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지 말아야 하는 이야기…이런 영화 다시는 안 나왔으면"
'공기살인' 조용선 감독 "가습기 살균제 사건 지켜보겠단 경고"
영화 '공기살인'은 10년 넘게 이어져 오고 있는 가습기 살균제 사건이 소재다.

1994년 처음 출시돼 17년 동안 1천만 병이 팔린 가습기 살균제의 독성 성분으로 95만명이 피해를 봤고 2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

참사 이후 11년 만인 지난달에야 최종 조정안이 나왔지만, 많은 분담금을 내야 하는 기업들이 수용을 거부하며 사건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영화를 기획한 지 6년 만에 '공기살인'을 선보이게 된 조용선 감독은 8일 시사회 이후 열린 간담회에서 "영화는 가습기 살균제 사건이 세상에 밝혀졌을 때 있었던 일들을 시간에 상관없이 배열한 것"이라며 "실제와 다른 영화의 결말은 이렇게 많은 사람이 계속 지켜볼 것이라는 기업과 정부에 대한 경고"라고 말했다.

조 감독은 "이렇게 개봉하게 돼서 너무 기쁘기도 하지만, 죄송한 마음도 있다.

긴 시간 벌어진 사건을 다 담기에는 너무 짧은 시간이었고, 피해자분들께서 보시기에 좀 부족할까 걱정된다"면서도 "많은 분들이 보시고 다시는 이런 영화가 안 나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 사건을 다룬 소재원 작가의 소설 '균'을 바탕으로 많은 자료 조사를 했다는 조 감독은 "피해자들이 민사 소송을 벌이고, 기업이 독성 실험을 조작하고 한 일들은 인터넷 검색만 해봐도 쉽게 알 수 있는 일들"이라며 "피해자분들을 직접 만나 조사하기도 했지만, 그분들의 개인사를 많이 노출하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조 감독은 "피해 상황이 너무 방대해 다 담을 수 없다는 게 너무나 슬프고 괴로웠고, 혹시나 이 영화에서 잘못된 정보가 전달돼 가해 집단이 피해자를 공격할 수 있는 수단이 될까 두려웠다"며 "그럴수록 냉정해져서 제삼자의 눈으로 바라보고자 노력했는데, 그래서 피해자분들이 서운하시지 않을까 또 걱정된다"고 말했다.

그는 "처음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다른 참사 이야기처럼 슬픔을 다뤄야 하나 생각했지만, 알면 알수록 분노했고 내 이야기라고 생각했다"며 "관공서, 병원, 학교 등 가습기가 있는 곳에서는 살균제를 대량 구매해 이용했고, 우리가 모두 간접 노출 대상이었다는 것을 잊으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공기살인' 조용선 감독 "가습기 살균제 사건 지켜보겠단 경고"
배우들도 '잊지 말아야 하는 이야기'를 담은 영화의 의미를 한목소리로 강조했다.

피해자 가족으로서 사건을 처음 알리고 나선 대학병원 의사 정태훈 역을 맡은 김상경은 "최근 미국에서 수입한 자동차 방향제에서 살균제에 있던 것과 같은 성분이 나왔다"며 "경각심을 갖지 않으면 다시 발생할 수 있는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나도 가습기 살균제 뉴스를 봤을 때 남의 일이라 생각했는데, 남의 일이 내 일처럼 느껴지게 하는 것이 영화가 가진 힘"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아들이 아빠가 TV에 나올 때 뭐 하는 사람인지 관심을 두기 시작해서 내가 하는 작품이 아이들에게 부끄럽지 않은가,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는 작품인가 생각하게 된다"며 "아이들과 함께 온 가족이 오셔서 봐주시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폐 질환으로 갑작스럽게 사망한 정태훈의 아내 한길주를 연기한 서영희는 "코로나19 사태 직전에 촬영을 마쳤는데 이런 상황을 겪어본 적이 없어서 흉내만 낸 것 같다.

코로나를 겪고 나니 이제야 이해가 돼서 너무 죄송하다"며 눈물을 보였다.

언니 한길주를 잃고 사건에 뛰어든 법조인 한영주 역의 이선빈은 "누구보다 사건을 잘 전달해야 하는 역할이었기에 솔직히 정말 어려웠다"며 "마음이 무겁다 보니 촬영하는 동안 살이 점점 빠지고 촬영 마지막 날에는 코피가 터져 나올 정도로 어느 작품보다 조심스럽게 집중해서 다가갔다"고 말했다.

살균제 제조회사 팀장 서우식을 연기한 윤경호는 "'흥행은 보장 못하더라도 창피하지 않은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말에 뜨거운 마음으로 같이 임했다"며 "제 주변에도 피해자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연기 욕심을 부리다 누가 되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는 "꽃 피는 봄에 어울리는 유쾌한 영화는 아니지만, 영화의 메시지가 오해 없이 잘 전달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