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기업·정부 등 3대 경제주체가 떠안고 있는 빚이 총 5000조원을 넘어섰다는 한경 보도(본지 A1·5면 참조)다. 국민 5174만 명에 1인당 1억원이 넘는 빚이다. 정부가 책임져야 할 1000조원이 넘는 공기업 보증 채무 등까지 합하면 그 규모가 6000조원을 웃돈다. 작년에 태어난 26만 명의 아이들은 평균 1억2000만원가량의 빚을 떠안고 생을 시작한 셈이다.

물론 빚 자체를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성장 과정에서의 적정한 빚은 ‘윤활유’ 역할을 한다. 문제는 성장이 둔화하거나 떨어지는데 과도한 빚을 내는 경우다. 한국이 꼭 그렇다. 2000년대 초 연 3.8%에 달했던 한국의 잠재성장률은 최근 1%대까지 떨어졌다. 2030년이면 0%대로 곤두박질칠 것이란 전망까지 나온다. 그런 상황에서 가계와 기업·정부 부문의 부채는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7개 회원국 중 가장 빠른 속도다. 잠재 성장률 꼴찌, 빚 증가 속도 세계 최고(OECD 회원국 기준)인 한국의 우울한 미래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나오는 게 하나도 이상하지 않다.

가계·기업·정부 3대 부문에서 가장 걱정스러운 것은 국가채무다. 중앙과 지방정부 채무를 합한 국가채무는 지난해 말 기준 965조원으로, 아직 가계부채(1862조원)나 기업신용 잔액(2361조원)에 미치지 못한다. 그러나 그 증가 속도는 배에 가깝다. 2020년 말 847조원에서 965조원으로 1년 만에 13.9% 증가했다. 가계부채(7.8%)나 기업신용(10.7%)과 비교가 안 된다. 4대 연금 채무나 공기업·공공기관 보증채무 등 정부가 궁극적으로 책임져야 할 비확정 보증 채무까지 포함할 경우 그 증가 속도는 더 가팔라진다.

더욱이 국가채무는 궁극적으로 개인과 기업이 세금으로 갚아야 하는 돈이다. 국가라는 추상적인 기구(조직)가 독립적으로 빚을 갚는 것이 아니다. 가계와 기업이 낸 세금으로 해결하는 구조다. 그럼에도 문재인 정부는 지난 5년간 마치 맡겨놓은 금고에서 본인 돈을 인출하는 것처럼 나랏돈을 마음대로 빼내 썼다. 그 결과 국가채무 비율은 10%포인트 이상 급증해 이제 50% 선에 육박하고 있다. 이대로라면 2026년 67%까지 오를 것이란 전망이다. 세계적으로도 보기 드문 속도다.

다행스럽게 새 정부는 재정 건전성과 가계부채 해결 등을 주요 국정과제로 내걸고 있다. 기존 재정지출을 구조조정하겠다는 방침도 들려온다. 하지만 지출을 줄이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모든 예산에는 그 돈을 자신의 것이라고 생각하는 이해관계자들이 있다. 비상한 각오로 임하지 않으면 해낼 수가 없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본인의 선심성 공약을 대폭 구조조정하는 솔선수범으로 분위기를 바꿔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