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원의 i쓰나미 전망] 물가안정보다 중요한 건 '가계 구매력 회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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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소비자물가 4.1% 올라 10년 만에 최고
서민경제 위축…삶의 질 21년 전으로 후퇴
유동성보다 원자재 가격 급등이 핵심원인
해외서 시작된 인플레, 정부가 어떻게 잡겠나
韓銀 기준금리 인상 필요하지만 효과 회의적
'물가 잡겠다' 강박관념 벗고 소비위축 막아야
서민경제 위축…삶의 질 21년 전으로 후퇴
유동성보다 원자재 가격 급등이 핵심원인
해외서 시작된 인플레, 정부가 어떻게 잡겠나
韓銀 기준금리 인상 필요하지만 효과 회의적
'물가 잡겠다' 강박관념 벗고 소비위축 막아야
소비자물가상승률이 10년 만에 4%대로 올라섰다. 이러한 고물가의 원인은 대부분 수입물가, 그중에서도 원자재 가격 급등 때문이다. 국내 요인으로 과잉 유동성이나 시장 수요 확대가 언급되지만 그 실상은 불분명하다. 해외 요인이 주된 원인이고 상당 기간 지속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효과적인 정책적 대응이 어려워 고물가 현상은 장기화할 것으로 보인다. 그로 인해 인플레이션이 심화되고 가계의 실질구매력이 떨어져 이미 팬데믹으로 고통받는 서민 경제를 더욱 힘들게 할 것이다. 따라서 쉽지 않지만 정부는 시장의 생각을 읽어내고 경제 내 물가 충격에 취약한 부문을 찾아내려는 노력을 지속해야 한다.
국내 물가 급등의 가장 큰 원인은 수입물가 상승이다. 밖에서 들여오는 원자재 가격이 크게 높아졌다는 얘기다. 한 단계 더 들어가 원자재 가격 상승이 가팔라진 이유는 코로나 팬데믹이다. 현재 원자재 시장의 가격 상승은 수요에 비해 공급이 부족해 벌어지고 있다. 여전히 전염병 위험이 지속되고 있지만 시장 수요는 예상보다 빨리 회복됐고, 반면 기업은 시장 수요 변화를 예측하는 데 실패했다. 의학적 관점에서 팬데믹 자체에 대한 비관적 시각(전염병이 상당 기간 없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예측)은 옳았지만, 경제적 관점에서 소비자들이 팬데믹에 어떻게 적응할 것이라는 예측에서 기업들은 과도한 비관론에 빠졌다. 그들이 예상한 것보다 시장 수요가 빨리 회복됐다. 현재 팬데믹은 팬데믹대로, 시장은 시장대로 각자의 길을 가고 있다.
여기에 인플레이션을 가중시킨 요인은 공급망의 혼란이다. 공급망 혼란은 크게 세 가지 형태로 나타났다. 우선 팬데믹으로 노동력 투입에 문제가 발생한 사례다. 팬데믹 초기의 중국산 자동차 부품 조달 문제와 작년 3분기 동남아시아 지역으로부터의 중간재 수입 차질 그리고 최근까지 지속되고 있는 미국의 화물 하역 및 운송 대란이 그것이다. 다음으로 미·중 갈등에 따른 혼란을 들 수 있다. 호주가 미국의 대중국 견제에 동참하면서 중국의 호주산 원자재 수입이 축소되고 이것이 한국이 중국으로부터 들여오던 요소수 대란으로 이어진 게 대표적인 사례다. 마지막으로 최근 우크라이나 전쟁과 서방 세계의 러시아 제재 등으로 에너지, 곡물, 광물 등 기초 원자재 가격이 급등한 사례다.
굳이 대외 요인으로 분류하자면 최근 환율 시장에서 원화가 약세를 보이는 점도 물가 상승 압력을 높이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지난 2월 수입물가상승률은 전년 동월 대비 29.4%를 기록했다. 그런데 달러화 기준으로는 20.1%(계약 통화 기준 21.5%)에 불과하다. 그 차이는 만약 우리나라 통화가 달러라면 수입물가상승률은 20.1%로 지금보다 훨씬 낮아질 것이라는 의미다. 즉 원화가 약세가 돼 가만히 앉아 비싸게 사고 있다는 의미다. 이는 한국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미국 중앙은행(Fed)의 금리 인상 시계가 빨라지면서 나타난 달러화 강세로 대부분 국가가 경험하는 공통된 현상이다.
물가란 상품과 화폐의 교환 비율이다. 시중에 돈이 많이 풀리게 되면 모든 시장에서 가격은 상승 압력을 받는다. 그래서 국내의 풍부한 유동성이 인플레이션 원인으로 지목받고 있다. 그러나 사실과 가능성은 구분돼야 한다. 돈이 풀린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그 돈이 너무 많이 풀려서 과잉유동성으로 강제 개명되고 그것이 국내 물가를 끌어올린 요인으로 단정하는 것은 가능성이다.
