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 산불 막는 비결은 빗물 활용한 '물모이'" [여기는 논설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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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 양구에서 대형 산불이 발생해 이미 축구장 730개 이상의 면적이 불에 탔다. 올들어 발생한 산불은 250여 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26건)보다 두 배나 늘었다. 이런 가운데 산불 예방을 위한 ‘물모이’ 조성에 나서는 사람들이 있어 눈길을 끈다.
식목일을 앞둔 지난 2일, 서울 노원구 천수주말농장에서 ‘물모이’ 행사가 진행됐다. 농장에서 불암산으로 오르는 등산로에는 경사면을 따라 빗물의 길이 있다. 경사를 따라 30~40㎝ 정도 얕은 구덩이를 파거나 나무를 땅에 박아 작은 둔덕을 만들고 이곳으로 빗물이 모이게 해서 물을 모으는 곳이 ‘물모이’다.
이날 행사에 참여한 대한적십자사 시니어나눔활동 전문가 황태인 ㈜토브넷 회장이 ‘물모이’의 중요성과 국내외 추진 경과를 담은 글을 보내왔다. 황 회장의 글을 아래에 싣고, 슬로바키아에서 ‘물모이’ 운동을 전개하고 있는 미카엘 크라빅 ‘사람과 물’ 이사장의 조언도 함께 소개한다.
서울은 전체 면적 중 25.6%, 4분의 1이 산림이다. 올 2월에는 노원구 불암산에서 불이 났고, 3월엔 강남구 구룡마을과 대모산, 이달 초에는 위례신도시 인근 청량산에서 불이 났다. 산불은 기후뿐만 아니라 숲의 형태와 지형에 큰 영향을 받는다.
이날 행사는 노원도시농업네트워크의 이은수 대표, 서울대 건설환경공학부의 한무영 명예교수, 환경분야 노벨상으로 불리는 ‘골드만 환경상(Goldman Environment Prize)’을 받은 슬로바키아 NGO ‘사람과 물’의 미카엘 크라빅(Michal Kravcik, 1956~) 이사장이 주관했다.
필자를 포함해 대한적십자사 시니어봉사단, 서울대 환경동아리, 환경재단, 성주군청 조경관리담당, SBS 강원도 대표방송 등이 참여해 불암산 산불 현장에 ‘물모이’를 만들었다. 재료는 이번 산불로 베어진 나무, 산속 돌멩이와 흙을 썼다. 땅과 숲을 촉촉하게 만들어 그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은수 대표는 “활엽수는 침엽수보다 불에 강하다. 참나무류는 365도, 소나무류는 320도에서 불이 붙기 시작한다. 착화 시간, 즉 불이 붙는 데 걸리는 시간은 참나무류가 68초, 소나무류는 42초다. 산불이 잦은 강원도 산림은 건조한 토양에 강한 소나무가 주요 수종이다”라고 말했다. 산불 위험을 낮추고 확산을 억제하기 위해서는 불에 강한 내화(耐火) 수림대 조성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내화수목으로는 굴참나무, 떡갈나무, 물푸레나무 등이 있다.
이 대표는 “동해안 산불을 키운 또 다른 원인 중 하나가 토양습도”라고 했다. 그린피스는 동해안 산불 당시 토양습도가 약 35%였다고 보고했다. “토양습도가 50% 이하로 떨어지면 식물의 수분 활용이 줄어들어 ‘숲이 불쏘시개’가 되기 시작한다”는 설명도 이어졌다.
이어서 한무영 교수는 “우리 경지 70%가 산지다. 경사가 있으니 비가 오면 자꾸 토사가 유출되는데 빗물이 흐르다 ‘물모이’를 만나면 잠깐이라도 고였다가 가니까 흐르는 속도가 느려진다. 그렇게 되면 토사 유출이 덜 되고 물이 고였을 때 땅으로 스며드니 식생도 좋아지고, 가물 땐 짐승들 식수로도 이용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빗물박사’인 한 교수는 “우리나라는 여름에 70%의 비가 온다. 그걸 하수도로, 강으로 다 흘려보내고 겨울에는 가뭄이 온다. 겨울 가뭄에 대비해 빗물을 땅에 저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물 저축은 토양 침식도 예방할 수 있다. 한 교수는 “빗물이 빠르게 유출되는 땅에서는 침식이 빨리 일어나 수백 년 동안 만들어진 퇴적토가 바다로 쓸려나간다”며 “그렇게 되면 미생물과 곤충, 조류와 포유류로 이어지는 생태계의 순환고리가 깨진다”고 말했다.
