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사 시신 발견된 '4월 11일' 표현 두고는 민주단체 간 갈등 이어져
'4·19 혁명 도화선' 김주열 열사 추모식 마산중앙부두서 열려
제62주년 4·11 민주항쟁 기념 및 김주열 열사 추모식이 11일 김주열 열사 시신 인양지인 경남 창원시 마산중앙부두에서 열렸다.

제62주년 추모식에는 행사를 주관한 사단법인 김주열열사기념사업회 관계자와 김주열 열사 고향인 전북 남원 시민 등이 참석했다.

추모식은 추모공연, 추모사, 기념사 등 순서로 진행됐다.

참석자들은 김주열 열사의 숭고한 정신과 민주주의를 위해 희생된 열사들의 정신을 계승시켜나가자는 데 뜻을 모았다.

창원시는 김주열 열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념하기 위해 매년 마산중앙부두에서 열리는 추모식에 행정지원 등을 하고 있다.

김주열 열사는 마산상업고등학교(현 마산용마고) 1학년이던 1960년 3·15 의거에 참여한 뒤 실종됐다가 27일 만인 4월 11일 마산 앞바다에서 눈에 최루탄이 박힌 채 발견됐다.

김주열 열사의 참혹한 모습이 당시 부산·마산과 서울지역 언론을 통해 알려지며 4·19 혁명의 직접적인 도화선이 된 것으로 평가받는다.

한편 4월 11일을 '4·11 민주항쟁'으로 표현하는 것이 타당한지에 대해 지역 내 민주운동 단체 간 갈등이 이어지고 있다.

김주열 열사 추모식을 맡은 김주열열사기념사업회는 4·11 민주항쟁이라는 명칭이 타당하다고 주장하는 반면 3·15의거기념사업회와 부마민주항쟁기념사업회 등 3·15 관련 10개 단체는 '제2차 3·15 의거'로 표현하는 것이 맞는다는 입장이다.

10개 단체 측은 최근 경남도와 창원시에 질의서를 보내 "대한민국 정부와 국회(법률)는 3·15 의거를 '1960년 3월 15일부터 4월 13일까지(를 전후해) 마산에서 일어난 의거'로 규정하는 점 등을 근거로 4·11 민주항쟁이라는 자의적 용어 사용은 상식에 도전하는 역사적 폭거"라고 지적했다.

앞서 두 단체는 김주열 열사 동상 설치과정에서도 같은 문제로 한동안 대립한 바 있다.

당시 양측은 역사적 해석 등을 통해 향후 정리해야 할 부분이라는 데 공감하고 논란이 된 명칭을 '60년 4월 11일'로 정리하기로 의견을 모은 바 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