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일 밤 11시, 서울 강남역 인근 번화가. 빛을 발하는 입간판이 휑한 골목을 비추고 있었다. 길 한쪽에 늘어선 주점에선 시끄러운 음악이 흘러나왔지만 간혹 한두 명이 띄엄띄엄 지나갈 뿐 인적이 뜸했다. 근처에서 고깃집을 운영하는 김모씨(32)는 “밤 12시까지 사적 모임 제한이 완화됐지만 서둘러 집에 가는 사람이 많다”며 “오후 9시만 돼도 사람들이 눈에 띄게 줄어든다”고 말했다.

영업 시간 및 인원 제한이 ‘10인·밤 12시’로 처음 완화된 이날 상인들의 기대와 달리 거리는 한산했다. 영업 제한 시간이 방역 상황에 맞춰 순차적으로 늦춰지고 있지만 코로나19로 밤문화가 달라지면서 평일엔 회식, 모임 등이 늘고 있지 않다. 자영업자들은 “이런 상황이면 코로나19가 종식돼도 예상했던 ‘보복 소비’가 나타나지 않을 것”이라며 우려하고 있다.

이날 오후 8시만 해도 붐볐던 강남역 인근 번화가는 10시가 넘어가며 인적이 끊기기 시작했다. 밤 11시 강남역 10번 출구 뒷골목에는 100m 내 5명 안팎의 사람만 서성거렸다. 120석 규모의 한 술집은 10여 명만 자리하고 있었다. 같은 시간 술집 세 곳 건너 한 곳은 문을 닫은 상태였다. 술집을 운영하는 오모씨(43)는 “10시 제한, 11시 제한이 있을 때도 제한 시간 훨씬 이전에 사람들이 자리를 떴다”고 설명했다. 직장인 김모씨는 “어떤 모임이든 당연하게 2차 자리를 만들지 않는다”며 “코로나19 이전과 같은 시절로 돌아가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고 말했다.

서울 을지로3가역 3번 출구 옆 호프 골목. 직장인이 많이 찾는 한 술집은 영업 종료를 한 시간 앞둔 밤 11시에 이곳저곳 빈자리가 많았다. 주말엔 영업 종료 30분 전까지 대기 손님이 있을 정도로 인기 있는 술집이다. 개강을 맞은 대학가도 마찬가지였다. 오후 10시 서울 동숭동 대학로 한 호프집은 12개 테이블 중 5개만 차 있었다. 성균관대에 다니는 최모씨(22)는 “코로나19 이전이라면 개강 직후 새벽까지 골목이 가득 찼는데, 이제는 그런 풍경을 못 볼 것 같다”고 말했다.

현장의 자영업자들은 코로나19 장기화로 비롯된 모임문화·소비트렌드 변화를 걱정스러워하는 분위기다. 코로나19 확산 초창기에는 거리두기 완화에 소비 진작 효과가 뚜렷하게 나타났지만 지난해부터 거리두기 완화가 그만큼의 효과를 내지 못한다는 전언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0년 1분기 가구당 월평균 소비 지출은 287만8000원이었고, 확진자 수 감소로 사회적 거리두기가 완화된 같은 해 2분기엔 291만2000원으로 1.18% 상승했다. 반면 대폭 사회적 거리두기가 완화된 지난해 4분기 월평균 소비 지출은 254만7000원으로, 전 분기에 비해 0.1% 늘어나는 데 그쳤다.

전문가들은 ‘뉴노멀’을 준비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장덕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2년이란 시간을 폐쇄적 환경에 갇힌 사회는 당연히 변화되기 마련”이라며 “회식, 모임 등 밤문화에 대한 집단 기억이 바뀌었다”고 설명했다.

이소현/최세영/이광식 기자 y2eon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