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우리나라의 나이 계산법을 '만 나이'를 기준으로 통일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지난 11일 발표했습니다. 법적·사회적 나이 계산법이 통일되지 않아 국민들이 사회복지 등 행정서비스를 받거나 각종 계약을 체결 또는 해석할 때 혼선·분쟁이 지속되고 있다는 판단에 따른 조치입니다. 인수위 발표 이후 여론은 나쁘지 않은 것 같습니다. 하지만 노사문제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만 나이'로 통일이 되면 법정 분쟁은 줄어들겠지만 개별 사업장에서 단체협약 해석과 변경을 놓고 때아닌 혼란이 벌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습니다.

인수위 설명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현재 △세는 나이(한국식 나이) △만 나이(국제통용기준) △연 나이(현재연도-출생연도) 등 계산법을 혼용하고 있습니다. 즉 태어난 날부터 1세가 되고 다음 해 1월 1일에 한 살을 더 먹어 2세가 되는 게 한국식 나이입니다. 출생일 기준(0세 시작)으로 1년이 경과될 때마다 한 살씩 늘어나는 게 '만 나이', 특정한 나이가 되는 해의 1월1일부터 해당 나이를 취급하는 게 '연 나이'입니다.

인수위는 '만 나이 통일'이 되면 각종 사회·경제적 비용을 없애고, 국민 생활의 혼란과 불편도 줄어들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 인수위는 우선 민법 및 행정 기본법에 '만 나이' 계산법 및 표기 규정을 마련해 법령상 민사·행정 분야의 '만 나이' 사용 원칙을 확립한 다음 현재 '연 나이' 계산법을 채택하고 있는 개별법의 정비도 추진한다는 계획입니다. 민법에 '만 나이' 적용 원칙이나 표기 방법을 명문화하는 방안, 행정기본법에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가 각종 정책을 수립하거나 공문서를 작성할 때 '만 나이'만을 사용하고 국민에게 '만 나이' 계산법을 적극적으로 권장·홍보할 책무를 규정하는 방안도 추진키로 했습니다.

인수위의 '만 나이' 추진 방안을 놓고는 우스개소리도 들립니다. 그동안 한국식 나이로 형, 동생하며 지냈던 지인들 간에 '족보 정리'를 새로 하느라 한바탕 난리가 날 것이라는 겁니다. 지금까지 한 살 위의 상대에게 형이라고 불러왔는데 '만 나이'를 적용하면 동갑내기 친구가 되는 상황이 벌어질 것이라는 것이지요.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기업 노사관계에도 영향이 미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옵니다. 인수위는 현행 나이 계산법과 관련해 대표적인 사회·경제적 비용 발생 사례로 '임금피크제 적용연령 해석 관련 법적분쟁'을 들었습니다. 이는 지난달 대법원 판결로, 노사 단체협약 상 '56세'의 의미에 대해 하급심은 '만 56세'라고 해석하였으나 대법원은 '만 55세'로 판단한 것입니다. 이 사건의 경우, 대법원 판결로 마무리되었지만 향후 단체협약 협상장에서는 나이의 표기를 두고 때아닌 줄다리기가 벌어질 것이라는 전망입니다.

2016년 이후 정년 60세가 의무화되면서 상당수의 사업장에서는 임금피크제를 도입했습니다. 정부는 정년 60세 시행과 함께 중장년의 노동시장 이탈을 막기 위해 임금피크제 지원금도 지급해왔습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개별 단체협약에는 임금피크제를 적용할 연령이 표기됐고, 보직에 따라 그 적용 시기를 따로 명기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하지만 이번 대법원 판결의 사례처럼 그 적용 시기를 정확히 '만 00세'라고 표기하지 않은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새 정부의 '만 나이 통일' 방안이 현실화할 경우, 노조는 당연히 현행 연령 규정에 '만' 표기만 추가할 것를 주장할 것이고 사측은 대법원 판결을 들어 맞서며 다툼이 발생할 가능성은 미루어 짐작하기 어렵지 않습니다. 인수위의 '만 나이 통일' 발표를 두고 개별 사업장에 때아닌 단협 개정 바람이 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배경입니다.

백승현 기자 arg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