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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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가 세계 최대 의결권 자문사인 ISS와 세계 최대 운용사 블랙록 등에서 20년 동안 근무한 기업 지배구조 전문가를 영입했다. 지배구조 개편을 통해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을 강화하고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등기임원 복귀 등에 대비하기 위한 포석이란 관측이 나온다.

10일 투자은행(IB)업계 등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지난달 글로벌 컨설팅업체인 머로우소달리에서 근무한 오다니엘 이사를 IR팀 부사장으로 영입했다. 서병훈 부사장(IR팀장)에 이어 삼성전자 IR팀에서 두 번째로 높은 자리다. 오 부사장이 2019~2021년 몸담았던 머로우소달리는 미국 뉴욕과 영국 런던에 사무소를 둔 컨설팅업체로 주로 지배구조 개편 작업과 주주총회 전략 수립 등을 수행한다.

오 부사장은 20년 동안 지배구조 개편과 경영권 방어 업무를 맡았다. 매사추세츠공대(MIT) 경제학부를 졸업한 그는 ISS(2008~2013년) 블랙록(2014~2016년)에서 임원으로 근무했다. 글로벌 기관투자가와 ISS 등 의결권 자문사 고위 관계자들과 폭넓은 인맥을 쌓은 것으로 알려졌다. 2016~2019년엔 세계 2위 금광업체인 베릭골드에서 지배구조 개편 작업을 주도했다.

경제계에선 오 부사장이 삼성생명이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8.51%)을 정리하는 등 지배구조 개편 작업의 밑그림을 짜는 역할을 주로 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 과정에서 매각, 분할, 합병 등 주총 안건과 관련해 기관투자가의 협조와 지지를 끌어낼 전망이다.

이번 영입은 주총 안건인 이 부회장의 사내이사 선임에 대비하기 위한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경제계 관계자는 “이 부회장의 회장 취임과 지배구조 개편 등이 실형 선고로 인해 1년 넘게 미뤄진 상황”이라며 “연내 지배구조 개편을 준비하는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거세지는 행동주의 투자자 압박

삼성 안팎에선 오다니엘 IR팀 부사장 영입을 계기로 기업 지배구조 개편 작업에 속도가 날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지배구조 개편 작업을 마무리하고 관련 리스크를 털어내는 것은 삼성의 오랜 숙원 중 하나다. 이 과정에서 오 부사장이 행동주의 투자자들의 공격에 대비하고 기존 주주들의 동의를 구하는 역할을 할 것으로 관측된다.
[단독] 삼성 지배구조 개편 '숙원' 푼다…"ESG 시대, 더는 못 미뤄"
10일 재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올해 해결해야 할 중요 과제로 지배구조 개편을 꼽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최근 경제계 전반에 행동주의 투자자들의 공격이 거세지는 데 대비해야 한다는 판단에서다.

삼성전자는 행동주의 투자자들이 외국인투자자, 소액주주 등과 연대해 지배구조 개편 작업에 제동을 거는 것을 ‘위기 시나리오’로 보고 있다. 지배구조 개편 과정에서 매각·분할·합병 등의 안건은 주주총회를 통과해야 한다. 이때 행동주의 투자자들이 주주친화책을 요구하면서 이들 안건에 반대표를 행사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미국 행동주의 펀드인 엘리엇매니지먼트는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2018년 현대모비스와 현대글로비스 분할·합병을 반대한 적이 있다.

삼성전자가 지난달 영입한 오 부사장은 이 같은 복병의 해결사로 나설 전망이다. 그는 세계 최대 의결권 자문사인 ISS와 자산운용사인 블랙록 출신이다. 지배구조 개편 관련 주총 안건을 놓고 삼성과 행동주의 투자자 간 ‘표 대결’ 국면이 전개될 경우 ISS 등 외국계 의결권자문사의 분석 보고서는 안건 처리 향방을 가를 수 있다. 오 부사장이 의결권자문사와 기관투자가들을 설득하고 대응 전략 전반을 짤 것으로 관측된다.

ESG(환경·사회·지배구조)가 기업 경영의 화두로 떠올라 지배구조의 건전성 확보가 시급한 분위기다. 삼성전자는 2025년 ESG 경영공시 의무 이행을 앞두고 있다. 금융위원회는 2025년부터 자산 총액 2조원 이상 유가증권시장 상장사에 대해 ESG 공시를 의무화했다. ESG가 기업 가치를 높이고 지속가능 경영을 해 나가는 데 영향이 더 커지는 것이다. 유럽도 ESG 경영을 강제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관련 규제가 더 강화되기 전에 지배구조의 건전성을 갖춰야 한다는 게 삼성 내부의 판단이다.

지배구조 개편 과제 ‘산적’

삼성은 2013년부터 지배구조 개편에 본격 나섰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순환출자 문제를 해결하라고 압박하자 계열사 합병, 지분 정리 등을 통해 2013년 80여 개에 달하던 순환출자 고리를 2018년 모두 끊어냈다.

현재 지배구조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 오너 일가→삼성물산→삼성생명→삼성전자’로 이어져 있다. 이 부회장을 비롯한 총수 일가가 삼성물산 지분 31.9%를 보유하고 이를 통해 다른 계열사를 지배하는 방식이다. 마지막 남은 ‘골칫거리’는 삼성생명이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8.51%·5억815만 주) 처리다. 하지만 이 부회장이 지난해 1월 ‘국정농단 사건’ 파기환송심에서 징역 2년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으면서 지배구조 개편 작업이 미뤄져 왔다.

지분 정리 외에 이 부회장의 등기임원(회장) 선임, 이사회 독립성 강화 방안 등도 지배구조 개편의 핵심 논의 사항이다. 일각에선 이 부회장의 사내이사 선임 건이 주총을 통과할 수 있도록 대응 전략을 짜는 데 오 부사장이 주요 역할을 맡을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이재용 등기이사 오를까

국내 4대 그룹 총수 중 ‘회장’ 직함을 달고 있지 않은 기업인은 이 부회장이 유일하다. 이 부회장은 삼성전자에서 ‘부회장’(담당업무) 직함으로 활동하고 있지만 ‘미등기임원’이다. 이 부회장이 새 정부 출범 후 사면·복권될 경우 등기임원에 오를 수 있는 길이 열린다. 지난해 8월 가석방된 이후 경제계에선 이 부회장에 대한 사면·복권 요청이 잇따르고 있다. 사면을 받으면 내년 주총에 이 부회장의 이사 선임 안건이 오를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이다.

이 과정에서 ISS나 일부 기관투자가가 이 부회장의 이사 선임을 반대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국민연금은 지난달 18일 효성 주총에서 조현준 회장과 조현상 부회장의 사내이사 선임 건에 대해 횡령·배임 등 기업 가치 훼손 이력을 이유로 반대표를 행사했다.

각 계열사 전문경영인 체제와 이사회 운영 방식을 손보는 작업도 남아 있다. 이 부회장은 2020년 공식적으로 “4세 승계는 없다”고 밝혔다. 지난 1월 출범한 삼성준법감시위원회 2기도 최우선 과제로 지배구조 개선 문제를 언급했다.

정지은/김익환 기자 je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