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유럽연합(EU) 등 서방 국가들이 러시아 제재 강도를 높이고 있다. 유엔은 러시아를 인권이사회에서 퇴출하며 전방위적 압박에 동참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서 민간인을 학살했다는 의혹이 사실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미국 상·하원은 7일(현지시간) 러시아산 에너지 수입을 금지하고 러시아, 벨라루스가 누려왔던 최혜국대우 지위를 박탈하는 법안을 가결했다. 최혜국대우는 세계무역기구(WTO) 규정에 따라 두 국가 사이의 무역 관계에서 제3국에 부여하고 있는 모든 조건보다 불리하지 않게 대우하는 통상 관계다. 최혜국대우가 박탈되면 러시아산과 벨라루스산 제품에 높은 관세를 부과할 수 있다. 워싱턴포스트는 “러시아가 북한과 쿠바처럼 ‘외톨이’ 국가 명단에 오른 것”이라고 평가했다.

미국은 러시아 제재를 가속화할 전망이다. 이날 가결된 법안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이미 행정명령을 통해 시행했거나 시행 방침을 밝힌 내용 중 하나다. 앞으로는 의회 차원에서도 입법화 등을 통해 러시아를 제재하겠다는 의지를 공식화한 것으로 풀이된다.

EU도 이날 추가 제재를 발표했다. 러시아산 석탄 수입을 전면 금지하는 데 합의했다. 러시아 에너지를 겨냥한 EU의 첫 제재다. EU는 석탄의 45%를 러시아에서 수입한다. 금액으로는 연간 40억유로(약 5조3000억원) 규모다. 이번 금수 조치는 유예기간을 거쳐 120일 후인 8월 초부터 발효된다.

EU는 러시아가 전비를 충당하지 못하도록 러시아산 주요 원자재와 장비 수입 금지에도 합의했다. 이는 연간 55억유로(약 7조3000억원) 규모다. AP통신은 이번 제재가 에너지를 둘러싼 유럽·러시아 관계 단절이란 금기를 깼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분석했다.

유엔은 러시아의 인권이사회 이사국 자격을 박탈했다. 이날 열린 긴급 특별총회에서 러시아의 유엔 인권이사회 이사국 자격을 정지하는 결의안을 찬성 93표, 반대 24표, 기권 58표로 가결했다. 서방 국가들과 한국 등이 찬성표를 던진 반면 북한, 중국, 이란은 반대표를 행사했다.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이 유엔 산하 기구에서 자격 정지된 것은 러시아가 처음이다.

앞으로 러시아는 유엔 인권이사회에서 결의안을 제기하거나 표결에 참여할 수 없다. 발언권도 잃는다. 명목상 이사국 지위를 유지할 순 있지만 러시아는 곧장 탈퇴를 선언했다. 겐나디 쿠지민 주유엔 러시아 차석대사는 “정략적인 조치”라며 탈퇴를 표명했다.

오현우 기자 oh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