크라빅 회장은 “한국보다 건조한 슬로바키아에선 ‘물모이’로 산불 지역의 토양습도와 생태계를 복원했다”고 했다. 슬로바키아의 연평균 강수량은 650㎜다. 서울의 평년값(1400㎜)에 절반도 못 미친다. 이 정도로 건조한 지역에서도 ‘물모이’를 이용해 생태계를 복원했으니 한국의 건조한 겨울에도 통할 것이라고 했다. 그는 이어서 물이 극한 기후, 해수면 상승, 기후 변화의 본질적 문제라고 강조했다.
이렇게 빗물 한 방울, 한 방울의 소중함을 인식하여 산에서 버려지는 물을 모아 산불을 막는 데 활용해야 한다. 내가 사는 인근의 산 경사지에 ‘물모이’를 만드는 데 앞장서 산불 예방과 생태계를 보전하고 안전한 삶의 터전을 만드는데 전 국민운동을 벌여 나가야 할 시점이다. -황태인 대한적십자사 시니어스 나눔활동전문가
미카엘 크라빅 ‘사람과 물’ 이사장은 지난 5일 국회 의원회관 토론회에서 슬로바키아 사람들이 버려지는 물을 활용해 산불과 맞선 경험을 공유했다. 그에 따르면 슬로바키아는 2010년 산림 활성화 프로그램을 채택해 국가의 물 공급과 보호 시스템을 주도적으로 관리했다. 국립공원과 생태공원 곳곳에 물모이댐, 저습지, 울타리 등을 설치한 결과 자연적인 범람원을 확보하고 빗물 관리의 효율성을 높이면서 홍수·토양 침식 방지, 자연 생태계 회복 효과까지 거뒀다.
그는 “여름철 장마로 홍수가 빈번하게 발생하면서도 겨울철이 오면 극심한 가뭄에 시달리는 한국의 기후를 고려하면 충분히 검토할 만한 대안”이라고 말했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식목일을 앞둔 지난 2일, 서울 노원구 천수주말농장에서 ‘물모이’ 행사가 진행됐다. 농장에서 불암산으로 오르는 등산로에는 경사면을 따라 빗물의 길이 있다. 경사를 따라 30~40㎝ 정도 얕은 구덩이를 파거나 나무를 땅에 박아 작은 둔덕을 만들고 이곳으로 빗물이 모이게 해서 물을 모으는 곳이 ‘물모이’다.
이날 행사에 참여한 대한적십자사 시니어나눔활동 전문가 황태인 ㈜토브넷 회장이 ‘물모이’의 중요성과 국내외 추진 경과를 담은 글을 보내왔다. 황 회장의 글을 아래에 싣고, 슬로바키아에서 ‘물모이’ 운동을 전개하고 있는 미카엘 크라빅 ‘사람과 물’ 이사장의 조언도 함께 소개한다.
“경사지마다 빗물 모아 산불 예방을”
산불이 좀처럼 줄어들지 않고 있다. 지난달 5일 발생한 동해안 산불은 열흘 이상 지속되어 진화에 어려움을 겪었다. 화마(火魔)가 휩쓸고 간 산림과 마을은 온통 시커먼 폐허로 변했다.서울은 전체 면적 중 25.6%, 4분의 1이 산림이다. 올 2월에는 노원구 불암산에서 불이 났고, 3월엔 강남구 구룡마을과 대모산, 이달 초에는 위례신도시 인근 청량산에서 불이 났다. 산불은 기후뿐만 아니라 숲의 형태와 지형에 큰 영향을 받는다.
이날 행사는 노원도시농업네트워크의 이은수 대표, 서울대 건설환경공학부의 한무영 명예교수, 환경분야 노벨상으로 불리는 ‘골드만 환경상(Goldman Environment Prize)’을 받은 슬로바키아 NGO ‘사람과 물’의 미카엘 크라빅(Michal Kravcik, 1956~) 이사장이 주관했다.