우선 ‘많이’ 풀렸다는 기준이 모호하다. 경제 규모가 매해 커지듯이 유동성도 매년 증가한다. 더군다나 증가하는 속도가 적절한지는 기준이 없다. 물론 최근의 유동성 증가 속도가 높은 것은 사실이지만 2006~2008년 3년 연속 10%대로 증가한 적도 있다.
돈이 많이 풀려 있다는 것을 인정하더라도 그것이 인플레이션을 유발하는 원인으로 단정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어떤 이유로 돈이 잘 돌지 않는다면, 즉 화폐유통 속도나 신용창출 비율이 높지 않다면 인플레이션의 원인이 될 수 없다. 그러한 가능성은 평균소비성향의 하락에 따른 저축률 증가, 기업 투자 위축, 자산시장으로의 유동성 쏠림 등 최근 이례적인 경제 현상에서 엿볼 수 있다. 정리하자면 지금까지 인플레이션에 유동성의 책임이 있는지 확실하지 않다는 점이다. 다만 앞으로 실물경제가 회복되는 과정에서 영향을 미칠 우려는 있다. 그 정도에서 그쳐야 한다.
다른 요인으로 시장 수요가 인플레이션을 유발할 가능성도 있다. 가장 정형화된 인플레이션의 모습은 수요가 급증하면서 물가가 오르는 경우다. 내수시장이 코로나 충격으로부터 회복 국면에 있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그 회복세가 물가를 자극할 정도인지는 의문이다. 지금 시장 수요 요인에 의해 가격이 갑자기 뛰는 품목은 별로 없다. 소비자물가지수에서 일시적 충격에 의한 물가변동분을 제거하고 시장 수요 요인에 의한 물가상승률을 측정한 핵심물가(농산물 및 석유류 제외지수 물가) 상승률을 보면 높아지는 추세이기는 하다. 다만, 3월 핵심물가상승률은 전년 동월 대비 3.2%로 소비자물가상승률(4.1%)보다 한참 밑에 있다. 아직까지는 수요 회복이 인플레이션의 주된 원인은 아니다.
고물가가 가져오는 또 하나의 폐해로 정부 정책에 대한 신뢰성을 담보하기 어렵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지금처럼 고물가가 장기간 이어지면 앞으로 물가가 더 오를 것이라는 생각이 고정된다. 즉, 인플레가 인플레를 부른다. 정부가 어떤 물가 대책을 내놔도 약발이 먹히지 않는다. 예를 들어 ‘물가 안정 대책’이라는 경제 정책의 출발점과 ‘물가 안정’이라는 정책의 도착점 사이엔 서울 지하철 노선도만큼이나 복잡한 경로가 존재한다. 잘못된 경로를 타면 언제 목적지에 도착할지 기약이 없다. 최단 시간 그리고 최대 효과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정책에 대한 민간의 신뢰가 중요하다. 시장에 기대인플레이션이 팽배하고 정부의 대책이 별 효과가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변하지 않는다면 정책은 정책에서 끝난다. 그래서 지금 인플레이션율을 낮추는 것보다 인플레이션 심리를 잡는 것이 더 중요할 수 있다.
향후 국내 물가가 안정될지 여부는 대부분 해외 여건에 달려 있다. 구체적으로는 팬데믹과 우크라이나 사태의 전개 과정이다. 이 같은 해외 여건에 드라마틱한 변화가 없고 현재 추세가 유지된다는 전제라면, 올해 물가 안정을 기대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극단적으로 2021년의 상승 속도를 적용하면 2022년 연간 소비자물가상승률은 4%를 훨씬 넘어선다. 3월 소비자물가 수준이 더 오르지 않는다고 할 경우에도 3.3%에 달한다. 예측건대 올해 소비자물가상승률은 3%대 후반 또는 4%대 초반으로 2021년(2.5%)보다 훨씬 높아질 가능성이 크다. 기간별로는 하반기에 들어 물가상승률은 다소 낮아질 것으로 보인다. 작년 하반기 물가 급등세가 매우 높았고 그래서 역(逆)기저효과의 영향을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물가상승률이 낮아진다는 것이지 물가가 하락한다는 것은 아니다. 즉 올해 말, 지금보다 더 비싼 가격에 물건을 사야만 한다.
눈이 아프면 눈에 안약을 넣어야지 소염진통제를 바르면 안 된다.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서는 인플레이션을 일으킨 핵심 원인에 대한 처방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수입물가를 안정시키는 대책이 주가 돼야 한다. 그렇지만 현실적으로 수입하는 원자재 가격을 어떻게 낮출 수 있겠는가? 그래서 정부의 물가 안정 대책도 겉돌기 쉽다. 유류세 인하, 분명히 필요하다. 그런데 그것만 인하해서 소비자물가를 얼마나 하락시킬 수 있을까? 석유류 제품은 소비자물가지수를 구성하는 수백 개의 품목 중 극히 일부일 뿐이다. 단순히 석유 가격만 오른 것이 아니라 모든 원자재 가격이 다 폭등해 있다. 어떤 원자재는 석유 가격 상승 폭을 훨씬 뛰어넘는다. 모든 수입 원자재에 붙는 세금을 다 크게 내려주지 않는 이상 물가 안정 효과는 없다.
