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운 부동산시장, '저축은행 PF부실사태' 재현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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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 CFO Insight]
2011년 저축은행 사태를 기억하시나요. 국내 최대 저축은행인 부산저축은행그룹의 뱅크런(대량인출사태)을 시작으로 나머지 저축은행까지 여파가 퍼진 사건입니다. 이 기간 24곳의 저축은행이 문을 닫았고, 피해자도 10만명에 가까웠습니다. 예금보험공사는 31개 저축은행의 구조조정을 위해 27조원이 넘는 공적자금을 투입하기도 했습니다.
엄청난 파장을 일으킨 저축은행 부실화의 원인으로 꼽혔던 건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입니다. 고수익을 노린 부동산PF 대출이 부동산 경기 침체와 겹치며 수익은커녕 손실이 커지게 되면서 저축은행이 타격을 받게 된 겁니다.
그런데 최근 이 저축은행 PF부실 사태가 재현될 수 있다는 우려가 곳곳에서 번지고 있습니다. 그 원인으로 부동산PF의 전 단계인 토지계약금대출이 떠오르고 있습니다.
부동산PF는 주택이나 오피스빌딩 등 건물을 지을 때 공사비를 조달하는 금융 기법입니다. 보통 시행사는 건물을 지을 땅을 살 때 필요한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공사의 단계별로 대출을 받습니다. 토지를 사기 위해서는 토지계약금대출(PI/Principal investment)을 받고, 토지 계약을 맺고 공사 허가가 나면, 부동산PF나 브릿지론(BL)으로 대출을 전환합니다. 땅을 담보로 기존 토지비 대출을 상환하고, 공사비를 조달하게 되는거죠. 그 후 완공된 건물을 분양이나 통 매각을 해 자금이 확보되면 대출을 상환하고 남은 수익을 가져가는 구조입니다.
토지계약금대출은 최근 2~3년 사이 투자은행(IB)업계에서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부동산 경기 호황과 높은 수익성에 대부분의 증권사가 참여했는데요, 지난해 IB업계가 높은 이익을 올리는데 큰 기여를 했습니다. 토지계약금대출은 부동산PF보다 전 단계이자 땅도 아직 확보되지 않은 상태에 들어가는 대출입니다. 시행사를 보고 대출을 해주는 만큼 리스크가 큽니다.
대신 수익도 그만큼 많습니다. 증권사에서 한 사업장에 20억원의 토지계약금대출을 하면 토지 계약 후 부동산PF로 전환할 때 받게 되는 대출 이자가 최소 40억원에서 200억원까지 가기도 한다고 합니다. 원금의 2~10배인 셈인데요. 기존 PF대출 수수료가 많아봤자 원금의 20% 내외인 것을 감안하면 어마어마한 금액입니다. 이자율이 낮은 대신 시행 지분을 받게 되는 경우도 있고, 부동산PF로 전환될 때 PF주간권도 확보할 수 있다고 합니다. 증권사간 PF사업장 확보 경쟁이 치열한 가운데 토지계약금 대출을 해주면 상대적으로 손쉽게 주간권을 따낼 수 있다보니 부동산PF 전 단계부터 사업장을 확보하겠다는 의도입니다.
PF대출 수수료에 시행 이익까지 받게 되다 보니 증권사들이 너도나도 뛰어들었습니다. 증권사들은 한 사업장당 10억원 또는 30억원 이하에서 본부장 전결로 대출을 실행합니다. 가장 적극적으로 뛰어든 A증권사는 지난해 토지계약금대출 규모만 5000억원에 이른다고 합니다. B증권사는 10억원 이하 사업장 대출은 리스크 심의를 없애 사업장 숫자를 늘렸다고 합니다. C증권사는 반대로 리스크 심의 통과 조건에서 아예 금액 제한을 없앴습니다.
다만 지난해 하반기부터 부동산 경기가 냉각되면서 증권사들이 토지계약금대출에 신중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리스크 관리 차원에서 심사를 엄격하게 보거나, 부동산PF로 전환될 때 대출이자만 받고 빠져나오는 경우도 많습니다.
증권사들이 빠지는 그 자리에 들어가고 있는 게 단위농협, 수협, 새마을금고 등 지역 금융협동조합입니다. 이들은 개별 협동조합별로 대출을 실행하기 때문에 중앙 금융회사에 비해 사업 심사나 리스크 관리가 약한 편입니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이들은 각 지점마다 5억, 10억원씩 모아 하루만에 100억원을 만들어 대출을 쏠 정도로 대출에 적극적"이라며 "증권사들이 꺼리는 사업장도 대출해주고 있어 이러다 저축은행 PF사태가 또 나타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여기에 국내 주요 캐피탈사들도 부동산PF 규모가 커지고 있어 IB업계가 주목하고 있습니다. 국내 주요 캐피탈사 5곳(현대, KB, 신한, IBK, BNK)의 지난해 3분기말 기업금융 자산 합계액은 19조3000억원으로 집계되고 있습니다. 2020년 말(15조4000억원) 대비 25.3%나 커졌습니다. 이 중 대부분이 부동산 PF대출입니다.
