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병국 칼럼] 기다리는 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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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닷컴 더 라이피스트
요즘 초등학생들도 하나씩 가지고 있는 소장품은 스마트 폰이다. 이제는 스마트 폰을 사용하지 않으면 무엇인가 다른 사람에게 뒤떨어지는 느낌을 받기도 한다. 정보를 거의 스마트 폰으로 공유하고 전달받고 한다. 초등학교에서도 그렇다고 한다. 그러다보니 필수품이 되었는데 그에 따른 부작용도 심심찮게 나온다고 한다. 정서불안 등.
그런 가운데 ‘기다림’을 잘 못한다는 것이다. 언젠가 우연히 텔레비전을 보다가 어떤 실험하는 것을 보았다. 나이가 5세,7세,10세 등 여러 명을 대상으로 하는 실험이다. 일명 ‘마시멜로 실험’이다. 스마트 폰을 많이 사용하는 아이들에게 스마트 폰을 주지 않고 앞에 ‘종’과 맛있는 ‘과자’를 놓고 지정한 시간을 참고 기다리면 맛있는 ‘과자’를 두 배 준다고 하면서, 얼마동안 시간을 보낼 수 있는가를 관찰하는 것이다. 만약 도저히 기다리지 못할 것 같으면 ‘종’을 울리라고 하였다. 여러 아이들이 실험을 한다. 어떤 아이 보호자는 우리 아이는 잘 할 것 같다고 하면서 자신 있게 말하는 사람도 있다. 그런데 잠시 보는데도 그 실험에서 무사히 통과한 아이는 한 명뿐이었다. 여러 아이들이 기다리는 것을 잘 못한다. 그것을 보면서 이것은 기성세대라도 별반 다르지 않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조선조 초기에 병조판서를 지낸 윤회라는 사람이 젊었을 때 일이다. 어느 날 그는 시골길을 걷다가 날이 저물어 주막에 묵게 되었다. 그런데 주막의 주인은 마침 방이 없다면서 그를 맞아주지 않았다. 윤회는 하는 수 없이 처마 밑에 앉아 하룻밤을 지새우기로 했다. 그가 처마 밑에 앉아 있는데 주인집 딸아이가 커다란 진주 알 하나를 뜰에 떨어뜨리고 말았다. 그때 곁을 지나던 오리가 그것을 먹인 줄 알고 냅다 삼켜 버렸다. 주인은 딸이 진주를 잃어버린 것을 알고 윤회를 의심했다. 주인은 곧장 윤회를 묶고, 내일 아침 관가에 고발하기로 했다. 그러나 윤회는 아무런 변명도 하지 않고 주인에게 한마디만 부탁했다. “저 오리를 내 곁에 매어두시오”. 이튿날 아침, 주인은 윤회를 관가로 끌고 가기위해 밖으로 나왔다. 윤회는 여전히 태연한 표정으로 주인에게 말했다.“오리가 똥을 쌌는지 보시오”.주인이 이상히 여겨 오리가 눈 똥을 헤집어 보았다. 그랬더니 딸이 잃어버렸던 ‘진주 알’이 오리의 똥 속에 박혀 있었다. 깜짝 놀란 주인이 윤회에게 사죄하며 말했다. “왜 어젯밤에 말하지 않았소? 그랬으면 이런 봉변은 면할 수 있었을 텐데”. 윤회가 조용히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어젯밤에 말했다면 당신은 필경 오리의 배를 갈라 진주를 찾아냈을 것이 아니오?”하더란다.
오늘 우리들은 너무 분주하고 바쁜 삶 속에 살고 있다. 가장 힘든 것 중에 하나는 기다리는 것이다. 기다릴 줄을 모른다. 조금만 느리면 난리가 난다. 모든 것을 지금 당장 하루빨리, 즉시 해 치우려고 한다. 그러다 보니 여유가 없다. 삶의 여유도 정신적인 여유도 없이 살아간다. 속도 전쟁이다. 가장 최근에 우리들에게 변화를 보여주는 것이 컴퓨터이다.
초창기의 286시대만 해도 속도가 느리면 느린가보다 했다. 용량이 작으면 그런가보다 하고 살았다. 즉 불편함을 모르고 살았다. 그러던 것이 386을 거처 486, 586 이제는 펜티엄 얼마로 나가면서 속도가 최대의 관건이다. 교회 목양실 컴퓨터가 몇 차례 바뀌었다. 지금 사용하는 컴퓨터가 들어오기 몇 년 전은, 교인 중 한사람이 사용하다가 준 오래된 노트북(TG삼보 에버라텍 ES-301)을 사용했다. 글 쓰고, 검색을 하는 데는 별로 불편함을 못 느끼어 몇 년 동안 잘 사용하였다. 그런데 부팅을 할 때, 속도가 좀 느리기는 하다. 몇 사람이 목양실에 올라와서 컴퓨터가 이렇게 느리냐? 고 한다.그런데 사용하는 나는 잘 모른다. 느리면 느린가보다 했다.
