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학교 폭력이나 직장 내 괴롭힘 등으로 피해를 본 사람이 민사소송을 제기할 수 있을 전망이다. 정부가 인격권 조항을 신설한 민법 개정안 도입을 통해 이 같은 사건에 대한 정신적 손해배상 청구가 가능하도록 법적 근거 마련에 나섰기 때문이다. 법무부는 5일 인격권 및 인격권 침해 배제·예방 청구권을 일반적인 형태로 명문화한 민법 개정안을 입법 예고했다고 발표했다. 다음달 16일까지 각계각층의 의견을 참고해 최종 개정안을 확정하고 입법 절차를 밟을 예정이다.

개정안에 인격권을 ‘사람의 생명, 신체, 건강, 자유, 명예, 사생활, 성명, 초상, 개인정보, 그 밖의 인격적 이익에 대한 권리’로 규정하는 조항을 새로 넣은 것이 주요 골자다. 인격권 침해 중지나 예방을 청구할 수 있는 조항도 신설하기로 했다. 법인에도 인격권 침해 관련 조항을 적용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만들 방침이다.

법무부가 이 같은 조항을 새로 만들기로 한 것은 민법 내용만으로는 인격권 침해에 대한 권리 구제가 쉽지 않아서다. 민법에는 인격권과 관련한 조항이 따로 없는 상태로, ‘사람은 생존한 동안 권리와 의무의 주체가 된다’는 내용만 기재돼 있다. 인격권이 대법원 판례와 헌법재판소의 결정례에서만 인정되고 있다 보니 민사소송에선 적용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왔다. 국내에서 손해배상청구 소송의 대부분은 정신적 손해보다는 재산상 피해에 관한 내용으로 이뤄졌다. 정재민 법무부 법무심의관은 “민법 개정안이 시행되면 각종 갑질이나 학교 폭력, 직장 내 괴롭힘, 불법 녹음·촬영, 디지털 성범죄 등에 따른 정신적 손해를 배상하라는 소송이 가능해질 것”이라며 “이전보다 더 다양한 분야에서 인격권 침해에 대한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있게 된다”고 말했다.

법무부는 ‘미성년자가 상속받은 채무가 재산보다 많으면 성인이 된 후라도 이 사실을 알게 된 지 6개월 안에 상속받은 재산 한도 내에서만 채무를 갚는다’(한정승인)는 내용을 담은 민법 개정안도 이날 입법 예고했다. 법정대리인이 제때 조치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미성년자가 부모의 빚을 모두 떠안는 일을 막자는 취지다.

유류분 권리 대상에서 형제자매를 제외하는 민법 개정안도 이날 국무회의를 통과했다. 유류분은 상속인이 상속재산의 일정 비율에 대해 갖는 권리를 말한다.

배우자·부모·자녀가 없이 사망한 사람의 형제자매가 고인의 생전 의사와 상관없이 재산 중 일부를 상속받을 권리가 사라지는 것이다. 지금은 유산의 일정 비율을 상속받을 수 있도록 민법에 규정돼 있다.

김진성 기자 jskim1028@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