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카터 인플레' 전철 밟지 않으려면…
미국의 제39대 대통령 지미 카터는 퇴임 이후 인도주의 노력과 관련된 그의 활동을 국제적으로 인정받아 2002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하지만 경제정책에 실패하면서 엄청난 물가상승에 시달려 생활고에 따른 국민의 원성이 컸다. 결국 재임에 성공하지 못한 대통령 가운데 한 명이 된다.

당시 물가상승이 극심해 카터의 임기 첫해인 1977년 소비자물가상승률은 6.5%였는데 사실상 정권의 마지막 해인 1980년 13.5%에 이르렀고, 그 결과 카터 대통령의 이름을 따 심지어 ‘카터 인플레이션’으로 명명되기도 한다. 카터 행정부 시절의 윌리엄 밀러 의장을 임명한 것도, 또한 그를 재무부 장관에 발탁한 것도 카터 대통령이고, 대통령제하에서는 결국 모든 책임을 대통령이 질 수밖에 없다는 사실에서 물가상승에 따른 국민 고통을 상징하는 인플레이션 앞에 그의 이름이 붙는 것도 놀랍지 않다.

물론 카터는 국민의 경제적인 고통과 신음에 누구보다 공감한 대통령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인플레이션과 물가상승의 핵심 원인을 이해하고 대응하지 못한 것도 사실이다. 점점 물가상승이 가속화되던 1978년 10월, 카터 대통령은 인플레이션에 대응하는 정책을 밝히는 TV 연설을 한다. 진솔한 대통령이었던 카터는 연설을 통해 자신이 집권한 후에도 인플레이션이 악화 중임을 인정하고, 노력했으나 물가안정에 실패했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본인의 참모와 전문가들과 함께 논의했고 물가상승 제어에 하나의 방법은 없고 다양한 정책이 있을 수밖에 없다면서 인플레이션을 막기 위한 정책들을 발표한다. 카터 대통령이 연설을 통해 밝힌 정책을 요약하면 크게 세 가지다. 첫째, 불필요한 정부지출을 억제하고 연방정부의 고용을 축소해 정부 재정의 낭비를 막겠다. 둘째, 불필요한 규제는 제거해 활력 있는 경제를 만들겠다. 셋째, 소득세 감세는 하지 않겠다 등이었다.

이렇듯 TV 연설을 통해 발표된 정책은 미국 경제를 위해 필요하고 심지어는 인플레이션 제어에도 도움이 될 수 있는 것이었지만, 그 정책은 카터 행정부가 극복해야 할 가장 핵심적인 사안이었던 인플레이션에 대한 근본 대책이 아닌 주변 정책이었다. 핵심 정책이 없는 주변 대응으로는 폭발하는 당시의 물가상승을 제어할 수 없었다. 물론 일부 정책은 개별적으로 타당성을 지니는 정책이었지만, 문제는 카터 대통령에게 조언한 참모와 전문가 가운데 인플레이션 상황을 관리할 가장 핵심적인 방법을 알고 있는 이가 없었거나, 또는 알았다고 하더라도 그 방법은 연설에서 명시적으로 지적되지 않았고 실제 정책으로 시행되지도 않았다.

특히, 재정 낭비를 막고 불필요한 규제를 제거하겠다는 첫 번째와 두 번째 정책은 그 자체로서 경제적으로 타당성을 지니는 정책이며 물가상승 압력을 더는 데도 도움이 된다. 소득세 감세를 하지 않겠다는 것도 소비를 억제해 물가압력을 줄이는 데 역시 도움이 되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1976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밀턴 프리드먼 시카고대 교수가 이야기한 ‘인플레이션은 언제나 어디서나 화폐적인 현상이다’는 개념은 들어 있지 않았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프리드먼이 금리 인상만 강조했다고 생각해선 곤란하다. 대공황처럼 물가압력이 높지 않고 디플레이션으로 경제가 위험에 처했을 때는 통화공급을 늘려 대응해야 하지만, 당시와 같이 인플레이션 압력이 커지는 상황에서 통화공급을 제어하지 않고 다른 정책으로는 이를 근본적으로 막을 수 없다는 것이다.

결국, 근본적으로 기준금리 인상을 통한 유동성 회수라는 통화정책의 극적인 전환 없이는 인플레이션 제어가 불가능하다는 인식과 중앙은행의 실제 정책 전환이 필요했다. 그러나 카터 행정부는 그렇지 못했고 실제로 중앙은행 의장을 폴 볼커로 바꾼 이후에야 정책 전환이 가능했다. 그러나 카터 행정부의 성과로 나타나기에는 중앙은행 의장의 변경과 통화정책 전환은 너무 늦은 시점이었다.

한국은행의 물가관리 목표는 소비자물가상승률 기준 전년 대비 2%지만 올해 2월 현재의 소비자 물가상승률은 3.7%에 이르고 생산자 물가상승률은 8.4%에 달해 추가 상승도 우려되고 있다. 카터 인플레이션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 통화정책의 책임을 분명히 인식하는 중앙은행의 시의적절한 대응이 더욱 중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