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자산운용사 실적 상위 10개사 가운데 5곳을 사모펀드 운용사가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주식시장 호황으로 성과보수가 급증한 데다, 라임·옵티머스 사태를 계기로 투자금이 믿을 수 있는 몇몇 사모펀드 운용사로 집중되면서다.

부동산 전문 운용사인 이지스자산운용은 800억원이 넘는 순이익을 올리며 주요 종합운용사를 제쳤다. 공모펀드 명가로 꼽혔던 한국투자신탁운용, 신영자산운용은 실적이 급감하며 순위권에서 밀려났다.
사모운용사, 실적 질주…'톱10'에 5곳 진입

주요 사모펀드 급성장

4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이지스자산운용은 작년 순이익이 전년 대비 96% 늘어난 867억원을 기록했다. 순이익 규모가 2020년 4위에서 2위로 두 단계 뛰었다. 저금리 기조 속에 부동산 투자가 각광받고, 주요 부동산을 성공적으로 매각했다.

‘은둔의 투자가’ 장덕수 회장이 이끄는 DS자산운용은 순이익이 769억원으로 전년 대비 137% 늘어났다. 순위는 8위에서 4위로 급상승했다. VIP자산운용(661억원·6위), 타임폴리오자산운용(550억원·7위), 마스턴투자운용(509억원·8위)도 10위권에 이름을 올렸다.

라임·옵티머스 환매 사태 때문에 사모펀드 시장이 위축될 것이란 예상이 많았다. 하지만 이 사태로 시장이 재편되고, 투자금이 믿을 만한 운용사로 집중되면서 상위 사모펀드들은 오히려 수혜를 봤다.

코로나19 사태로 주식 시장에 돈이 몰린 것도 이들 운용사의 이익을 늘렸다. 공모운용사와 달리 사모운용사는 약정수익률 초과분의 약 20%를 성과보수로 받는다. 증시 활황으로 투자금이 몰리면 순이익이 급격히 늘어나는 구조다.

증권업계는 ‘주식형 사모펀드 3인방’으로 꼽히는 DS자산운용, VIP자산운용, 타임폴리오의 약진에 주목하고 있다. 이들 운용사는 코로나19 사태 이전인 2019년에는 10위권(순이익 기준)에 들지 못했다. 2019년 당시 세 운용사의 순위는 차례대로 23위, 37위, 15위였다.

최준철 VIP자산운용 대표가 운용하는 ‘VIP Core Value 펀드’는 작년에만 182% 수익률을 올렸다. 타임폴리오는 운용 중인 멀티전략헤지펀드 11개의 평균 수익률이 35.65%(작년 기준)였다. DS자산운용도 주요 펀드가 100~150% 수익률을 기록했다.

이지스자산운용은 국내외 운용자산규모(AUM)가 52조원에 달하는 운용사로 성장했다. 2019년 순이익 순위는 6위였다. 최근 삼일빌딩, 오투타워, 미국 뉴멕시코주 아마존 물류센터를 소유한 리츠(부동산투자회사)를 매각해 수익을 거뒀다.

공모운용사는 환매 악순환

종합자산운용사들은 공모펀드의 인기가 식으며 역성장했다. 수수료가 비싼 공모펀드에 돈을 넣기보다 개별 주식이나 상장지수펀드(ETF)를 사는 투자자가 늘었기 때문이다.

펀드평가사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주식형 액티브 공모펀드 설정액은 2020년 초 21조8187억원에서 지난 4일 15조3175억원으로 급감했다. 최근 2년 순유출된 금액이 6조원에 달한다.

신영자산운용이 운용하는 ‘신영밸류고배당펀드’에서는 2020년 초부터 지금까지 2조6000억원의 자금이 빠져나갔다. ‘신영마라톤펀드’에서는 6500억원의 투자금이 순유출됐다.

투자금 유출은 수익률 악화로 이어진다. 환매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강제로 보유 종목을 팔아치워야 하기 때문이다. 신영자산운용은 순이익(115억원·잠정)이 전년 대비 3분의 1로 급감하며 10위권에서 사라졌다. 한국투자신탁운용도 353억원에서 330억원으로 역성장하며 순위가 9위로 미끄러졌다.

박의명 기자 uimy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