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정부의 장밋빛 '엔데믹' 선언
“코로나19의 엔데믹(풍토병) 전환은 사람이 아니라 바이러스가 정하는 겁니다. 지금은 환자 증상이 악화해도 정부가 병상을 배정해줄 때까지 입원할 수 없는데 이런 상황에서 엔데믹을 논하는 건 어불성설입니다.”

정부가 최근 ‘코로나19 엔데믹화’에 운을 띄웠지만 감염병 전문가들의 반응은 냉랭했다. 코로나19가 엔데믹이 되려면 두 가지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는 게 의료계의 공통된 지적이다. 이재갑 한림대성심병원 호흡기내과 교수는 ‘유행의 예측 가능성’과 ‘일상적 의료체계로의 편입’을 꼽았다.

2009년 대유행한 신종플루가 대표적이다. 당시 정부는 신종플루를 코로나19처럼 1급 감염병으로 지정하고 확진자를 증상 발생일로부터 7일간 격리시켰다. 하지만 경구용 치료제 타미플루가 나왔고 매년 겨울 발생하는 계절독감의 패턴을 따르면서 신종플루는 자연스레 엔데믹 수순을 밟게 됐다. 지금은 신종플루에 걸려도 격리할 필요 없이 동네 병·의원에 가서 약을 처방받고 치료하면 된다.

반면 코로나19는 다르다. 두 조건 중 하나도 충족하지 못했다. 오미크론발 유행이 감소세로 접어들었지만 전문가들은 새로운 변이의 출현으로 올여름께 6차 대유행이 현실화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최근 세계보건기구(WHO)는 ‘XD·XF(델타+오미크론)’, ‘XE(오미크론+스텔스오미크론)’ 등 새로운 변이를 보고했다.

바이러스 변화를 예측하기 어렵다면 의료체계라도 준비됐어야 한다. 하지만 코로나19를 일상적 의료체계로 편입하는 작업은 여전히 미완성이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지난 1일 기준 재택치료 외래진료가 가능한 전국 병·의원은 569곳이다. 매일 4만~5만 명의 신규 확진자가 나오는 서울에서 대면진료가 가능한 곳은 62곳뿐이다. 소아환자를 받아주는 병·의원은 14곳에 불과하다.

게다가 의사가 외래환자를 음압병실에서 치료해야 한다고 판단하더라도 바로 입원시킬 수 없다. 코로나19 환자 전담 병상은 중앙사고수습본부 병상배정반이 관리한다. 병원에서 각 지역 보건소에 병상배정을 요청하고 보건소가 병상배정반으로 환자 정보를 보내는 등의 지난한 과정을 거쳐야 한다.

‘세계 최초로 코로나19 엔데믹을 이루겠다’는 정부의 선언이 지나치게 장밋빛이라는 지적이 의료계에서 쏟아지는 배경이다. 엔데믹으로 가기 위한 과제는 산적해 있는데 정부가 전면적인 일상회복에 나서겠다고 한 시점은 불과 2주밖에 남지 않았다. 섣부른 메시지로 국민에게 기대감을 주기보다 의료계와의 협의를 통한 시스템 준비 등 내실을 다지는 게 더 시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