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기기 1호 명장'의 끝없는 도전…자율주행 카메라로 美 특허
“컨베이어 벨트에 앉아 30초에 한 대씩 TV를 조립하던 경험이 큰 힘이 됐습니다. 그런 (축적의)시간이 없었다면 67세 나이에 발명을 계속하고 잇따라 특허를 취득하는게 과연 가능했을까요.”

우직한 힘이 느껴졌다. 대한민국 전자기기 명장 1호 박찬덕 텔미전자 대표(사진)가 선택한 것은 끝이 보이지 않는 도전이었다. 지난 6일 경기 군포 사무실에서 만난 박 대표는 “최근 적외선 열화상카메라(TOD)를 이용한 자율주행 자동차 운행방법을 개발해 국내뿐 아니라 미국 특허도 받았다”며 “앞으로 기술을 더욱 발전시켜 자율주행차 시대를 여는 데 힘을 보탤 것”라고 힘줘 말했다. TOD는 적외선을 이용해 물체의 열을 측정한 뒤 영상 정보로 변환하는 장치다.

1987년 대한민국 전자기기 명장에 선정된 그는 세간의 예상과 달리 줄곧 험한 비포장도로만 걸었다. 험로만 걸어온 그의 이력을 알게되자, ‘아날로그 명장’이 첨단 자율주행 사업에 도전하는 것도 쉽게 이해가 됐다.

박 대표에겐 ‘대한민국 전자기기 명장 1호’라는 타이틀이 언제나 따라붙는다. 명장 제도는 숙련기술장려법에 따라 1986년 도입됐다. 한 분야에서 15년 이상 근무한 기술자를 대상으로 서류 심사 및 현장 실사, 면접 등을 거쳐 선발한다. 선발된 명장에게는 2000만원의 장려금과 명장증서 및 휘장, 대통령명의 명장패가 수여된다. 많은 기술자들이 명장이 되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하지만 선발 절차와 심사가 까다로워 박 대표 이후 현재까지 국내 전자기기 명장은 4명 뿐이다.

1955년생인 박 대표는 전주공고 전기과를 졸업한 뒤 금성사(현 LG전자) 구미공장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1200여명의 직원 중 한 명으로 14인치 흑백TV를 조립했다. 부품을 쉴 새 없이 조립하면서도 수첩과 펜을 항상 가까이 뒀다. 그는 “불량 제품의 증상과 대처법, 부품 특성이 궁금해서 참지를 못했다”고 말했다. 작은 부품 하나까지 꼼꼼하게 정리하며 박 대표는 학업을 이어갔다. 금오공대 전자공학과 야간과정에 등록해 석사까지 마쳤다.

회사 내·외부에서 인정을 받던 1990년 5월. 박 대표는 갑작스레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당시 급속도로 커가던 카메라와 모니터 시장을 눈여겨 보고 관련 기술 자문 용역을 하는 회사를 창업했다. 해외 진출을 앞둔 한국 대기업으로부터 경쟁사 기술 분석 및 시장 조사를 하는 업무 등을 위탁 받았다. 박 대표는 “해외 여행도 쉽지 않던 시절 전세계 47개국, 89개 도시를 최소 3번 이상씩 방문했다”고 돌아봤다.

곧이어 제조업으로 발을 넓혔다. 카메라와 모니터를 주문자상표부착(OEM) 방식으로 제조했다. 미국 1위 유통기업 월마트와 연간 80억원의 납품 계약을 체결하는 등 승승장구했다. 하지만 얼마안가 시련이 찾아왔다. 해외 바이어 결제 대금 20억원의 지급이 지연되면서 하루 아침에 회사가 부도났다. 2005년 10월 법원에 파산을 신청했다. 50세 때였다. 박 대표는 “정말 눈앞이 캄캄했다”며 “나이 쉰 살에 다시 무슨 일을 할 수 있겠나 싶었다”고 말했다.

그를 다시 일으켜 세운 것은 평생 갈고닦은 기술이었다. 지인들은 앞다퉈 그에게 각종 전자기기 관련 기술 용역을 맡겼다. 1년 동안 그가 자문해 따낸 국책 과제가 연달아 5개가 넘었다. 박 대표는 “하나도 따기 힘들다는 국책 과제를 잇따라 발굴해 내면서 다시 자신감을 갖게 됐다”고 되돌아봤다.
'전자기기 1호 명장'의 끝없는 도전…자율주행 카메라로 美 특허
그는 2007년 5월 텔미전자를 세우며 또다시 창업이라는 도전을 이어갔다. 2012년 1월 영상감시장치를 개발해 제주 해안 경비부대에 제품을 납품했다. 지형지물이 없는 바다 위에서도 위도와 경도를 정밀하게 나눠 카메라로 포착한 영상 속 물체의 위치를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했다.

수입제품에 의존하던 TOD도 2016년 국산화에 성공했다. 텔미전자의 TOD는 현재 K6 기관총의 사격통제장치 등에 들어간다. 1.8㎞의 사거리에서 직경 1m의 탄착군을 형성할 정도로 정밀도가 뛰어나다는 평가다.

박 대표는 카메라, 모니터, 센서 등에서 축적한 기술을 조합해 2020년 자율주행차량 시장에 도전했다. 전후좌우 총 7개의 카메라와 1개의 TOD를 결합한 자율주행 자동차 운행방법을 개발했다. 박 대표는 “도로 위 차의 위치를 1㎝ 단위까지 정밀하게 측정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강조했다. 고가의 라이다(LiDAR·빛을 이용한 거리 측정기) 센서를 대체할 수 있고 비와 눈, 안개 등의 기상 상황에서도 자율주행 기능을 사용할 수 있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올해 텔미전자는 매출 30억원에 영업이익 6억원을 낼 전망이다. ‘명장’이라는 후광에 비하면 크지 않아 보이지지만, 험난했던 그의 이력을 고려하면 결코 작지 않은 성과다. 지난해에 비해서도 3배 이상 회사 규모가 커졌다. “기술력만 있으면 실패하더라도 다시 일어나 도전할 수 있다”는 박 대표의 말이 전하는 여운이 작지 않다.

군포=김진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