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전 초간본으로 다시 읽는 윤동주·김억
‘바다를 건너, 푸른 바다를 건너/머나먼 저 바다의 수평선 위로/끊지도 아니하고 홀로 가는/언제나 하소연한 나의 꿈.’

1923년 출간된 한국 최초의 창작 시집인 《해파리의 노래》(김억 지음)에 실린 시 ‘바다 저편’의 한 대목이다. 내년 이 시집의 출간 100주년을 앞두고 《한국 시집 초간본 100주년 기념판 세트》(열린책들·사진)가 나왔다. 《해파리의 노래》부터 윤동주의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1948년)까지 한국 현대시의 뿌리를 알 수 있는 시집 20권을 한데 모았다.

《해파리의 노래》 이후 한국 시는 정형화된 율조에 맞춰 민중 계몽을 노래했던 창가와 신체시에서 벗어나 인간 본연의 순수한 감정을 자유롭게 표출하게 됐다. 김소월의 《진달래꽃》(1925년), 한용운의 《님의 침묵》(1926년), 정지용의 《정지용 시집》(1934년), 김영랑의 《영랑 시집》(1934년), 백석의 《사슴》(1935년) 등이 대표적이다. 세트는 이들 시집과 함께 김상용, 박목월, 임화, 이용악, 오장환, 김기림 등의 시집을 담아 한국 현대시의 탄생 순간을 충실히 재현한다.

절판된 지 오래돼 시중에서 쉽게 구할 수 없는 시집도 포함했다. 김창술 등의 《카프 시인집》(1931년)과 유치환의 《청마시초》(1938년), 박남수의 《초롱불》(1939년) 등이다. 《청마시초》는 자연을 노래하면서도 인생을 탐구하는 시들을 담아 생명파 탄생에 기여한 기념비적 작품이다. ‘허황한 저녁, 통곡하고 싶은 외로운 심사엔들/우리의 주고받는 최대의 인사는/오직 우의로운 미소에 지나지 못하거니’라는 내용의 ‘이별’이란 시가 유명하다.

초간본 배열을 그대로 유지하면서도 시적 의미를 훼손하지 않는 범위에서 표기를 오늘날 한국어에 맞게 바꿨다고 출판사 측은 설명했다. 이남호 고려대 명예교수의 책임 편집을 맡았다. 각주와 해설을 달아 일반 독자도 시집을 감상할 수 있도록 했다. 열린책들 관계자는 “20세기 전반기는 시대적 고통과 개인의 천재성이 만나 탁월한 시집이 많이 나왔던 시기”라며 “오늘날 독자들이 읽어도 어렵지 않게 공감하며 읽을 수 있는 시집들”이라고 말했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