터 50회 이상 도수치료를 받은 가입자에 의사 소견서 제출을 요청하고 있다. 정확한 진단명, 치료 필요성 및 효과 등을 증명할 수 있는 서류를 제출해야지만 치료비 보상이 가능하다.

백내장 수술의 경우 세극등현미경검사 결과 제출을 해야만 보험금 지급이 가능할 전망이다. 세극등현미경검사 결과를 내지 않으면 보험금을 받을 수 없고, 관련 검사 결과를 제출했더라도 백내장으로 확인되지 않으면 보험금을 탈 수 없게 된다. 일부 보험사에서 이미 적용 중인 보험금 지급 기준이었으나, 다음 달을 기점으로 대다수의 보험사가 이 기준을 시행할 방침이다.

대형 보험사 관계자는 "도수치료와 백내장 수술 청구 건에 대해선 보험금 지급 기준을 계속해서 강화해야 한다는 게 업계 공통된 입장"이라며 "최근 대형 손해보험사 중심으로 두 비급여 항목에 대한 보험금 지급 기준이 빠르게 강화됨에 따라 중소 손보사 사이에서도 비급여 항목의 지급 기준을 동일 적용하는 위한 준비 작업에 돌입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보험사들이 실손보험 비급여 항목의 보험금 지급 기준 정비에 나선 것은 과잉진료로 인해 적자 규모가 나날이 불어나고 있다고 봐서다. 실손보험 적자는 2017년 1조2000억원 수준에서 2019년 2조5000억원 수준으로 대폭 늘어났다. 실손보험 적자는 지난해 사상 처음으로 3조원을 넘길 것으로 추정된다. 일부 병·의원들이 비급여 항목에서 보험금을 노리고 수요자들을 부추긴 결과다. 실제 백내장 수술과 도수치료 단 2개 항목에서 발생한 지급 보험금 비중이 전체의 20%를 뛰어넘은 상태다.

백내장 수술은 나이가 들면서 회백색으로 혼탁해진 안구 내 수정체를 제거한 뒤 인공 수정체로 교체하는 수술이다. 수술 자체가 간단하고 소요 시간도 20분 내외로 짧기 때문에 종합병원급이 아닌 의원급 의료기관에서도 쉽게 치료받을 수 있는 질환으로 분류된다. 문제는 일부 병·의원들이 백내장 환자가 아님에도 백내장 수술을 행하는 데서 발생했다. 시력 교정 기능이 있는 백내장 다초점 렌즈 삽입술을 시행해 보험사에 실손보험금을 청구하기 위한 목적에서다.

실손보험금을 노린 백내장 수술이 급속도로 늘어나면서 관련 실손보험 재정 누수는 심각한 수준에 도달한 상태다. 보험연구원에 따르면 2016년 779억원에 그쳤던 백내장 수술 실손보험금은 지난해 15배가량 급증한 1조1528억원으로 추산된다. 손해보험 전체 실손보험금에서 백내장 수술이 차지하는 비중 또한 2016년 1.4%에서 2020년 6.8%로 4년 동안 4.8배 늘어난 것으로 집계됐다. 이는 2016년부터 2020년까지 백내장 수술 건수가 매년 10%씩 증가한 것을 고려하더라도 매우 높은 비중이다.

도수치료 또한 보험금 누수 정도도 심각하다. 2020년 기준 삼성 현대 DB KB 메리츠 등 5대 손보사의 외래진료비 보험금 수령액 상위 5명 중 4명이 근골격계 만성 통증 환자로 확인됐다. 중증질환자는 다섯번째로 많은 진료비를 받은 유방암 환자가 유일했다. 외래진료비 보험금 수령액 상위 5명의 평균 보험금은 6945만8000원으로 집계됐다. 실손보험금 수령액 상위 50명에서도 근골격계 만성 통증을 이유로 1년에 200회 이상 도수치료를 받고 4000만원이 넘는 비급여 진료비를 지출한 사례가 다수 확인됐다.

최근 몇 년 새 도수치료, 체외충격파 치료 등 근골격계 분야의 비급여 재활·물리치료 관련 청구액이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다. 비급여 재활·물리치료는 연간 약 40%의 높은 증가율을 기록한 상태다. 비급여 항목 비용의 경우 의료기관이 자율적으로 책정할 수 있는 사안이라서다. 5대 손보사가 지급한 비급여 재활·물리치료비는 2018년 2392억원에서 2020년 4717억원으로 늘어났다. 2년간 증가율만 97%를 넘은 셈이다.

문제는 소수의 비급여 항목 과잉진료가 전체 가입자의 보험료 부담으로 전가된다는 것이다. 올해 들어 실손보험료는 평균 14.2% 인상됐다. 1세대(2009년 9월까지 가입)와 2세대(2009년 10월~2017년 3월) 실손보험의 인상률은 16%로, 이들 상품은 4년 연속 보험료가 평균 9.9% 이상 올랐다. 3세대(2017년 4월∼2021년 6월) 실손보험은 2020년부터 상품 안착을 위해 적용해왔던 한시적 할인 혜택(8.9%)이 사라지면서 보험료가 오르게 됐다.

실손보험 비급여 항목의 과잉진료 문제와 이에 따른 보험금 누수 문제가 대두되면서 금융당국까지 제도 개선 작업에 돌입한 상태다. 금감원은 지난해부터 실손보험 비급여 보험금 누수 방지 방안을 마련하는 실무 태스크포스(TF)를 운영하고 있다. TF는 백내장 수술, 도수치료뿐만 아니라 영양주사제, 갑상선 고주파 절제술, 하이푸 등 주요 과잉진료 우려 비급여 항목에 대한 보험금 지급 기준 강화 방안을 협의해 시행한다는 계획이다.

아울러 올해 1월 실손보험의 재정 위기를 해소하기 위한 범부처 정책협의체까지 발족한 만큼 보다 합리적인 비급여 항목 관리 방안을 내놓는 데에 집중하겠다는 게 금융당국의 입장이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백내장 수술과 도수치료의 과잉진료가 실손보험금 누수를 유발하는 대표적인 사안이라는 데 이견이 없다. 현재 보험업계 내에서 이뤄지고 있는 보험금 지급 기준 강화 지침을 기반으로 세부적인 지급 기준이 세워질 것"이라며 "현재 당국에서는 제도개선 TF, 정책협의체에서 논의한 사안을 토대로 실무적인 검토 의견을 작성 중이며, 이를 통해 실효성 있는 비급여 항목 관리 방안이 도출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김수현 한경닷컴 기자 ksoohy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