물론 부동산PF나 토지계약금대출 규모가 커진다고 무조건 부실이 생기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10년 전 시작된 저축은행 사태 때와 비슷한 경기 환경이 이어지고 있어 IB업계의 우려가 커지고 있는 것입니다. 우선 부동산 경기가 상승세를 보이고 있지 않습니다. 2011년 주택경기 침체가 장기화되면서 수많은 건설사들이 사업장 이자비용 내는 것도 어려워졌습니다. 결국 중소 건설사 여러 곳이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와 워크아웃을 신청했습니다. 지금은 오랜 기간 이어져온 주택경기 상승세가 주춤하며 일부 지방부터 주택 미분양이 커지고 있습니다. 여기에 철근, 구리, 시멘트 등 공사 원자재 값이 급등하고, 인건비도 대폭 오르면서 공사비 부담이 커졌습니다. 한 건설사 관계자는 "공사 원가가 2~3년 전보다 2배 가까이 올라 시행사로부터 추가 공사비를 받지 않으면 공사할수록 적자가 커지는 상황"이라며 "공사비를 못 올려준다면 차라리 계약해지를 하겠다고 하는 시공사도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여기에 리스크 관리 부실도 문제로 지적되고 있습니다. 당시 저축은행들은 적은 자기자본으로 부동산PF 대출을 무리하게 진행하며 리스크 관리나 사업장 분석은 하지 않았습니다. 일부 사업장은 심사조차 하지 않고 허가가 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최근 지역 금융협동조합의 부동산 대출도 비슷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습니다. 한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눈먼 돈'이란 별명이 붙을 정도로 대출이 쉽게 이뤄지고 있다"면서 "아직까지는 사업장 부도 사태가 없지만 부동산 경기나 미분양 상승세 등을 면밀히 살펴봐야한다"고 조언했습니다.
현재 금융회사들의 부동산 관련 대출은 아직까지 리스크가 높은 편은 아닙니다. 한 차례 부동산PF 부실사태를 겪은만큼 과거와 달리 다양한 금융기법으로 리스크를 관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상치 못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사태처럼 외부 변수에 타격을 받을 경우는 장담할 수 없습니다. 아직은 괜찮다고 생각하는 지금이 리스크를 다시 한번 철저히 관리해야하는 시점이 아닌가 싶습니다.
윤아영 기자 youngmoney@hankyung.com
엄청난 파장을 일으킨 저축은행 부실화의 원인으로 꼽혔던 건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입니다. 고수익을 노린 부동산PF 대출이 부동산 경기 침체와 겹치며 수익은커녕 손실이 커지게 되면서 저축은행이 타격을 받게 된 겁니다.
그런데 최근 이 저축은행 PF부실 사태가 재현될 수 있다는 우려가 곳곳에서 번지고 있습니다. 그 원인으로 부동산PF의 전 단계인 토지계약금대출이 떠오르고 있습니다.
부동산PF는 주택이나 오피스빌딩 등 건물을 지을 때 공사비를 조달하는 금융 기법입니다. 보통 시행사는 건물을 지을 땅을 살 때 필요한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공사의 단계별로 대출을 받습니다. 토지를 사기 위해서는 토지계약금대출(PI/Principal investment)을 받고, 토지 계약을 맺고 공사 허가가 나면, 부동산PF나 브릿지론(BL)으로 대출을 전환합니다. 땅을 담보로 기존 토지비 대출을 상환하고, 공사비를 조달하게 되는거죠. 그 후 완공된 건물을 분양이나 통 매각을 해 자금이 확보되면 대출을 상환하고 남은 수익을 가져가는 구조입니다.
토지계약금대출은 최근 2~3년 사이 투자은행(IB)업계에서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부동산 경기 호황과 높은 수익성에 대부분의 증권사가 참여했는데요, 지난해 IB업계가 높은 이익을 올리는데 큰 기여를 했습니다. 토지계약금대출은 부동산PF보다 전 단계이자 땅도 아직 확보되지 않은 상태에 들어가는 대출입니다. 시행사를 보고 대출을 해주는 만큼 리스크가 큽니다.
