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58년 조선군 260명을 이끌고 전장에 나선 신류 장군이 전쟁 중 일상을 기록한 ‘북정일기’의 일부입니다. 한양을 떠난 날부터 돌아오는 날까지의 141일이 하루도 빠짐없이 기록돼있습니다. 여기서 언급되는 ‘적군’은 바로 러시아군입니다. 청나라가 러시아의 급격한 동진(東進)으로 인해 아무르강(흑룡강) 일대서 영토분쟁이 생기자 조선에 원군을 요청한 것이 발단이 됐습니다. 이른바 ‘나선(羅禪)정벌’입니다.
‘정벌’이란 거창한 명칭이 붙었지만 당시 조선은 러시아의 존재도 잘 알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이건 원군을 요청한 청나라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청나라 사신은 1654년 조총병 100여명을 요청에 ‘나선이 무엇이냐’는 효종의 질문에 “영고탑 인근의 별종”이라 대답합니다. 조선은 결국 싸우는 상대가 정확히 누군지도 모르는 채 1654년과 1658년(북정일기 기록 당시), 두 차례에 걸쳐 총 400여명(1차 152명·2차 260명)의 군대를 보냈습니다.
이근 대위가 쏘아올린 공...현역 군인까지 '우크라行'
‘정벌 대상’으로 1654년 한국사에 처음 등장한 러시아는 370여년이 지난 현재 그 때와 비슷한 대상으로 입에 오르내리고 있습니다. 러시아의 무력 침공, 무고한 주민들의 희생, 피해국의 지원 호소, 그에 따른 제3국인 한국 외교에 미치는 지대한 영향까지, 우크라이나 사태는 나선정벌과 여러모로 비슷한 점이 많습니다. 하지만 결정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바로 한국인들이 이 전쟁에 뛰어드는 방식입니다. 정부 차원에서 군대를 보냈던 나선정벌 때와 달리 정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개인 자격으로 전쟁에 뛰어들고 있기 때문입니다.우크라이나는 지난 2월 러시아로부터의 무력 침공 이후 외국인으로 구성된 ‘외인부대’를 결성했습니다. 우크라이나 외무부에 따르면 이른바 ‘우크라이나 국제의용군’은 52개국의 2만명으로 구성돼있습니다. 20만여명의 우크라이나 정규군의 10%에 달하는 숫자입니다. 특히 우크라이나의 민간인 피해가 갈수록 커지고,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의용군 참여 호소에 전 세계에서 우크라이나를 돕기 위해 찾는 이의 숫자도 계속해서 늘고 있습니다.
이 가운데 해병대 현역 병사가 휴가 중 의용군에 참여하겠다며 무단 출국하는 일도 벌어졌습니다. 해당 병사는 출국한 뒤 한 라디오방송과 전화 인터뷰까지 갖고 “부조리 같은 걸 신고해도 들은 체도 안 하던 사람들이 저 한 명 잡으러 (폴란드까지) 빨리 와 깜짝 놀랐다”며 “포로로 잡힐 바에는 그냥 자폭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이미 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외교 당국의 조치로 그는 폴란드에서 우크라이나 국경을 넘지 못했지만 결국 폴란드 국경검문소에서 사라진 이후 현재까지 행방이 묘연한 상태입니다.
美 "우크라 지원 방법 많아…즉시 철수해야"
자국민의 우크라이나 국제의용군 참여를 바라보는 각국의 시선은 크게 엇갈립니다. 리즈 트러스 영국 외무장관은 “우크라이나 전투 지원 여부는 개인의 결정이지만 우크라이나 국민은 전체 유럽을 위해,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해 싸우고 있다”며 “사람들이 그 투쟁을 지지하고 싶다면 (영국 정부는) 그렇게 하도록 지지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사실상 이들에 대한 적극적인 지지 의사를 표한 것입니다.반면 후방에서 적극적으로 우크라이나를 지원하고 있는 미국 정부는 자국민의 의용군 참여엔 부정적인 입장을 거듭 표명하고 있습니다.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여러 비정부기구(NGO)를 통해서도 우크라이나 시민들을 도울 방법이 많다”며 “미국 정부 역시 우크라이나를 도우려는 단체에 자원을 제공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미국 정부는 우크라이나 내 미국 시민권자들을 향해 여러 차례 즉시 철수를 촉구해왔습니다.
우크라이나 국제의용군에 참여한 사람들과 그들의 결정을 응원하는 사람들은 러시아의 불법 무력침공에 맞서 자유와 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서라고 강조합니다. 특히 6·25전쟁 당시 국교도 수립하지 않던 수많은 나라들의 도움을 받았던 한국이 러시아의 불법 침공에 맞서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많은 전문가들의 예상을 뒤엎고 장기전 형태로 흘러가고 있습니다. 이번 전쟁이 국제사회의 질서를 송두리째 흔들어 놓을 것이란 관측도 나옵니다. 한국에서도 민주주의·인권 등 가치를 수호하기 위한 ‘정벌’을 지지하는 목소리와 국익과 법치를 우선시해 ‘사태’를 막겠다는 목소리 간의 충돌은 시간이 흐를수록 커질 전망입니다.
송영찬 기자 0ful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