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프리즘] 기업 압박하는 시대는 끝났다
“줘 본 사람들만 안다. 매달 돌아오는 월급날의 무서움을….”

기업 대표를 만날 때면 기업 규모와 업종을 가리지 않고 자주 듣는 얘기다. 한 중소기업 사장은 이런 속내도 꺼냈다. “2월은 28일까지밖에 없다. 1월보다 3일이나 적다. 근무 일수를 따지면 10%나 된다. 그런데 왜 월급은 똑같이 줘야 하는지 의문이다.” 기업뿐만 아니다. 약 550만 명의 자영업자 중 절반 이상이 ‘나 홀로 사장’이다. 영세 자영업자로선 직원 한 명 월급 챙겨주기도 버겁다는 얘기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지난 21일 경제단체장들과 대선 이후 첫 만남에서 꺼낸 얘기도 ‘월급’이었다. 윤 당선인은 “월급을 받는 사람뿐만 아니라 월급을 주는 사람의 입장을 이해하고 존중하겠다”고 말했다. 그날 참석한 최진식 중견기업연합회 회장은 “평생 검사 생활하신 분이 맞나 싶은가 할 정도로 기업에 대한 이해가 깊더라”고 반색했다.

관심은 새 정부가 월급을 주는 사람의 입장을 ‘어떻게’ 존중할지다. 한국은 대표적인 ‘경영 고비용 사회’다. 법인세율 27%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22%)보다 높다. 가파르게 오른 최저임금과 주 52시간제 규제는 너무나 많이 지적된 이슈다. 기업이 부담하는 각종 부담금 등 준조세 규모는 약 72조원(2020년 기준·전국경제인연합회)에 이른다. 통계로 잡히지 않는 비자발적 기부금은 그나마 제외한 수치다. 문재인 대통령도 ‘대기업 준조세 금지법’을 약속했지만, 임기가 끝나가도록 감감무소식이다.

5년마다 돌아오는 대통령 선거에서 여야, 진보와 보수를 떠나 모든 후보는 “기업과 경제활동의 자유를 제한하지 않도록 하겠다”고 공언했다. 불합리하고 불필요한 규제도 없애겠다고 했다. 하지만 대선이 끝난 뒤 기업을 ‘전리품’으로 내세워 투자와 고용을 압박하는 구태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권력은 시장에 있다”고 너스레를 떨지만 이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는 기업인은 많지 않다.

법치주의의 잣대도 모호하다. 새 정부 출범을 앞두고 당장 검찰 조직 확대와 함께 수사권 강화가 기정사실로 되고 있다.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 없다’는 식의 전방위 사정(司正) 분위기 조성에 기업이 ‘희생타’가 될 것이라는 우려가 경제계에 파다하다.

무엇보다 한국의 ‘사법 준수 비용’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기업으로선 언제 어떻게 닥칠지 모르는 경영의 최대 리스크다. 검찰이 한국GM 카허 카젬 사장에게 내린 출국금지가 대표적이다. 검찰은 카젬 사장이 중국 상하이GM 총괄 부사장으로 발령 나자 근로자 불법파견 혐의로 재판받고 있다는 이유로 곧바로 출국을 금지했다. 외국계 기업들 사이에서 “중범죄도 아니고, 도주 우려도 없는 기업인의 출국까지 막는 것은 과도하다”는 지적이 잇따르자 뒤늦게 출금을 풀었다. 하지만 이미 상당수 외국 기업 본사에선 한국 부임 자체를 기피하고 있다. 외국 기업에도 이럴진대 한국 기업은 말할 것도 없다. 본인도 모르는 이유로 ‘범죄자’로 낙인찍혀 법정에 설 수 있다.

매년 바뀌는 세제 등 오락가락 정책과 정권마다 달라지는 기업 지배구조 규제도 마찬가지다. 경제계는 “정책의 예측 가능성과 규제의 투명성을 높이고, 정책 결정 과정에서 의견을 반영할 기회가 있어야 한다”고 요청했지만, 기업은 여전히 ‘을(乙)’일 뿐이다.

정치의 핵심은 먹고사는 문제다. 그 중심에는 경제가 있다. 이번 대선 결과에서 표심으로 확인됐다. 자유로운 경쟁을 통해 자기 역량을 충분히 발휘하도록 하는 것이 정부의 역할이다. 기업을 압박하는 시대는 끝났다. 부정행위를 요구하는 시대도 지나갔다. 여기서 끝낼 일이 아니다. 기업 경영의 고비용 구조를 고쳐야 한다. 그중 하나가 사법 준수 비용이다. 법치주의 원칙을 훼손하라는 얘기가 아니다. “기업인의 이야기를 많이 듣겠다”는 검찰총장 출신 윤 당선인의 약속이 허언(虛言)이 아니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