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일전자, 중국산 저가 선풍기 위협에
‘에어서큘레이터’를 주력 대체사업으로 키워
고착화된 계절가전 기업 이미지 극복 노력
국내 선풍기 시장에서 점유율 40%가량으로 압도적인 1위를 수성하고 있고 지난해에만 173만 대를 판매했다. 전년 동기대비 11% 가량 늘어났다.
역대 최대 실적도 경신 중이다. 지난해 신일전자의 매출은 1935억원으로 전년보다 12.2% 증가했다. 영업이익 역시 54.1% 늘어난 96억원을 기록했다.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사회적 거리두기 강화로 계절가전과 주방가전 수요가 늘어나면서 매출이 증가했다는 게 자체 분석이다.
최근 들어 소비자의 편의성과 라이프 스타일을 고려한 다양한 카테고리의 제품을 선보이며 종합가전 기업으로 성장을 도전하고 있다. 신일전자 관계자는 “단순히 품목을 늘리는 보여주기식의 성장보다 매출이나 영업이익 등 실적이 뒷받침된 질적성장을 이뤄가려 하고 있다”고 밝혔다.
상황 1 “선풍기 뛰어넘어라”
도전 1 주력 대체사업 ‘에어서큘레이터’
2000년대 초 중국 시장이 개방되면서 중국산 저가 선풍기가 대거 국내에 유입됐다. 신일도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상황 속에서 경영에 큰 어려움을 겪었고 선풍기를 대체할 만한 성장동력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위기 속에서 기회를 찾자’라는 마인드로 신제품 개발에 박차를 가한 게 재기의 기폭제가 됐다. 수 십년 간 갈고닦은 모터와 날개 기술을 적용해 2015년 출시한 제품이 에어서큘레이터다.
에어서큘레이터는 원래 유럽 등에서 30만~40만원 정도에 판매되던 업소용 제품이었다. 국내 소비자들에게는 생소한 제품이었다. 몇몇 외산 브랜드에서 가정용 제품을 선보여 왔지만 가격대가 높아 일반 소비자들이 쉽게 구매하긴 어려웠다. 신일은 이같은 틈새 시장을 눈여겨봤고, 제품을 출시해 에어서큘레이터의 대중화를 이끌어 냈다.
에어서큘레이터는 고속 직진성 바람이 실내 공기를 순환시켜 에어컨과 함께 사용하면 시원한 바람을 넓게 퍼뜨려 주고 냉방 효과를 극대화하는 게 특징이다. 선풍기는 공간 침투능력이 없는 3~4m의 짧고 넓은 패턴의 바람을 내보내기 때문에 가까운 거리에서만 시원한 바람을 느낄 수 있다.
반면 에어서큘레이터는 15m 이상의 고속 직진성 바람을 내보내 에어컨과 함께 사용하면 실내 온도를 균일하게 조절해 줄 수 있고, 내부 사람이 쾌적한 느낌을 받는다. 또 바람의 세기와 제품의 높이 및 회전 각도 등을 세분화해 선풍기처럼 사용할 수도 있다.
이런 장점으로 선풍기 대신 에어서큘레이터를 구매하는 소비자들도 늘어나고 있다. 신일의 에어서큘레이터 누적 출고량은(2015년~2021년) 260만 대다. 본체 지름이 평균 약 32cm인 스탠드형 에어서큘레이터를 일렬로 늘어놓으면 832㎞에 달한다.
2016년부터 에어써큘레이터를 홈쇼핑 시장에 내놨고, 매년 업그레이드된 신제품을 선보였다. 그 결과 ‘에어서큘레이터 = 신일’이라는 인식이 소비자들 사이에 생기는 등 성과를 내고 있다. 현재도 신일의 에어서큘레이터는 국내 홈쇼핑 내 판매 점유율 1위를 기록하고 있다.
상황 2 계절 변동성에 따른 재고 문제
도전 2 기상 정보 활용 생산·판매 계획
계절가전 제품은 더위나 추위 등 기후의 영향을 많이 받는 계절적 특수성 때문에 수요를 예측하기 어렵다. 중국산 저가 선풍기 공세로 매출이 1000억원 아래로 급락한 2003년께부터 회사의 재무적 사정도 크게 악화됐다. 이에 신일은 2009년부터 기상정보를 활용해 수요를 예측하고 주간단위 생산판매재고 시스템을 개발하기로 결정, 수익성을 극대화하는 전략을 쓰고 있다.
신일은 기상청에서 제공하는 정보를 바탕으로 평균기온, 일별 최고·최저 기온, 상대습도, 일별 평균기온 및 습도 등을 분석한 데이터를 구축했다. 이를 주간 제품 판매량과 함께 분석해 전사적으로 공유한다. 그뒤 상품기획팀은 제품 수량, 단가, 물량 등을 전략적으로 분석한 생산계획을 만들고 구매팀은 원·부자재를 구매한다.
