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흥국 올해 8천500조원 채무 상환 부담
[우크라 침공 ] 세계 각국, 치솟는 식품·연료값에 보조금…나라빚 더 쌓인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세계 각국 정부가 식품·연료 가격 급등에 대응해 보조금 지급과 세금 감면 조치를 줄줄이 도입하고 있다.

이에 따라 이미 코로나19로 재정지출이 급증했던 각국에서 추가 지출로 정부 부채가 더욱 늘고 있다고 미 월스트리트저널(WSJ)이 4일(현지시간) 보도했다.

특히 부채 증가를 감당하기 어려운 일부 국가는 정치적 불안정성이 커질 수 있다고 신문은 우려했다.

캐피털이코노믹스는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 국가들의 올해 국내총생산(GDP) 대비 재정적자 비율이 4.5%로 높아질 것으로 전망하며, 신규 보조금도 한 요인이라고 지적했다.

가뜩이나 물가가 급등 중인 유럽에서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휘발유와 경유 가격은 1970년대 '오일쇼크' 이후 최대폭으로 올랐다.

유럽인들은 치솟는 물가에 반발하고 있다.

그리스 농부들은 지난달 중순 아테네의 농업부까지 트랙터를 몰고 와 지원책을 요구했다.

이탈리아 시칠리아에서는 트럭 시위대가 식품 운송을 방해했다.

스페인에서는 트럭 기사들이 일부 지역의 식품 부족 사태를 일으켰다.

스페인 패스트패션 브랜드 자라를 소유한 인디텍스는 트럭 시위로 제품 운송이 지연될 수 있다고 밝혔다.

스페인의 3월 소비자물가는 1년 전보다 9.8% 올랐는데 이런 물가 상승률은 1985년 이후 최고다.

이에 따라 프랑스는 지난달 중순 4억유로(약 5천300억원) 규모의 관련 지원 대책을 발표했다.

스페인도 5억유로의 정부 지원 계획을 밝혔지만, 시위자들은 턱없이 부족하다며 퇴짜를 놨다.

독일은 현금을 지급하고 대중교통 요금을 대폭 할인하며 한시적으로 휘발유·경유 가격 상한제를 도입했다.

[우크라 침공 ] 세계 각국, 치솟는 식품·연료값에 보조금…나라빚 더 쌓인다
특히 신흥국에서는 국가부채 조달 비용도 문제다.

신흥국은 올해 7조달러(약 8천500조원) 이상의 정부 채무를 상환해야 하는데 이는 지난해의 5조5천억달러보다 약 27% 늘어난 것이다.

아프리카에서 코로나19가 초래한 경기침체로 고전한 정부들은 식품·연료 가격 급등에 보조금과 세제 혜택을 유지하거나 재도입했다.

이는 아프리카의 정부 부채 위기를 악화할 수 있다.

나이지리아는 가스 보조금 취소 계획을 중단했다.

잠비아는 옥수수 농부들을 지원하기 위해 비료 보조금을 확대했고 이에 따라 급증하는 대외채무를 억제하려는 노력이 위험에 빠졌다.

동아프리카 최대 경제국인 케냐는 물가 상승을 억제하기 위해 2년간 5억달러(약 6천억원) 이상을 지출할 계획이다.

이집트는 밀가루와 연료 가격 급등으로 정부 지출이 10억달러 늘어났다.

이집트는 세계 최대 밀 수입국으로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에서 밀의 70%를 수입한다.

이라크는 식품 가격 인상에 항의하는 시위 이후 전략 비축 밀가루와 석유를 제공하기 시작했다.

다만 아시아는 과거 위기 때와 비교하면 우크라이나 전쟁의 인플레이션 압력에 버틸 힘이 더 있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재정 건전성이 높아졌고 외국 자본 의존도는 낮아졌기 때문이다.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는 원자재 순 수출국이다.

이 때문에 원자재 수출로 얻은 막대한 수입으로 보조금을 지급할 수 있다.

중국은 유가가 오를 때 국유 정유업체들이 추가 비용을 부담하는 방식으로 소비자를 보호한다.

인도 정부는 소비자와 농민을 지원하기 위해 올해 회계연도 식품·비료 보조금 프로그램으로 400억달러(약 49조원)를 편성했다.

인도는 재정적자를 GDP의 6.9%에서 6.4%로 낮추려던 목표를 달성하기 어려울 수 있다.

파키스탄은 임란 칸 총리가 2월 말 15억달러(약 1조8천억원) 규모의 휘발유·경유·전기 보조금을 발표했다.

인플레이션 급등으로 지지도가 떨어진 칸 총리에 대해 야당은 불신임 투표를 시도하기도 했다.

요르크 크레머 독일 코메르츠방크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보조금에 대해 "단기적으로는 소비자 심리를 떠받칠 수도 있지만 경제의 건전한 조정을 막는다"고 말했다.

소비자와 기업이 경제적 변화에 적응하지 못 하게 한다는 것이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