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성민 칼럼] 집무실 이름보다 더 중요한 것들
윤석열 정부 초기의 가시적 변화는 단연 탈(脫)청와대다. 대통령 집무실이 현 청와대 자리를 벗어나는 것은 1948년 건국 이래 74년 만에 처음이다. 당연히 새 정부의 아이콘으로 삼고 싶은 재료다. ‘구중궁궐(九重宮闕)’ 속 제왕적 권력의 불통 상징이 된 청와대에서 나와 국민 속 소통을 지향하는 용산 시대 취지에 맞는 참신한 대통령 집무실 명칭에도 욕심이 날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용산 이전 예비비 일부 승인을 지시한 날,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기다렸다는 듯이 국방부 청사 건물에 마련될 새 대통령실 명칭을 이달 중 국민 참여 방식으로 공모할 계획이라는 보도자료를 낸 것만 봐도 그렇다.

인수위에서는 백악관(미국), 다우닝가 10번지(영국), 엘리제궁(프랑스) 같은 주요국의 최고 지도자 관저 이름을 연상할 것이다. 그러나 어느 곳을 봐도 공모를 통해 인위적으로 지어진 이름은 없다. 모두 오랜 시간에 걸쳐 나름의 스토리를 갖고 있다. 백악관은 건립 당시 구멍이 많은 사암 외벽을 습기와 균열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백색 석회 도료를 바른 것이 유래다. 영국과의 독립전쟁에서 화재 피해를 본 뒤 재단장할 때도 흰색을 유지했으며, 26대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 때 대통령이 서명하는 모든 공식 문서에 ‘집무실(Executive Mansion)’ 대신 백악관(The White House)으로 쓰도록 하면서 오늘날의 이름으로 굳어졌다. 다우닝가 10번지는 1700년대 국왕이 첫 총리 관저로 하사한 뒤 300년 가까이 지난 지금은 영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지번 중 하나가 됐다. 18세기 초반 건립된 엘리제(Elysees)궁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거리라는 파리 샹젤리제(Champs-Elysees·‘엘리제의 들판’이란 뜻) 바로 옆에 있으며, 이름 또한 거리명에서 따왔다.

용산 국방부 청사는 외관상 이렇다 할 특징이 없다. 청와대라는 이름은 그나마 지붕 색깔에서라도 착안했지만, 국방부 청사는 10층짜리 전형적인 관공서 건물이다. 용산이란 지명에 스토리가 있다고 하더라도 현 정부와의 연결 고리를 찾기가 쉽지는 않아 보인다. 자칫 중국 시진핑 주석의 집무실인 ‘근정전(勤政殿)’처럼 작위적인 이름이 나오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없지 않다. 청나라 강희제가 지어줬다는 근정전은 그저 ‘열심히 정사를 보는 방’이라는 무미건조한 이름이다. 선진국들이라고 모두 미국·영국·프랑스처럼 개성 있는 집무실 이름을 가진 것 또한 아니다. 독일의 분데스칸츨러암트(Bundeskanzleramt)는 ‘연방총리청’이고 일본 총리 집무실은 ‘관저(官邸)’, 공관은 ‘공저(公邸)’로 부른다. 그래도 세계 3, 4위 경제 대국들 아닌가.

‘새 술은 새 부대에’의 의도를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다. 김영삼 전 대통령부터 문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전현직 대통령이 저마다 ‘청와대 탈출’을 공약으로 내걸고 추진했으나, 결국 윤 당선인에게 와서야 성사됐으니 더욱 그럴 만하다. 그러나 인위적 이름이 얼마나 국민의 공감을 살지는 의문이다.

노무현 정부 때 여민관(與民官)으로 지은 청와대 비서동 건물 이름은 이명박 정부 때는 위민관(爲民官)으로 바뀌었다가, 문재인 정부 들어 다시 여민관으로 돌아왔다. ‘국민과 함께 한다’는 여민관이면 어떻고 ‘국민을 위한다’는 위민관이면 어떤가. 국민은 아무 관심도 없는 건물에도 진영 논리를 들이대는 모습에 ‘뭣이 중헌디’ 하는 짜증만 낼 뿐이다.

대통령 집무실 명칭에 그다지 집착할 일은 아니다. 많은 사람이 공감하는 좋은 이름이 나오면 다행이겠지만, 그 역시도 정권이 바뀌면 진영 논리로 계속 살아남을지 미지수다. 마땅한 대안이 없으면 ‘용산 대통령 집무실’ 식으로 그냥 쉽게 부르는 것이 낫다. 그보다는 새 집무실에서 국가 난제들을 풀어갈 새 정책 아이디어의 영감을 얻는 게 중요한 일이다. 좋은 이름은 좋은 정치에 대한 선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