점점 사람들 마음속에 빠름에 대해서는 예민하고 민감하지만 느림에 대해서는 익숙하지 않다. 이제는 생각도 빨리 결정도 빨리 행동도 빨리 해야만 살아남는 시대가 되었다. 그런데 우리는 여기서 한 가지 기억을 해야 한다. 정말 빠른 것만이 능사인가를.
시중에 한때 베스트셀러 중에 '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라는 책이 있었다. 왠지 느리다는 것은 비생산적인 것 같고, 느린 사람들은 평판이 좋지 못하다. 그러나 우리는 빨리빨리에 젖어 있어서 얻는 것도 많겠지만 잃어버리는 것도 많다.
우리나라의 건축은 공기가 비교적 빠르다. 그러나 유럽과 외국의 경우에는 어떤 건축물은 수 백 년을 걸려 짓는 것도 있다. 인생은 서두르고 빨리만 해서는 안 된다. 사색하고 여유를 가지고 인생을 음미하고 삶에 대해서 물어보는 철학적 답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조금만 기다려도 좋았을 것을, 참았으면 좋았을 것을 하는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기다릴 줄 몰라서 실수하고 참을 줄 몰라서 후회한다. 서두르다가 망친다. 허둥대다가 망한다. 침착하지 못해서 어려움을 겪는다.
오늘 우리들에게 필요한 것은 기다릴 줄 아는 아량, 서두르지 않고 여유를 찾는 마음의 평정이다. 마음의 정화는 고요 중에 찾을 수 있다.“인간의 모든 불행은 단 한 가지, 고요한 방에 들어앉아 휴식할 줄 모른다는 데서 비롯 된다”(파스칼). 그런 것 같다. 오늘 우리들의 불행은 마음으로 여유가 없음 때문이다. 무엇인가를 성취하고 올라갔는데도 여전히 불안하다. 허전하다. 그럴 때는 산책을 해보라. 자연과 더불어. 그럴 때 바쁜 일과 속에서 또 다른 나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한경닷컴 The Lifeist> 고병국
"외부 필진의 기고 내용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독자 문의 : thepen@hankyung.com
그런 가운데 ‘기다림’을 잘 못한다는 것이다. 언젠가 우연히 텔레비전을 보다가 어떤 실험하는 것을 보았다. 나이가 5세,7세,10세 등 여러 명을 대상으로 하는 실험이다. 일명 ‘마시멜로 실험’이다. 스마트 폰을 많이 사용하는 아이들에게 스마트 폰을 주지 않고 앞에 ‘종’과 맛있는 ‘과자’를 놓고 지정한 시간을 참고 기다리면 맛있는 ‘과자’를 두 배 준다고 하면서, 얼마동안 시간을 보낼 수 있는가를 관찰하는 것이다. 만약 도저히 기다리지 못할 것 같으면 ‘종’을 울리라고 하였다. 여러 아이들이 실험을 한다. 어떤 아이 보호자는 우리 아이는 잘 할 것 같다고 하면서 자신 있게 말하는 사람도 있다. 그런데 잠시 보는데도 그 실험에서 무사히 통과한 아이는 한 명뿐이었다. 여러 아이들이 기다리는 것을 잘 못한다. 그것을 보면서 이것은 기성세대라도 별반 다르지 않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조선조 초기에 병조판서를 지낸 윤회라는 사람이 젊었을 때 일이다. 어느 날 그는 시골길을 걷다가 날이 저물어 주막에 묵게 되었다. 그런데 주막의 주인은 마침 방이 없다면서 그를 맞아주지 않았다. 윤회는 하는 수 없이 처마 밑에 앉아 하룻밤을 지새우기로 했다. 그가 처마 밑에 앉아 있는데 주인집 딸아이가 커다란 진주 알 하나를 뜰에 떨어뜨리고 말았다. 그때 곁을 지나던 오리가 그것을 먹인 줄 알고 냅다 삼켜 버렸다. 주인은 딸이 진주를 잃어버린 것을 알고 윤회를 의심했다. 주인은 곧장 윤회를 묶고, 내일 아침 관가에 고발하기로 했다. 그러나 윤회는 아무런 변명도 하지 않고 주인에게 한마디만 부탁했다. “저 오리를 내 곁에 매어두시오”. 이튿날 아침, 주인은 윤회를 관가로 끌고 가기위해 밖으로 나왔다. 윤회는 여전히 태연한 표정으로 주인에게 말했다.“오리가 똥을 쌌는지 보시오”.주인이 이상히 여겨 오리가 눈 똥을 헤집어 보았다. 그랬더니 딸이 잃어버렸던 ‘진주 알’이 오리의 똥 속에 박혀 있었다. 깜짝 놀란 주인이 윤회에게 사죄하며 말했다. “왜 어젯밤에 말하지 않았소? 그랬으면 이런 봉변은 면할 수 있었을 텐데”. 윤회가 조용히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어젯밤에 말했다면 당신은 필경 오리의 배를 갈라 진주를 찾아냈을 것이 아니오?”하더란다.
