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상장지수증권(ETN)은 혹한기를 맞았다. 초유의 ‘마이너스 유가’ 여파로 원유 ETN 투자자가 대규모 손실을 봤기 때문이다. 변동성이 커지며 원유 ETN들이 줄줄이 상장폐지 위기에 몰렸다. 하지만 원유 ETN을 둘러싼 소동은 투자자에게 오히려 ‘원자재 투자처’ ETN의 이름을 각인시키는 계기가 됐다. 최근 우크라이나 사태로 원자재 가격이 출렁이자 ETN으로 돈이 몰려든 배경이다.

○원자재 급등하자 ETN 거래대금 ‘쑥’

30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지난달 ETN 하루평균 거래대금은 613억4000만원으로 지난해 평균보다 36% 넘게 늘었다. 해외 원자재 ETN 거래대금이 전달보다 133.4% 폭증한 게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 원유 등 일부 원자재 ETN 수익률이 치솟으며 투자 수요가 몰리자 추가 발행으로 인해 ETN 시장이 10조원대로 커졌다.
일러스트=추덕영 기자
일러스트=추덕영 기자
전균 삼성증권 연구원은 “최근 원자재 투자 수요가 몰리면서 ETN을 추가 발행한 게 ETN 시장 전체를 키우는 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올 들어 수익률이 가장 높은 ETN은 ‘삼성 레버리지 WTI원유 선물’로 이 기간 98.67% 폭등했다. 뒤이어 ‘미래에셋 레버리지 원유선물 혼합 ETF(H)’와 ‘신한 레버리지 WTI원유 선물 ETN(H)’의 연초 이후 수익률은 각각 97.00%, 96.11%에 달한다.

상장지수펀드(ETF) 투자 열기도 ETN 시장을 키우는 데 일조했다. ETF와 ETN은 대체재이자 보완재 관계다. 후발주자 ETN은 원자재와 레버리지·인버스 중심으로 틈새시장을 노렸다. 금융당국이 ETN 도입 당시 코스피200 등 대표지수는 ETF 몫으로 제한한 것도 ETN이 원자재 상품에 쏠린 배경이다.

○분산 규정 약한 건 장점이자 단점

메타버스 등 지난해 국내에 처음 출시된 ‘핫한’ ETF 테마는 알고 보면 ETN이 한발 앞섰다. 신한금융투자는 지난해 9월 초 국내 최초로 메타버스 ETN을 출시했다. 국내 메타버스 ETF가 출시된 건 같은 달 말이었다. 업계 관계자는 “자산운용사가 설계하는 ETF와 달리 ETN은 판매사인 증권사가 직접 만들기 때문에 고객들의 투자 수요를 더 빠르게 포착하는 경향이 있다”고 했다.

상품 구성 관련 규제가 ETF보다 유연한 건 장점이자 단점이다. 예컨대 ETN은 최소 분산 규정이 5종목이다. 해외증권시장에서 거래되는 종목만으로 구성할 때는 3종목만으로도 가능하다. 빠르게 핫한 테마 상품을 내놓을 수 있는 이유다. ETF는 최소 10개 종목 이상에 분산 투자해야 한다. 바꿔 말하면 ETF보다 분산도가 상대적으로 낮아 투자 위험이 더 크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물론 ETN에 고위험 상품만 있는 건 아니다. 2017년 한국투자증권이 처음 선보인 ‘메가 히트 상품’ 양매도 ETN은 코스피지수가 박스권에 있을 때 수익을 내는 데 특화된 상품이다. 매월 옵션 만기일에 콜옵션과 풋옵션을 동시 매도하는 방식으로 옵션 프리미엄을 통해 수익을 추구한다.

○ETN 투자 시 주의점은

ETF와 달리 ETN은 최대 20년의 만기가 있다. 대표지수 내 자산을 직접 담아 운용하는 게 아니라 금융회사 간 계약을 통해 이뤄진 상품인 만큼 발행사인 증권사가 파산하는 최악의 경우가 발생하면 휴지조각이 될 수 있다. 실제 2008년 리먼브러더스가 파산했을 때 이 회사가 발행한 ETN도 상장폐지됐다. 투자자들은 꼼짝 없이 원금을 날렸다.

원자재·레버리지·인버스 상품 위주인 만큼 ETN 시장의 변동성도 크다. 원자재 가격이 출렁일 때마다 ETN으로 ‘불개미’들이 모여들자 금융당국은 투자 경고를 냈다. 이달 대신증권의 ‘곱버스(-2배)’ 니켈 ETN은 니켈 선물 가격 급등에 기초지수 가치가 0으로 떨어져 상장폐지되기도 했다.

업계에서는 ETN 시장의 지속 성장을 전망한다. ETN 시장에 뛰어드는 증권사도 2014년 6곳에서 현재 9곳으로 점차 늘어나는 추세다. 김연추 미래에셋증권 파생부문 대표는 “ETN은 ETF 대비 후발주자라는 약점을 극복하기 위해 다양한 상품을 공격적으로 발굴해왔다”며 “ETF를 비롯한 패시브 투자 시장 성장세와 더불어 ETN 시장의 성장세도 계속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구은서 기자 k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