필자를 포함해 대한적십자사 시니어봉사단, 서울대 환경동아리, 환경재단, 성주군청 조경관리담당, SBS 강원도 대표방송 등이 참여해 불암산 산불 현장에 ‘물모이’를 만들었다. 재료는 이번 산불로 베어진 나무, 산속 돌멩이와 흙을 썼다. 땅과 숲을 촉촉하게 만들어 그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은수 대표는 “활엽수는 침엽수보다 불에 강하다. 참나무류는 365도, 소나무류는 320도에서 불이 붙기 시작한다. 착화 시간, 즉 불이 붙는 데 걸리는 시간은 참나무류가 68초, 소나무류는 42초다. 산불이 잦은 강원도 산림은 건조한 토양에 강한 소나무가 주요 수종이다”라고 말했다. 산불 위험을 낮추고 확산을 억제하기 위해서는 불에 강한 내화(耐火) 수림대 조성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내화수목으로는 굴참나무, 떡갈나무, 물푸레나무 등이 있다.
이 대표는 “동해안 산불을 키운 또 다른 원인 중 하나가 토양습도”라고 했다. 그린피스는 동해안 산불 당시 토양습도가 약 35%였다고 보고했다. “토양습도가 50% 이하로 떨어지면 식물의 수분 활용이 줄어들어 ‘숲이 불쏘시개’가 되기 시작한다”는 설명도 이어졌다.
이어서 한무영 교수는 “우리 경지 70%가 산지다. 경사가 있으니 비가 오면 자꾸 토사가 유출되는데 빗물이 흐르다 ‘물모이’를 만나면 잠깐이라도 고였다가 가니까 흐르는 속도가 느려진다. 그렇게 되면 토사 유출이 덜 되고 물이 고였을 때 땅으로 스며드니 식생도 좋아지고, 가물 땐 짐승들 식수로도 이용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빗물박사’인 한 교수는 “우리나라는 여름에 70%의 비가 온다. 그걸 하수도로, 강으로 다 흘려보내고 겨울에는 가뭄이 온다. 겨울 가뭄에 대비해 빗물을 땅에 저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물 저축은 토양 침식도 예방할 수 있다. 한 교수는 “빗물이 빠르게 유출되는 땅에서는 침식이 빨리 일어나 수백 년 동안 만들어진 퇴적토가 바다로 쓸려나간다”며 “그렇게 되면 미생물과 곤충, 조류와 포유류로 이어지는 생태계의 순환고리가 깨진다”고 말했다.
크라빅 회장은 “한국보다 건조한 슬로바키아에선 ‘물모이’로 산불 지역의 토양습도와 생태계를 복원했다”고 했다. 슬로바키아의 연평균 강수량은 650㎜다. 서울의 평년값(1400㎜)에 절반도 못 미친다. 이 정도로 건조한 지역에서도 ‘물모이’를 이용해 생태계를 복원했으니 한국의 건조한 겨울에도 통할 것이라고 했다. 그는 이어서 물이 극한 기후, 해수면 상승, 기후 변화의 본질적 문제라고 강조했다.
이렇게 빗물 한 방울, 한 방울의 소중함을 인식하여 산에서 버려지는 물을 모아 산불을 막는 데 활용해야 한다. 내가 사는 인근의 산 경사지에 ‘물모이’를 만드는 데 앞장서 산불 예방과 생태계를 보전하고 안전한 삶의 터전을 만드는데 전 국민운동을 벌여 나가야 할 시점이다. -황태인 대한적십자사 시니어스 나눔활동전문가
“슬로바키아엔 10만 개…큰 산불 없어”
슬로바키아는 2005년 대규모 산불로 120㎢ 규모의 산림을 잃었다. 2004년 중부 유럽을 강타한 폭우에 이어 다음해 대형 산불이 발생하자 사람들은 물을 활용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기 시작했다. 대형 산불 이후 슬로바키아에는 10만 개가 넘는 물모이가 만들어졌고, 큰 산불로 인한 피해는 사라졌다.미카엘 크라빅 ‘사람과 물’ 이사장은 지난 5일 국회 의원회관 토론회에서 슬로바키아 사람들이 버려지는 물을 활용해 산불과 맞선 경험을 공유했다. 그에 따르면 슬로바키아는 2010년 산림 활성화 프로그램을 채택해 국가의 물 공급과 보호 시스템을 주도적으로 관리했다. 국립공원과 생태공원 곳곳에 물모이댐, 저습지, 울타리 등을 설치한 결과 자연적인 범람원을 확보하고 빗물 관리의 효율성을 높이면서 홍수·토양 침식 방지, 자연 생태계 회복 효과까지 거뒀다.
그는 “여름철 장마로 홍수가 빈번하게 발생하면서도 겨울철이 오면 극심한 가뭄에 시달리는 한국의 기후를 고려하면 충분히 검토할 만한 대안”이라고 말했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