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업체 중심 정책으론 한계
대기업 콘텐츠 투자 길 열어주면
'제2 오징어 게임' 많이 나올 것
31일 서울 CKL기업지원센터에서 만난 조현래 한국콘텐츠진흥원(콘진원) 원장은 한국 콘텐츠가 글로벌 시장의 중심에 우뚝 서게 된 비결로 ‘경쟁’을 꼽았다. “K콘텐츠 열풍의 가장 큰 요인은 국내 시장에서의 치열한 경쟁입니다. 한국 시청자들은 유명 감독과 배우가 만든 작품이라고 무조건 보지 않아요. 숨어 있는 좋은 작품을 적극 발굴하기도 합니다. 콘텐츠 성공 여부를 가늠하기 힘든 상황에서 다들 생존을 위해 실력을 열심히 키울 수밖에 없죠.”
이렇게 치열한 경쟁을 통해 탄생한 K콘텐츠는 해외 시청자들의 마음까지 깊숙이 파고들고 있다. “경쟁하는 과정에서 사람들의 감정과 욕구를 정확하게 읽어내게 된 거예요. 여기에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와 유튜브 등이 발달하며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했습니다. 국내 콘텐츠 기업들은 이제 기획 단계에서부터 해외를 1차 시장으로 생각하고 제작에 들어갑니다.”
지난해 9월 취임한 조 원장은 문화체육관광부 콘텐츠정책국장, 종무실장 등을 지냈다. 문체부 출신이 콘진원장에 오른 건 처음이다. 그는 콘텐츠 산업 발전을 위한 콘진원의 다양한 인프라·자금·인력 지원에 대해 강조했다.
‘오징어 게임’은 콘진원이 대전에 마련한 국내 최대 규모의 ‘스튜디오 큐브’에서 제작됐다. 스튜디오 큐브는 지하 1층~지상 2층 구조로, 연면적 3만2000㎡에 달한다. ‘킹덤 2’ ‘스위트홈’ ‘미스터 션샤인’ 등도 이곳에서 탄생했다.
그는 취임 후 업체들이 자금 융통을 원활히 할 수 있도록 ‘콘텐츠금융지원단’도 꾸렸다. 물적 담보가 없어도 우수한 지식재산권(IP)을 보유하고 있으면 융자를 받을 수 있도록 돕는다.
콘진원은 전문 인재 양성에도 힘써 왔다. 8000여 명의 인재가 ‘창의인재동반사업’ 등 콘진원의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배출됐다. “화가 파블로 피카소의 작품이 총 2만 점 넘는데 사람들이 기억하는 건 10점 이내입니다. 그만큼 많은 작품을 만들어야만 누구에게나 각인될 만한 성공작이 나오는 거죠.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들도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실력을 키울 수 있도록 도와야 합니다.”
앞으로 K콘텐츠가 글로벌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규모의 경제’를 이루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고도 강조했다. “지금까진 중소업체 중심으로 정책을 마련할 수밖에 없었지만, 이젠 투 트랙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거인의 어깨 위에 올라타 세상을 볼 수 있을 정도가 아니면 ‘오징어 게임’과 같은 작품이 탄생하기 힘들어요. 대기업들이 콘텐츠에 더욱 적극 투자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김희경 기자 hk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