이를 통해 생산팀은 유동적으로 제품 물량을 생산할 수 있고 영업팀은 홈쇼핑을 비롯 온·오프라인 등 다양한 유통채널의 판매전략을 수립하고 있다. 그 결과 신일은 임대료, 인건비, 작업비, 관리비 등 가운데 불필요한 손실을 줄이고 원가를 절감할 수 있었다.
주간 단위 PSI(생산, 판매, 재고) 시스템을 통해 철저한 재고 관리와 수익성 중심으로 수주관리를 강화하고 있다. 원가구조를 개선하고 판매관리비를 감축하는 등의 노력을 통해 실적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2018년께 이같은 시스템이 빛을 발했다는 게 자체 평가다. 당시 근래 10년 중 폭염과 한파일이 최다 수를 기록했던 해였다. 신일은 미리 수요를 예측해 물량을 충분하게 준비했고 밀려드는 주문에도 제품을 차질없이 공급했다. 그 해 신일의 영업이익은 147억원으로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상황 3 고착화된 계절가전 기업 이미지
도전 3 프리미엄 제품 브랜드 가치 극대화
신일은 선풍기 제조업체로 성공했지만, 고착화된 이미지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 창립 60주년을 맞이한 2019년부터 신일은 선풍기 제조업체의 이미지를 벗고 종합 가전기업으로의 도약을 선포했다. 이같은 목표에 따라 신일은 펫(애완동물) 가전 시장에 진출했다. 펫 가전 브랜드 ‘퍼비(Furby)를 내놨다. 국내 반려동물을 기르는 인구가 1400만 명에 달하면서 관련 시장도 함께 성장하고 있지만 그들의 라이프스타일을 고려한 제품의 출시가 미비하다고 본 것이다.
코로나19 확산 이후 집콕 생활이 늘어나면서 가전 시장 규모가 성장하는 것을 주목하고, 새로운 성장동력을 발견하는데도 힘을 쏟았다. 시장 분석을 통해 주방·위생가전의 성장세가 두드러지는 점을 살펴보고 ‘에코 음식물 처리기’를 출시했다.
이 제품은 음식물 쓰레기 부피를 대폭 감소시켜 주고 악취와 세균 증식을 막는 데 도움을 주는 게 특징이다. 음식물 쓰레기로 인해 발생하는 악취 등 비위생적 문제로 고민인 이들을 위해 여름을 앞두고 제품을 출시해 더 큰 호응을 얻었다.
음식물 처리기 마케팅을 위해 홈쇼핑 론칭일에 맞춰 TV광고를 진행했고, 온라인 광고와 체험단을 통해 긍정적인 제품 사용후기도 받았다. 그 결과 홈쇼핑 방송 1시간 만에 6억 원의 매출을 올리기도 했다.
프리미엄 제품으로 브랜드 가치를 올리는 노력도 하고 있다. 올해 프리미엄 브랜드 ‘더톤’을 내놓고, ‘더톤 스마트 TV’를 선보였다.
■ 마케터를 위한 포인트
소형가전은 대형가전에 비해 기술적으로 진입장벽이 상대적으로 낮다. 이로 인해 경쟁이 치열하고 소비자가 선택할 수 있는 대체 상품이 많은 편이다. 다른 업종에서도 소형가전 시장에 진입하는 일이 많은 만큼 더욱 날카로운 마케팅 활동이 필요하다.이에 신일은 ‘STP 전략’을 바탕으로 마케팅 계획을 세우고 실행하고 있다. STP 전략이란 시장을 세분화(Segmentation)하고 세분화된 시장 중 표적 시장(Targeting)을 선정해 표적 시장에서 어떤 위상을 확보(Positioning)할 것인지에 대한 방안을 수립하는 것이다.
신일은 STP의 근본이 되는 시장 세분화를 통해 소비자 수요 기반의 시장을 분류한다. 단순히 인구통계학적인 접근보다 소비자가 가진 특정한 니즈(필요)를 판별해 내는 것에 중점을 두고 있다.
또 소비자 접점을 통해 실효성 있는 타깃 시장을 선정하고 있다. 예를 들어 팬히터의 경우 “20~40대 소비자 중 아웃도어 활동을 즐기며 적어도 한 달에 한 번은 캠핑을 떠나는 사람”과 같이 최대한 명확하고 접근 가능한 타깃을 정의하는 것이다.
포지셔닝 전략의 일환으로 소비자의 마음속에 무엇을 인식시킬 것인지 솔루션을 도출해 신제품을 출시하고 있다. ‘소비자(당신)의 일상을 새롭게’란 슬로건 아래 ‘일상 혁신’이라는 아이덴티티를 중심에 잡고 신제품을 선보인다.
김동현 기자
■ 전문가 코멘트
□ 천성용 단국대 교수
성공적인 마케팅을 위해 마케터는 STP 전략을 설정해야 한다. 이 중 첫번째 단계인 시장세분화(Segmentation)에는 보통 (1)지리적 세분화, (2)인구통계 세분화, (3)심리적 변수 세분화, (4)행동변수 세분화 기준 등이 활용된다.
