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값 급등으로 청년 세대가 주거비를 마련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가운데 일부 국회의원의 자녀들은 부모로부터 돈을 빌려 주거지를 마련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모두 차용증을 작성했고, 이자를 지급한 만큼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사인 간 대출이 증여세를 회피하기 위한 탈세 수단으로 활용될 여지가 크다고 경고했다.

31일 정부 공직자윤리위원회에 따르면 전해철 행정안전부 장관은 지난해 말 기준으로 장녀와 장남에게 각각 1억원, 9000만원을 대여했다. 전 장관의 장녀는 여기에 추가적으로 2억5000만원의 금융권 대출을 받아 지난해 경기 성남 백현동의 ‘더샵 판교 퍼스트파크’ 아파트 전세계약을 체결했다. 전 장관의 장남도 아버지로부터 대여한 9000만원과 개인 자금을 합쳐 서울 안암동의 다세대주택 전세보증금(1억6000만원)을 마련했다.

대선 당시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원회 의장을 맡았던 박완주 의원도 자녀의 전세 고민을 해결해줬다. 박 의원은 지난해 아들에게 2억원을 대여했고, 아들은 여기에 8000만원을 더해 세종시 고운동 가락마을8단지에 2억8000만원의 전세계약을 체결했다.

‘아빠찬스’로 내집 마련에 성공한 의원 자녀도 있다. 김상훈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해 장남에게 2억원을 대여했다. 김 의원의 장남은 지난해 7억9000만원을 들여 경기 안양 대림동 초원대림아파트(59.74㎡형)를 매입했다.

이 같은 사인 간 대여는 법적으로는 문제가 없다. 양측이 금전소비대차계약서(차용증)를 작성하고, 돈을 빌린 사람이 세법상 차용증 적정이자율인 연 4.6%를 지급하면 된다. 자녀들에게 대출한 의원들은 모두 “현행법에 따라 차용증을 작성했고, 이자를 받은 기록이 있다”고 주장했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사인 간 대여가 자산가들의 편법 증여 수단으로 애용되는 경우가 빈번하다고 지적했다. 자녀에게 거액을 대여하고 이자를 받은 뒤 그 금액을 현금으로 돌려주는 편법이 있어서다. 대출 만기를 계속 연장할 경우 증여세 없이 증여하는 효과를 볼 수 있다. 이런 편법 증여는 적발하기도 어렵다.

안창남 강남대 세무학과 교수는 “세법상 자녀에게 돈을 빌려주고 이자를 수령했다면 부모가 매년 이자소득을 신고하고, 계약 종료까지 반드시 적정이자를 받아야 한다”며 “첫 1~2년에는 이자를 갚는 척하다가 시간이 지나면 흐지부지되는 경우가 흔하다”고 했다. 정치인들이 자녀들에게 주거비용을 빌려주는 것에 대한 곱지 않은 시선도 있다. 집값 급등에 따른 강력한 대출 규제로 일반인들은 주택 구입, 전세자금 대출에 애로를 겪고 있어서다.

전범진 기자 forwar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