대신 수익도 그만큼 많습니다. 증권사에서 한 사업장에 20억원의 토지계약금대출을 하면 토지 계약 후 부동산PF로 전환할 때 받게 되는 대출 이자가 최소 40억원에서 200억원까지 가기도 한다고 합니다. 원금의 2~10배인 셈인데요. 기존 PF대출 수수료가 많아봤자 원금의 20% 내외인 것을 감안하면 어마어마한 금액입니다. 이자율이 낮은 대신 시행 지분을 받게 되는 경우도 있고, 부동산PF로 전환될 때 PF주간권도 확보할 수 있다고 합니다. 증권사간 PF사업장 확보 경쟁이 치열한 가운데 토지계약금 대출을 해주면 상대적으로 손쉽게 주간권을 따낼 수 있다보니 부동산PF 전 단계부터 사업장을 확보하겠다는 의도입니다.
PF대출 수수료에 시행 이익까지 받게 되다 보니 증권사들이 너도나도 뛰어들었습니다. 증권사들은 한 사업장당 10억원 또는 30억원 이하에서 본부장 전결로 대출을 실행합니다. 가장 적극적으로 뛰어든 A증권사는 지난해 토지계약금대출 규모만 5000억원에 이른다고 합니다. B증권사는 10억원 이하 사업장 대출은 리스크 심의를 없애 사업장 숫자를 늘렸다고 합니다. C증권사는 반대로 리스크 심의 통과 조건에서 아예 금액 제한을 없앴습니다.
다만 지난해 하반기부터 부동산 경기가 냉각되면서 증권사들이 토지계약금대출에 신중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리스크 관리 차원에서 심사를 엄격하게 보거나, 부동산PF로 전환될 때 대출이자만 받고 빠져나오는 경우도 많습니다.
증권사들이 빠지는 그 자리에 들어가고 있는 게 단위농협, 수협, 새마을금고 등 지역 금융협동조합입니다. 이들은 개별 협동조합별로 대출을 실행하기 때문에 중앙 금융회사에 비해 사업 심사나 리스크 관리가 약한 편입니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이들은 각 지점마다 5억, 10억원씩 모아 하루만에 100억원을 만들어 대출을 쏠 정도로 대출에 적극적"이라며 "증권사들이 꺼리는 사업장도 대출해주고 있어 이러다 저축은행 PF사태가 또 나타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여기에 국내 주요 캐피탈사들도 부동산PF 규모가 커지고 있어 IB업계가 주목하고 있습니다. 국내 주요 캐피탈사 5곳(현대, KB, 신한, IBK, BNK)의 지난해 3분기말 기업금융 자산 합계액은 19조3000억원으로 집계되고 있습니다. 2020년 말(15조4000억원) 대비 25.3%나 커졌습니다. 이 중 대부분이 부동산 PF대출입니다.
물론 부동산PF나 토지계약금대출 규모가 커진다고 무조건 부실이 생기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10년 전 시작된 저축은행 사태 때와 비슷한 경기 환경이 이어지고 있어 IB업계의 우려가 커지고 있는 것입니다. 우선 부동산 경기가 상승세를 보이고 있지 않습니다. 2011년 주택경기 침체가 장기화되면서 수많은 건설사들이 사업장 이자비용 내는 것도 어려워졌습니다. 결국 중소 건설사 여러 곳이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와 워크아웃을 신청했습니다. 지금은 오랜 기간 이어져온 주택경기 상승세가 주춤하며 일부 지방부터 주택 미분양이 커지고 있습니다. 여기에 철근, 구리, 시멘트 등 공사 원자재 값이 급등하고, 인건비도 대폭 오르면서 공사비 부담이 커졌습니다. 한 건설사 관계자는 "공사 원가가 2~3년 전보다 2배 가까이 올라 시행사로부터 추가 공사비를 받지 않으면 공사할수록 적자가 커지는 상황"이라며 "공사비를 못 올려준다면 차라리 계약해지를 하겠다고 하는 시공사도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여기에 리스크 관리 부실도 문제로 지적되고 있습니다. 당시 저축은행들은 적은 자기자본으로 부동산PF 대출을 무리하게 진행하며 리스크 관리나 사업장 분석은 하지 않았습니다. 일부 사업장은 심사조차 하지 않고 허가가 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최근 지역 금융협동조합의 부동산 대출도 비슷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습니다. 한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눈먼 돈'이란 별명이 붙을 정도로 대출이 쉽게 이뤄지고 있다"면서 "아직까지는 사업장 부도 사태가 없지만 부동산 경기나 미분양 상승세 등을 면밀히 살펴봐야한다"고 조언했습니다.
현재 금융회사들의 부동산 관련 대출은 아직까지 리스크가 높은 편은 아닙니다. 한 차례 부동산PF 부실사태를 겪은만큼 과거와 달리 다양한 금융기법으로 리스크를 관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상치 못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사태처럼 외부 변수에 타격을 받을 경우는 장담할 수 없습니다. 아직은 괜찮다고 생각하는 지금이 리스크를 다시 한번 철저히 관리해야하는 시점이 아닌가 싶습니다.
윤아영 기자 youngmone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