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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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두관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4일 한국은행의 본점을 서울에 두도록 한 조항을 삭제하는 내용의 한국은행법 개정안을 제출했습니다.

한은법 제7조에 따르면 '한국은행은 주된 사무소를 서울특별시에 두며, 업무수행상 필요하다고 인정할 때에는 정관(定款)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지사무소(支事務所) 및 대리점을 둘 수 있다'고 돼 있는데요. 이 조항에서 '서울특별시'를 '대한민국'으로 바꾸는 것이 개정안의 핵심입니다. 이렇게 되면 한은의 지방 이전이 가능하다는 겁니다.

김 의원은 제안이유에서 "지난해 한국고용정보원이 발표한 소멸위험지수에 따르면 전국 228개 시·군·구 중 '소멸 고위험' 지역이 36곳에 달했고, 이는 전년 대비 50%가량 늘어난 결과"라며 "이처럼 지역 소멸이 가시화된 상황에서 국책은행 주 사무소를 서울특별시에 한정해 위치하도록 하는 구도는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양극체제를 더욱 공고히 하고 있다"며 주장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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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공약인 '산업은행 부산 이전'에 발맞춰 한은까지 유탄을 맞은 모습입니다.

하지만 중앙은행의 본점 소재지를 구체적으로 법에 명시하고 있는 국가는 한국뿐만이 아닙니다. 미국 중앙은행(Fed)은 미 연준법 제10조 제4항에 따라 워싱턴DC(the District of Columbia)에 주 사무소를 둬야 합니다.

일본은 일본은행법 제7조 1항에 의해 본점을 도쿄에 두게 돼 있습니다. 유럽 중앙은행은 유럽연합기능조약 부속의정서 제1조 i항에 따라 독일 프랑크푸르트에 있어야 합니다.

이처럼 주요국이 중앙은행의 본점 소재지를 법률이나 조약에 명시하는 이유는 중앙은행의 본점 소재지는 국가의 중요 거시경제 정책인 통화신용정책을 수행하는 중심지라는 상징적인 의미가 있기 때문입니다. 김 의원의 개정안은 주요 선진국의 상황과는 거리가 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김 의원이 내세운 지역 균형 발전이 한은의 지방 이전으로 가능할지도 의문입니다. 오히려 지방 이전에 따라 전문 인력이 필요한 한은의 인력난이 심해질지도 모릅니다. 현재도 한 해 30명이 넘는 직원들이 정년 이전에 한은을 떠나고 있습니다.

김수흥 민주당 의원이 한은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2년부터 지난해까지 10년간 한은을 중도 퇴직한 직원 수는 모두 311명으로 집계됐습니다. 민간 금융사와의 적잖은 연봉 차이 등이 원인으로 꼽힙니다. 상황이 이런데 지방 이전까지 이뤄지면, 인력 이탈은 더 심해질 것으로 예상됩니다.

실제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가 2017년 전북 전주로 이전한 이후 인력난에 허덕였습니다. 수장인 기금운용본부장(CIO) 자리마저 1년 넘게 비어 있었습니다. 당시 월스트리트저널(WSJ)은 "(국민연금이) 5000억 달러 이상의 자산을 감독하는 투자책임자를 수배 중"이라며 "진짜 고약한 건 위치다. 지난해(2017년) 국민연금은 서울에서 120마일 남쪽의 산과 논, 축사, 분뇨처리시설로 둘러싸인 혁신도시로 옮겼다"라고 꼬집기도 했습니다.

공적 기관의 지방행(行)으로 얻을 수 있는 이익과 손해를 면밀히 따져봐야 할 것입니다. 지역 균형 발전이라는 명분에만 집착한다면, 보이지 않는 피해는 오롯이 국민이 감당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조미현 기자 mwis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