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사들의 핵심 수익 지표인 정제마진이 관련 통계를 작성한 2000년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정유사들이 뜀박질하는 정제마진을 바탕으로 올 1분기에 ‘역대급’ 실적을 거둘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하지만 석유제품 수요가 크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는 만큼 장밋빛 실적을 낙관하기 어렵다는 평가도 있다.

4일 정유업계에 따르면 4월 첫째주 정제마진은 배럴당 13.95달러를 기록했다. 종전 최고치인 지난달 넷째주(13.87달러) 수준을 일주일만에 뛰어넘었다. 정제마진은 휘발유 경유 등 석유제품 가격에서 원유 가격을 뺀 값을 뜻한다.

지난 한 달간 정제마진은 5.7달러→12.1달러→7.76달러→13.87달러를 넘나들며 급등락을 반복했다. 국제 유가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사태, 중국의 코로나19 재확산에 따른 지역 봉쇄, 미국의 비축유 방출이라는 외부 요인이 한꺼번에 겹치면서 역대급으로 출렁이는 중이다. 정제마진도 이에 맞물려 '롤러코스터' 흐름을 타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높은 수준에서 오르내림을 반복하는 만큼 정유사들은 올 1분기 실적 신기록을 갈아치울 것으로 보인다. 통상 아시아 정유사들은 배럴당 4달러 정도를 손익분기점으로 보는데 지난 1월 평균 정제마진은 6달러, 2월은 7.7달러 수준이었다. 3월 평균치는 더 높을 것으로 전망된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엔가이드에 따르면 SK이노베이션은 올 1분기 매출 15조 7395억원, 영업이익 7546억원을, 에쓰오일은 매출 9조3397억원, 영업이익 9874억원을 올릴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정유사들의 표정이 밝지는 않다. 마진 개선은 고유가 영향이 아닌 실제 석유제품 수요 상승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지금은 유가 상승분이 지나치게 높아 제품 가격에 이를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업계의 분석이다. 판매량을 대폭 늘려 이익(마진×판매량)을 대거 불려야 하지만, 판매량이 저조한 흐름을 보여 이익 증대가 만만찮다는 뜻이다.

대한석유공사에 따르면 경질유 등 내수 수요는 12월 하루 평균 평균 93만6196배럴, 1월 88만3495배럴, 2월 81만1608배럴로 계속 줄어들고 있다. 정유사들은 올 초 80%까지 치솟은 공장 가동률을 오는 5월에 다시 끌어내리는 방안을 저울질하고 있다.

원유에 붙는 프리미엄(OSP)도 변수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사태로 세계 2위 산유국인 러시아 원유 공급이 불안정해지자 사우디산 원유로 수요가 몰리는 중이다. OSP가 3월 2.8달러에서 4월 4.95달러로 급등했다. 정유업계 관계자는 “5월 프리미엄은 7~8달러라는 이야기까지 나온다”며 “정제마진 등 이익을프리미엄 명목으로 산유국에 오롯이 퍼주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미국의 향후 6개월간 비축유 방출도 변수로 꼽히지만 단기적 영향만 줄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석유수출기구(OPEC)의 증산이 소폭에 그쳐 비축유만으로는 원유 가격을 안정시키기 역부족이라는 설명이다.

남정민 기자 peux@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