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중공업그룹은 작년 말 서울아산병원 영문 이름(AMC)을 딴 암크바이오를 설립했다. 바이오신약 개발이 사업 목적이다. 현대가(家) 3세인 정기선 HD현대(현대중공업지주) 사장은 동생 정남이 아산나눔재단 상임이사와 함께 바이오벤처 최고경영자(CEO)들과 잇달아 접촉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제약·바이오 사업에 뛰어들기 위해 오너가 직접 나섰다는 해석이 나온다.

국내 대기업이 바이오·헬스케어 사업에 속속 뛰어들고 있다. 10대 그룹 가운데 현대자동차그룹과 포스코를 제외한 여덟 곳이 인수합병(M&A) 등으로 바이오 사업에 진출했거나 지분 투자로 사업 기회를 찾고 있다. 삼성이 바이오의약품 위탁생산(CMO)과 바이오시밀러(바이오의약품 복제약) 사업으로 물꼬를 튼 지 10여년 만에 국내 대기업의 ‘바이오 진출 러시’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는 분석이다.

바이오 사업 진출에 가장 적극적인 업종은 정유·석유화학이다. 친환경 규제 강화 등으로 본업의 미래가 밝지 않아서다. GS그룹은 국내 1위 보툴리눔톡신 업체 휴젤을 인수한 데 이어 알츠하이머 신약을 개발 중인 바이오벤처 바이오오케스트라에 투자했다. CJ그룹과 신세계그룹(이마트)은 장내 미생물인 마이크로바이옴 업체들과 잇달아 손을 잡았다.

롯데그룹은 지난해 삼성 출신 헬스케어·바이오의약품 생산공정 전문가를 영입하는 등 바이오 사업 진출을 준비하고 있다. 최근에는 그룹 컨트롤타워인 롯데지주 산하에 롯데헬스케어를 설립했다. 한 벤처캐피털(VC) 관계자는 “기존 주력 사업의 성장성에 한계를 절감한 대기업들이 미래 성장 산업으로 꼽히는 바이오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했다.

국내 바이오산업이 해외에서 주목할 만큼 경쟁력이 높아진 것도 대기업이 뛰어드는 배경으로 꼽힌다. 글로벌 제약사 중 시가총액 1위인 존슨앤드존슨의 호아킨 두아토 최고경영자(CEO·회장)가 취임 3개월 만에 한국을 찾은 게 대표적이다. 두아토 회장은 삼성바이오로직스 경영진을 만나고 삼성서울병원 등 대형 병원을 찾은 것으로 알려졌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과도 면담했다.

업계 관계자는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태평양 지역 제약·바이오 시장의 성장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다는 의미”라고 했다.

한재영/이지현 기자 jy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