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꼰대가 날 미치게…" 익명게시판에 이런 글 올라왔다면
K사 익명게시판에 어느날 다음과 같은 글이 올라왔습니다.


제목: 젊은 꼰대가 저를 미치게 합니다.

처음 제(A)가 입사했을 때는 신입이 몇 년 만에 처음 들어왔다면서 팀원들은 모두 반기는 분위기였습니다. 그중 한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남자 사원 B가 저를 무척 반겼는데, 분위기를 보아하니 B가 오랫동안 막내였던 것 같습니다.

며칠 지켜보니, 팀 내 B의 입지는 ‘젊음’, ‘MZ 세대’ 그 자체였습니다. 예를 들면 스트릿한 패션으로 출근을 하면 팀원들은 "요즘 세대는 역시 다르다"면서 B를 추켜세워주는데, B는 이에 질세라 능청스럽게 “전 꼰대랑 같이 안 놀아요~ 젊게 삽시다” 이러는 겁니다. 뻔뻔한 것인지, 당당한 것인지 신입인 저로서는 당황스럽긴 했지만, 그래도 저 사람이 저에게 ‘꼰대질’을 하지는 않겠다고 은근히 기대했었죠.

하지만 기대와 달리, B의 본색은 OJT를 시작하면서 드러났습니다. B는 매뉴얼의 내용을 설명해 주면서 “이건 이렇게 하면 시간 많이 걸리니까 내가 알려준 대로 하면 돼”라면서 자연스럽게 반말을 하고, 제가 그래도 매뉴얼 대로 안 해도 되냐고 물었더니 “어린이는 몰라요~ 형이 이 바닥에서 지금 몇 년째인데 한 번도 그런 일 없었어. 괜찮아”라며 저를 애 취급하는 겁니다.

그런데 B가 알려주는 대로 작업을 하다가 결국, 회사에 큰 손해가 발생하는 사고가 났습니다. 곧바로 징계위원회가 열릴 수 있을 정도로 큰 사고였습니다. B에게 가서 시킨 대로 했는데 어떡하냐고 하소연을 하니, “왜 매뉴얼을 안 지켜서 이런 사달이 나게 했냐? 내가 언제 그렇게 알려줬냐? 증거 있냐?”며 오히려 화를 내며 책임을 회피하는 겁니다.

이 사건 이후로 저는 회사에서 문제아 취급을 받고 있네요. 그 와중에 B는 저 들으라는 듯이 사람들에게 “요즘 애들은 진짜 신중하게 뽑으셔야 해요. 이번 신입 보셔서 아시잖아요”라며 이상한 소리를 하는 겁니다. 거기다 대고 제가 뭐라 화낼 수도 없고 미쳐버릴 것 같습니다.

하소연할 곳도 없어서 여기에 말합니다. 저 직장 내 괴롭힘 당한 거 맞죠?


이 글을 본 고충처리 담당자에게는 직장 내 괴롭힘 사실 확인을 위한 조사 의무가 있을까요?

근로기준법 제76조의3조 제2항에 따라 사용자에게 직장 내 괴롭힘 사건을 인지한 경우에는 지체 없이 사실 확인을 위한 조사하는 의무를 규정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경우에는 익명게시판의 특성상 당사자를 특정하는 것이 매우 어려운 상황이라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러한 글을 고충처리 담당자가 읽었다는 사실만으로 직장 내 괴롭힘을 인지하여 근로기준법에 따른 조사 의무가 발생한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며칠이 지나 사내 다른 직원 C가 이 글을 읽고 특정 근로자를 지정해서 고충처리 담당자에게 알린 경우는 제3자에 의해 직장 내 괴롭힘을 인지하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 경우에는 사용자에게는 사건 조사 의무가 발생하므로 고충처리 담당자는 지체 없이 사실 확인을 위한 조사를 진행해야 합니다.

다만, 사건을 접수한 고충처리 담당자는 조사를 진행하기 전에 해당 근로자의 의사를 확인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통상적으로 익명게시판에서 당사자를 특정하기 어렵지만, 위와 같이 제3자에 의해 신고가 접수된 경우에는 해당 근로자에게 비공식적인 루트로 연락을 취하여 정식 신고접수 의사를 타진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만약 A가 정식 신고접수에 동의하여 조사가 개시될 경우를 가정할 때, 사건 조사담당자가 가장 중점을 두어야 할 사항은 B의 행위에 대한 사실조사와 확정된 사실관계에서 업무상 적정 범위를 초과한 것인지에 대한 단서를 확보하는 것입니다.

해당 사례에서의 주요 행위로는 ①잘못된 정보를 제공하여 징계를 받게끔 한 행위 ②뒷담화(또는 공공연하게 모욕적 발언을 한 행위) ③하대하는 표현 및 반말 등이 있습니다. ②나 ③은 주변 참고인 조사를 통해 사실관계에 대한 상당한 단서를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이나, ①의 경우 1:1로 이루어졌을 가능성을 고려할 때 당사자의 진술만으로는 사실 여부를 확인하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①의 경우에는 당사자 진술뿐만 아니라 과거의 업무 이력 및 관련 자료(ex. 과거 업무 관련 시스템에 남아 있는 흔적 데이터)를 확인하는 등 직접적으로 업무 프로세스를 들여다보며 A와 B의 상호 진술에 대한 신빙성을 판단할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또한, 객관적인 조사를 위해 전문조사 기관을 통해 처리하는 방법도 고려할 수 있을 것입니다.

직장인 익명게시판이 활발해지면서 직장 내 괴롭힘과 관련된 고충을 자주 목격할 수 있습니다. 이 경우, 고충처리 담당자가 회사 내 모든 사원의 사정을 알 수 없으므로 해당 내용만으로 특정 근로자를 유추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위와 같이 제3자가 특정 근로자를 지정하여 신고를 접수하면 사건 조사로 이어질 여지가 있지만, 그전에는 직장 내 괴롭힘을 방관할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사내 고충처리 절차에 대한 지속적인 홍보가 중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젊은 꼰대의 등장으로 직장 내 괴롭힘의 유형이 과거와는 달리 다각도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직장 내 괴롭힘은 세대를 구별하지 않으므로 세대를 막론하고 자신의 행동이 누군가에게 피해를 끼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김용선 행복한일연구소/노무법인 노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