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실트론 웨이퍼 제품 [사진=SK실트론 제공]
SK실트론 웨이퍼 제품 [사진=SK실트론 제공]
고부가 반도체에 쓰이기 어렵다는 이유로 외면받던 8인치(200㎜) 웨이퍼(반도체 소재용 원판)가 최근 '귀하신 몸' 대접을 받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반도체 쇼티지(공급 부족)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여전히 수요가 견조하다는 평가다.

12일 국제반도체장비재료협회(SEMI)는 최신 보고서를 통해 전 세계 200㎜ 크기의 웨이퍼를 재료로 반도체를 만드는 공장의 월 생산량이 오는 2024년 말 690만장까지 증가할 것으로 내다봤다. 이는 2020년 초 대비 21%(약 120만장) 급증한 것이다.

앞서 삼성전자가 2000년대 초반 세계 반도체 업계 최초로 300㎜(12인치) 웨이퍼 시대를 연 이후, 200㎜ 공정은 곧 사라질 공정으로 평가돼 왔다. 하지만 200㎜ 공정은 도리어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200㎜ 공정은 아직까지 첨단 공정 대비 다품종 소량 생산에 더 유리하다.

반도체 업계에서 웨이퍼 크기는 생산성과 직결되는 문제다. 웨이퍼 크기가 클수록 많은 칩을 생산할 수 있어 12인치에 비해 구형 취급을 받던 8인치는 최근 반도체 공급난으로 몸값이 다시 올랐다.

8인치 웨이퍼가 주로 사용되는 디스플레이 구동칩(DDI)이나 차량용 반도체 등 공급난이 이어지면서 반도체 제조사도 생산 능력을 확대했다. 이에 발맞춰 세계 세계 1·2위 웨이퍼 업체 일본 신에쓰화학과 섬코, 대만 FST도 각각 최대 30%가량 가격을 올렸다.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장기화로 언택트(비대면) 흐름이 대세가 되면서 게이밍족이 늘어난 점도 8인치 웨이퍼 수요를 증가시켰다. DDI와 이미지센서, 파워반도체(PMIC)등 게이밍 노트북·PC에 주로 사용되는 부품은 8인치 웨이퍼에서도 생산이 가능하다.
[자료=국제반도체장비재료협회(SEMI)]
[자료=국제반도체장비재료협회(SEMI)]
특히 자동차 업체 등에서 저부가가치 제품 위주로 주문이 밀려들고 있다. 200㎜ 생산량의 50% 이상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가 차지하고 있다. 이어 아날로그 분야가 19%, 디스크리트 및 전력 반도체가 12% 순이다. 지역적으로는 중국이 올해 21%의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고 일본 16%, 대만과 유럽·중동지역이 각각 15%를 가질 것으로 예상된다.

삼성전자가 첨단 장비에 대한 투자를 집중하고 있는 것과 달리, 일부 반도체 기업들의 8인치 분야 시설투자도 잇따르고 있다. SEMI에 따르면 업체들은 현재 전 세계가 겪고 있는 반도체 부족 사태를 극복하기 위해 작년 200㎜ 팹 장비에 대해 53억 달러(한화 약 6조5000억원)의 투자를 진행했다. 반도체 장비를 한두 해 쓰려고 구입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고려하면 은퇴 시기는 앞으로 더 늦춰질 전망이다.

업계는 올해도 200㎜ 장비에 49억 달러(약 6조원) 규모의 투자를 이어간다. 아짓 마노차 SEMI CEO는 "5G, 자율주행, 사물인터넷(IoT), 아날로그 및 전력 반도체 등에 대한 수요가 계속 증가하면서 앞으로 5년 동안 약 25개의 새로운 200㎜ 생산 라인이 추가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200㎜ 반도체 장비에 대한 투자는 2023년에도 30억 달러(약 3조7000억원)를 넘어설 전망이다. 분야별로는 파운드리가 전체 투자액의 54%, 디스크리트 및 전력 반도체가 20%, 아날로그 반도체가 19%의 차지할 것으로 전망된다.

강경주 한경닷컴 기자 qurasoh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