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24일 새벽 러시아의 침공으로 시작된 우크라이나 전쟁은 1,500명이 넘는 우크라이나 민간인이 죽고 420만 명이 고국을 등지는 등 생지옥이 계속되고 있다. 이런 끔찍한 장면의 데자뷔(기시감)를 불러일으키는 것은 바로 독일 나치의 폴란드 침공으로 시작된 제2차 세계대전일 것이다. 영화<피아니스트(The pianist), 2002>에서 아름다운 선율을 선사하던 유대인 피아니스트는 야만적인 독일군의 침공으로 하루아침에 가족이 몰살당하고 혼자 폐허 속에서 6년간을 버티다가 전쟁이 끝난 후 다시 음악을 통한 평화의 전달자로 돌아온다. 전쟁은 인간의 내면에 야수와 같은 무서운 폭력성을 이끌어 내기에 항상 아름다운 음악으로 감정을 순화시키고 자신의 수양을 통해 인간성 회복을 추구해 나가야 할 것이다. <영화 줄거리 요약>
1939년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유명한 유대계 피아니스트 블라디슬로프 스필만(애드리언 브로디 분)은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쇼팽의 야상곡을 연주하다가 독일군의 폭격을 당한다. 이후 가족들은 유대인 수용소 게토에서 생활하다가 결국 죽음의 아우슈비츠 수용소로 실려가게 되고 구사일생으로 혼자만 살아남은 스필만은 여러 은신처를 숨어 다니다가 허기와 추위, 고독과 공포 속에서 생존을 이어나간다. 어둠과 추위로 가득찬 폐허 속에서 우연찮게 순찰 중이던 독일군 장교 빌름 호젠펠트(토마스 크레치만 분)에게 발각되고 지상에서 마지막 연주가 될지도 모르는 연혼을 담은 연주를 하게 된다. <관전 포인트>
A. 이 영화의 구성은?
천재 피아니스트 스필만이 1939년부터 1945년 1월 바르샤바에서 독일군이 축출될 때까지 6년 간 유대인 집단 거주지 게토에서 겪은 실제 경험을 토대로 전쟁의 비참함과 집단 폭력 앞에 무너지는 인간의 나약함을 동시에 보여주는 영화이다. 피아노 연주 손 대역은 1970년 쇼팽 국제 피아노 콩쿠르 대회에서 6위로 입상한 폴란드의 피아니스트 야뉴슈 올레이니차크가 맡았다. 영화 OST에 나오는 쇼팽의 곡도 올레이니차크가 연주했다. 이 영화는 아카데미상 감독상, 남우주연상, 각색상을 수상하기도 하였다.
B. 스필만이 굶주렸을 때 보이던 현상은?
전쟁이 나기 전 남부러울 것 없이 살던 스필만이었지만 오랜 시간 폐허가 된 은신처에서 지내면서 영양실조로 병이 들어 사경을 헤매게 되자 닥치는 대로 상한 음식과 물을 먹기도 한다. 어느 집 선반에 있던 깡통 통조림을 발견하고 마치 노다지를 발견한 듯한 그의 눈빛은 인간은 결국 기본적인 생존 욕구 앞에서는 고고한 인간성도 사라지고 만다는 슬픈 현실을 보여준다. 그는 독일군에게 쫓기면서도 피아노를 보면 상상으로나마 연주를 하면서 작은 행복을 유지하기도 한다.
C. 스필만이 마주친 독일군 장교의 태도는?
직업을 묻는 독일군 장교 빌헬름 호젠펠트 대위에게, 피아니스트였다고 하자 폐허 속에 있던 피아노를 가리키며 연주를 부탁한다. 스필만은 폴란드 출신의 작곡가이며 피아니스트인 쇼팽의 발라드 1번 G 마이너를 연주하자 감상하던 장교는 그를 계속 숨겨주며 음식을 가져다주고 지켜준다. 얼마 후 연합군에게 독일이 패전하면서 후퇴하던 독일군 장교는 소련 스탈린그라드 포로수용소에서 안타깝게 죽고 만다.
D. 스필만의 결말은?
연합군의 폴란드 입성으로 독일군이 도주하자 6년간 처절한 삶을 이어오던 스필만은 다시 국영 라디오 방송국에서 피아노를 치며 잊혔던 평화의 선율을 선사하게 된다. 그는 오케스트라와 쇼팽의 협주곡<안단테 스피아나포와 화려한 대 폴로네이즈>를 연주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의 얼굴에는 많은 참상을 겪고 난 뒤의 슬픈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폴란드 유대인 50만 명 중 전쟁이 끝나고 살아남은 사람은 20여 명에 불과했다고 한다.
E. 영화를 감독한 폴란스키는 어떤 사람인가?
폴란스키의 부모 역시 유대계 폴란드인으로 독일 나치가 폴란드 점령 시 아버지는 오스트리아에 있는 수용소로 이송되었고, 어머니와 뱃속에 있는 여동생은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안타깝게 사망한 가족사가 있어 영화 제작 시 나치 장교가 유대인을 권총으로 차례로 살해하는 장면등 홀로코스트와 인종차별적 참상은 실제로 경험했던 장면을 반영한 것이라고 한다. <에필로그>
지난 2년 동안 전 세계 600만명(비공식 1,800만명) 이상이 사망한 코로나 팬데믹으로 수년째 인류가 고통을 겪으면서 세계여행도 불가능해지자 인간적인 교류와 경제적 공급망까지 무너지게 된 상황에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살인, 약탈, 성폭력으로 인류를 더욱 피폐하게 만들고 있다. 세계 평화를 유지하기 위한 UN 기구와 올림픽 제전은 이미 무의미하게 되었다. 과거 2차 세계대전에서 연합군들이 똘똘 뭉쳐 제국 주의자들을 응징하고 세계 평화를 지켜냈듯이 핵 전쟁까지 불사하는 러시아를 제압하여 인류의 생존을 지켜내야 할 절체절명의 시기이다. 한 잔의 따뜻한 커피와 케이크를 먹으며 아름다운 피아노 선율을 들을 수 있는 지금이 얼마나 행복한지 새삼 소중하며 이를 가능케하는 국가의 합리적 경영과 개개인의 애국심이 절실할 때이다.
<한경닷컴 The Lifeist> 서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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