신일전자의 경우 위의 기준을 복합적으로 활용하여 새로운 방식으로 시장을 분류하였다. 예를 들어, 팬히터 마케팅을 위해 “20~40대 소비자 중 아웃도어 활동을 즐기며 적어도 한 달에 한 번은 캠핑을 떠나는 사람”과 같은 방식으로 특정 Segment를 정의했다.
이 Segment에는 인구통계 세분화(ex. 20~40대), 심리적 세분화(ex. 아웃도어 활동을 즐기는 라이프스타일), 행동변수 세분화(ex. 한 달에 한번은 캠핑을 떠나는) 기준이 복합적으로 적용된 것이다. 이처럼 시장세분화는 다양한 방식, 때로는 창의적인 방식으로 접근될 수 있다.
그런데 기본적으로 “좋은 Segmentation의 전제 조건”은 무엇일까? 첫째, 측정가능해야 한다(measurable). 즉, 아무리 좋은 세분 시장이라도 그 규모를 추정할 수 없다면 의미가 없다. 둘째, 접근가능해야 한다(accessible). 즉, 우리가 정의한 세분 시장 고객들이 자주 가는 장소, 자주 보는 미디어를 알아야 그들에게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다.
셋째, 일정 규모 이상이어야 한다(substantial). 다시 말해, 너무 작은 규모의 세분 시장은 의미가 없다. 넷째, 실행가능해야 한다(actionable). 즉, 기업의 인력, 자산을 활용해 실질적으로 관리 가능한 수준의 Segmentation을 설정해야 한다.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조건은 “세분 시장별 반응이 달라야 한다(differentiable)”는 것이다. 이는 가장 중요한 조건이면서 현업에서 의외로 자주 간과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기업이 어떤 광고 메시지를 내보냈을 때 남성 고객과 여성 고객의 반응이 특별히 다르지 않다면, 굳이 성별을 기준으로 시장을 세분화할 이유가 없다.
시장을 ‘세분화’한다는 것은 ‘반응이 다름’을 전제로 하는 것인데, 가끔 특별한 고민없이 기존에 사용하던 방식을 관성적으로 사용하는 경우가 있다. 혹은 다른 산업의 좋은 세분화 방식을 무작정 도입하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방식의 Segmentation은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좋은 마케터라면 우리 회사의 시장 세분화 방식을 다시 한번 점검하고, 그것이 좋은 Segmentation의 전제 조건을 잘 만족하고 있는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 Segmentation이야말로 우리가 시장과 고객을 “어떻게 차별적으로 바라볼 것인가”를 결정하는 STP 전략의 첫번째 단추이기 때문이다.□ 최현자 서울대 교수
기업들은 취급하는 상품 종류가 늘어남에 따라 여러 브랜드를 갖게 된다. 그리고 브랜드 숫자가 늘어날수록 전체 브랜드 포트폴리오의 관리가 중요해진다.
브랜드 포트폴리오를 관리하는 전략은 두 가지가 대표적이다. 브랜드화된 집(branded house) 전략과 브랜드들의 집(house of brands) 전략이 그것이다.
전자는 하나의 브랜드가 다양한 형태로 확장된 것을 의미하며, 후자는 각각의 브랜드가 독립적으로 확장된 것이다.
맥주 브랜드를 예로 들면, ‘카스 후레쉬’라는 대표 브랜드가 ‘카스 아이스’, ‘카스 레드’, ‘카스 레몬’ 등으로 확장된 것이 전자, 즉 브랜드화된 집 전략에 해당한다. 다른 말로는 하위 브랜드 적용 전략이다.
이와 달리 ‘하이트’가 ‘맥스’, ‘스타우트’, ‘테라’ 등의 개별 브랜드를 운용하는 경우가 후자, 즉 브랜드들의 집 전략이다. 여기서 만약 소비자들이 이 브랜드들이 동일한 회사(하이트)에서 나온 상품임을 인지한다면 모 브랜드(하이트)에 의해 ‘보증된 브랜드 적용 전략’이 된다.
신일전자는 선풍기 제조업체에서 ‘에어서큘레이터 = 신일’이라는 인식을 만드는데 성공했다. 에어서큘레이터가 선풍기와 관련성이 높은 상품이라서 상대적으로 수월했을 것이다.
하지만 펫 가전 시장, 음식물 처리기, 더톤 스마트 TV 등은 선풍기와 관련성이 낮기 때문에 더 어려운 도전이 될 수 있다. 신일전자는 보증된 브랜드인 ‘신일’을 내세우는 ‘보증된 브랜드 적용 전략’을 구사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이러한 도전이 성공적인 결과를 만들어 내기 위해서는 선풍기=신일, 에어서큘레이터=신일이라는 인식을 만들어 내는데 들였던 노력이 또 추가되어야 할 것이다. 이미 경험해본 노력들이기에 조금은 더 쉽게 적용할 수 있지 않을까 조심스레 짐작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