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본질 흐리는 건설사의 ESG 꼼수
“일부러 금액을 쪼개 무조건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채권을 포함시키려고 합니다. 그래야 투자자 모집이 되거든요.”(건설사 자금 담당자)

자본시장에 ESG 바람이 거세다. 국민연금·자산운용사 등 이른바 ‘돈줄’을 쥐고 있는 기관투자가들이 핵심 투자 기준으로 ESG를 강조하고 있어서다. 기업들도 이런 투자 흐름에 서둘러 편승하고 있다.

가장 발 빠른 업종 하나는 건설업이다. 건설은 대표적인 비(非)친환경 업종으로 꼽힌다. 자재를 가공하고 재개발·재건축 공사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먼지와 폐콘크리트 등 건설 폐기물 발생이 불가피한 탓이다. 이런 인식을 불식시키면서 자금조달 방법으로 건설사들이 찾아낸 우회로는 ‘ESG 채권’이다.

ESG 채권을 발행하면 자금 조달 혹한기에 상대적으로 투자자 모집이 수월해지는 데다 대내외적으로 ESG 경영을 강조하는 모습도 부각시킬 수 있다. 건설사들은 주로 친환경 건축물을 내세워 ESG 채권을 발행하고 있다. 삼성물산만 해도 지난 5일 5000억원어치 회사채를 발행했는데, 이 중 3000억원을 ESG 채권으로 구성했다. 서울 반포동 일대 재건축 사업 등에 고효율 에너지 건축물을 세운다는 점을 강조한 덕분이다.

SK에코플랜트 역시 지난달 초 1500억원어치 회사채 중 1000억원을 ESG 채권으로 구성해 자금을 확보했다. 폐기물 처리 기업에 지분 투자를 한다는 이유로 ESG 채권 인증을 받았다. 포스코건설, 한화건설, DL이앤씨도 지난해 ESG 채권을 발행했다. 올 들어서도 다수의 건설사가 ESG 채권 발행을 준비하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그린워싱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그린워싱은 친환경을 의미하는 녹색(green)과 세탁(washing)의 합성어로 환경 오염 문제는 축소하고 일부 장점만 부각시키는 행위를 말한다. 기존 아파트 단지를 부수고 새 아파트로 다시 짓는 재건축이 ESG에 해당하는지 논란이 일고 있는 배경이다.

ESG 채권 인증 기관 관계자는 “사후 관리가 법적 의무가 아니라 현실적으로 자금 조달 뒤 흘러가는 돈의 흐름을 일일이 파악할 수 없어 프로젝트 설명과 사용처에 따라 인증해줄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당장은 ‘ESG 간판’을 내세우면 조달비용을 낮출 수 있다. 하지만 ESG 인증 뒤에 가려 있던 그린워싱은 언제든 수면 위로 불거질 수 있다. 눈 가리고 아웅 식의 그린워싱은 결국 돌이킬 수 없는 기업 가치 훼손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