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포스코·해운업계 '상생의 조건'
“몇몇 분들이 ‘선사들이 이렇게 많이 모인 것을 보니 포스코가 무섭긴 엄청 무섭네’라고 말씀하시더라고요. 저희도 포스코가 무섭습니다.”

지난 8일 서울 여의도 해운빌딩에서 열린 포스코플로우·해운협회 상생협력 업무협약 체결식에서 엄기두 해양수산부 차관이 인사말로 건넨 말이다. 어색한 분위기를 풀기 위한 발언이어서 행사장에선 웃음이 터졌다. 하지만 지난 2년간 불거졌던 포스코그룹과 해운업계 간 갈등의 단면을 보여주는 ‘뼈 있는 농담’이었다는 게 참석자들의 공통된 반응이었다.

포스코그룹은 2020년 5월 숙원이었던 물류 자회사 출범을 공식 선언했다. 원료 구매·제품 제작·판매 과정에서 여러 계열사가 제각각 운송 계약을 맺다 보니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판단에서였다. 그룹의 전체 물류비만 작년 기준 3조원에 달한다. 자회사 출범과 함께 한때 HMM 인수를 적극 검토한 것도 이 때문이었다. 삼성과 현대자동차, LX그룹 등도 별도 물류 자회사를 두고 그룹 물량을 처리하고 있다.

해운업계는 거세게 반발했다. 대형 화주인 포스코가 해운업에 진출하면 기존 선사들의 수익성이 떨어지고, 운임 인하를 압박할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했다. 결국 포스코가 한발 물러섰다. 포스코는 지난해 11월 대안으로 대량화물유통기지(CTS) 자회사인 포스코터미날(현 포스코플로우)에 물류 기능을 통합하기로 했다. 그럼에도 해운업계의 의심은 사라지지 않았다. 해수부 중재로 포스코플로우와 선사들이 상생협력 업무협약을 맺은 배경이다.

문제는 업무협약이 구속력 없는 선언에 그칠 수 있다는 점이다. 양측은 이날 국적선사 이용을 확대하고, 시장 상황에 맞는 합리적인 입찰 계약 체결에 노력한다는 원론적인 내용에만 합의했다.

비용을 절감하려는 포스코나 수익 저하를 우려하는 선사들의 입장 모두 이해가 간다. 다만 포스코그룹이 해운업계와의 상생을 위해 물류 자회사 출범을 철회한 것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해운업계도 포스코그룹의 진심을 믿고 더 이상의 압박이나 여론전을 중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양측의 갈등이 불거질 경우 간신히 다시 살아난 해운업계의 경쟁력이 또다시 추락할 수 있다는 것은 또 다른 얘기다.

향후 재발할 수 있는 양측 갈등을 중재해야 하는 해수부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졌다는 지적도 나온다. 중소 선사들에 대한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도 필요하다. “상생협력과 동반 성장을 위해 정부에서도 지원을 적극 검토하겠다”는 엄 차관의 이날 발언이 공염불로 끝나면 안 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