오늘 우리들은 너무 분주하고 바쁜 삶 속에 살고 있다. 가장 힘든 것 중에 하나는 기다리는 것이다. 기다릴 줄을 모른다. 조금만 느리면 난리가 난다. 모든 것을 지금 당장 하루빨리, 즉시 해 치우려고 한다. 그러다 보니 여유가 없다. 삶의 여유도 정신적인 여유도 없이 살아간다. 속도 전쟁이다. 가장 최근에 우리들에게 변화를 보여주는 것이 컴퓨터이다.
초창기의 286시대만 해도 속도가 느리면 느린가보다 했다. 용량이 작으면 그런가보다 하고 살았다. 즉 불편함을 모르고 살았다. 그러던 것이 386을 거처 486, 586 이제는 펜티엄 얼마로 나가면서 속도가 최대의 관건이다. 교회 목양실 컴퓨터가 몇 차례 바뀌었다. 지금 사용하는 컴퓨터가 들어오기 몇 년 전은, 교인 중 한사람이 사용하다가 준 오래된 노트북(TG삼보 에버라텍 ES-301)을 사용했다. 글 쓰고, 검색을 하는 데는 별로 불편함을 못 느끼어 몇 년 동안 잘 사용하였다. 그런데 부팅을 할 때, 속도가 좀 느리기는 하다. 몇 사람이 목양실에 올라와서 컴퓨터가 이렇게 느리냐? 고 한다.그런데 사용하는 나는 잘 모른다. 느리면 느린가보다 했다.
점점 사람들 마음속에 빠름에 대해서는 예민하고 민감하지만 느림에 대해서는 익숙하지 않다. 이제는 생각도 빨리 결정도 빨리 행동도 빨리 해야만 살아남는 시대가 되었다. 그런데 우리는 여기서 한 가지 기억을 해야 한다. 정말 빠른 것만이 능사인가를.
시중에 한때 베스트셀러 중에 '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라는 책이 있었다. 왠지 느리다는 것은 비생산적인 것 같고, 느린 사람들은 평판이 좋지 못하다. 그러나 우리는 빨리빨리에 젖어 있어서 얻는 것도 많겠지만 잃어버리는 것도 많다.
우리나라의 건축은 공기가 비교적 빠르다. 그러나 유럽과 외국의 경우에는 어떤 건축물은 수 백 년을 걸려 짓는 것도 있다. 인생은 서두르고 빨리만 해서는 안 된다. 사색하고 여유를 가지고 인생을 음미하고 삶에 대해서 물어보는 철학적 답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조금만 기다려도 좋았을 것을, 참았으면 좋았을 것을 하는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기다릴 줄 몰라서 실수하고 참을 줄 몰라서 후회한다. 서두르다가 망친다. 허둥대다가 망한다. 침착하지 못해서 어려움을 겪는다.
오늘 우리들에게 필요한 것은 기다릴 줄 아는 아량, 서두르지 않고 여유를 찾는 마음의 평정이다. 마음의 정화는 고요 중에 찾을 수 있다.“인간의 모든 불행은 단 한 가지, 고요한 방에 들어앉아 휴식할 줄 모른다는 데서 비롯 된다”(파스칼). 그런 것 같다. 오늘 우리들의 불행은 마음으로 여유가 없음 때문이다. 무엇인가를 성취하고 올라갔는데도 여전히 불안하다. 허전하다. 그럴 때는 산책을 해보라. 자연과 더불어. 그럴 때 바쁜 일과 속에서 또 다른 나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한경닷컴 The Lifeist> 고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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