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산둥성 웨이하이시에 있는 한국 중견기업 A사의 중국 법인장은 하루하루 피가 마른다. 한국에서 보낸 자재가 웨이하이항에 도착한 지 열흘이 넘었지만 아직도 자재를 생산에 투입할 수 없어서다. 코로나19 여파로 항구가 봉쇄됐다가 10일 만에 풀리면서 자재를 실은 컨테이너가 가까스로 공장에 도착했지만 중국 정부의 강화된 코로나19 방역조치 탓에 창고에서 최소 10일 간 더 격리돼야 하는 현지 정책 때문이다. 전화 너머로 들리는 A사 법인장의 목소리는 다급했다. 그는 “자재 등 화물 대상 PCR(유전자 증폭) 검사 결과 양성이 나오면 2주일, 음성이 나와도 10일 동안 화물을 격리해야 한다”며 “재고가 바닥을 드러내고 있어 자재를 빨리 꺼내지 않으면 자칫 공장 가동을 멈춰야 할 수도 있다”고 발을 굴렀다.

31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중국이 ‘제로 코로나’ 정책 유지를 위해 상하이, 웨이하이, 칭다오, 선전 등 주요 도시를 봉쇄한 불똥이 현지에 진출한 한국 기업으로 튀고 있다. 도시가 전면 또는 부분 봉쇄되면서 조업이 차질을 빚는 반면 인건비와 방역비 등 비용 상승 요인은 걷잡을 수 없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웨이하이 칭다오 옌타이 등이 있는 중국 산둥반도 연안은 한국과 지리적으로 가까워 정보통신(IT), 가전 등 다양한 업종의 중견·중소기업 수 백 곳과 일부 대기업이 진출해 있다. 국내 제조업에 미치는 영향도 상당하다는 평가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조업 차질이다. 도시가 봉쇄된 여파로 공급망이 훼손되고 인력 이동이 제한되면서 공장을 정상적으로 가동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웨이하이는 이달 31일 기준 20일째 봉쇄돼 있다. 칭다오와 옌타이도 2주 가까이 봉쇄가 지속되고 있다.

웨이하이에 법인이 있는 중견기업 B사 관계자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대비해 평소보다 넉넉하게 재고를 확보했음에도 자재 수급이 원활하지 않아 재고가 바닥을 드러내기 시작했다”며 “자재가 동나 조업을 부분 중단하는 기업이 하나둘 나오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대기업 고객사에서 연락올 때마다 혹시 경쟁사로 물량을 빼겠다는 전화는 아닐까 싶어 애가 탄다”고 털어놨다.

칭다오도 사정이 다르지 않다. 앞서 이달 중순 한국산 의류 택배를 코로나 확산 원인으로 지목한 이래 한국발 화물 대상 핵산 검사 및 살균을 강화하고 있다. “한국이 최근 세계 1위 확진자 배출국이었다는 오명이 기업 경영에 악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칭다오에 법인을 둔 한 상장사 대표는 “한국 기업만 표적이 된 건 아니지만 한국 화물을 좀더 깐깐하게 취급하는 분위기가 분명히 있다”며 “공급망 차질이 며칠만 더 지속되도 생산량 감소, 비용 상승 등 여파로 이번 달 적자로 전환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중국에선 2월은 긴 춘제 연휴가 낀 탓에 2월 말부터 인력을 확충하기 시작해 3월 들어 생산량을 본격 확대하는 게 일반적이다. 3월 직전 인력을 대폭 늘린 가운데 봉쇄가 맞물리면서 조업은 3월 내내 중단하다시피 했지만 인건비는 2월의 몇 배로 높아졌다는 얘기다. 그는 “한국과 달리 중국에선 코로나19로 조업을 안 해도 하루 8시간 근무한 걸로 계산해 직원들 기본급을 줘야 해 부담이 상당히 크다”고 말했다.

옌타이에 진출한 기업들도 신경이 곤두섰다. 상하이가 28일 봉쇄에 들어간 가운데 상하이를 다녀온 국내 한 대기업(LG 계열사) 직원이 같은날 확진 판정을 받은 것으로 알려지면서다. 현지 관계자는 “해당 직원이 협력사 직원도 만나고 온 까닭에 대기업과 협력사 공장이 모두 봉쇄될 가능성이 크다”며 “옆 도시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또 다른 코로나 대확산의 뇌관이 될 수도 있어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전했다.

김병근 기자 bk1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