따라서 그때와 같은 방법이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 회의적이다. 너무 단순하게 세상을 해석하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 거시적으로 금리 인상은 어느 정도 필요하다. 통화 유동성이 인플레이션의 주된 원인은 아닐지라도 언젠가는 물가 상승 압력으로 작용할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그것은 중앙은행이 시대착오적이고 경직적인 ‘늙은 생각’이 아닌, 현실에 바탕을 둔 유연한 ‘젊은 생각’을 가질 때 타당할 수 있다. 상황에 맞게 금리 인상 속도의 완급을 조절해야 한다. 재정정책은 물가 안정보다는 실물경기 활력 진작에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다. 다만 하반기 예상되는 대폭 증액한 추가경정예산 편성은 생각해 볼 일이다. 자칫 금리를 올리면서 재정을 푸는 것은 존 코크런 교수가 언급했듯이 ‘정부가 액셀과 브레이크를 동시에 밟는 어리석은 짓을 한다’고 민간이 받아들일 수 있다(IMF, 월스트리트저널, 2022).
끝으로 차라리 정책 목표를 ‘물가 안정’에서 ‘서민생활 안정’으로 집중하고 그에 맞는 대책을 세우는 것이 현실적이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물가가 100% 뛰어도 구매력이 보존돼 실제 소비가 위축되지 않는다면 인플레이션은 문제가 안 된다. 물가 안정이라는 강박관념에서 조금만 벗어날 수 있다면 생각의 폭이 넓어지고 다양한 아이디어가 나올 수 있다.
잘만 하면 정책이 서민생활 속에 녹아들어 가계의 구매력과 소비를 보전하는 쪽으로 옮겨갈 수도 있다. 정책 입안자가 트라이아스기 유물인 IS-LM 모형을 가지고 자신의 주장을 합리화하는 데 시간을 쏟기보다 현장으로 뛰어들어가 하루하루가 전쟁인 서민들의 생각을 읽어내는 것이 더 중요할 수 있다.
■ 주원은…
주원은 고려대에서 경제학 학사, 석사,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이후 현대경제연구원에서 20년 동안 재직 중이다. 경제연구실장으로 경제 연구를 총괄하고 있다. 연구원에서 250여 편의 연구보고서를 집필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예타대상선정(기술성평가) 총괄자문위원회 위원, 대통령직속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자문위원 등을 지냈다. 산업통상자원부 자체평가위원회 무역투자분과 위원, 한국은행 통화정책자문회의 위원, GVC 재편대응 특별위원회 위원, 외교부 경제안보외교 자문위원회 위원 등 주요 정부 위원회 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국내 물가 급등 가장 큰 원인은 ‘수입물가 상승’
물가가 드디어 4%대를 찍었다. 3월 소비자물가상승률은 전년 동월 대비 4.1%로 10년 만에 4%를 넘어섰다. 이는 약 450개 품목의 평균적인 물가상승률이다. 전 품목에서 가장 높은 상승률을 기록한 것은 기름값이 아니다. 열무가 58.5% 올랐다. 그다음으로 등유(47.1%), 경유(37.9%) 순이다. 처음에는 유가가 문제가 됐지만 점차 전방위적으로 인플레이션이 확대되고 있다.국내 물가 급등의 가장 큰 원인은 수입물가 상승이다. 밖에서 들여오는 원자재 가격이 크게 높아졌다는 얘기다. 한 단계 더 들어가 원자재 가격 상승이 가팔라진 이유는 코로나 팬데믹이다. 현재 원자재 시장의 가격 상승은 수요에 비해 공급이 부족해 벌어지고 있다. 여전히 전염병 위험이 지속되고 있지만 시장 수요는 예상보다 빨리 회복됐고, 반면 기업은 시장 수요 변화를 예측하는 데 실패했다. 의학적 관점에서 팬데믹 자체에 대한 비관적 시각(전염병이 상당 기간 없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예측)은 옳았지만, 경제적 관점에서 소비자들이 팬데믹에 어떻게 적응할 것이라는 예측에서 기업들은 과도한 비관론에 빠졌다. 그들이 예상한 것보다 시장 수요가 빨리 회복됐다. 현재 팬데믹은 팬데믹대로, 시장은 시장대로 각자의 길을 가고 있다.
여기에 인플레이션을 가중시킨 요인은 공급망의 혼란이다. 공급망 혼란은 크게 세 가지 형태로 나타났다. 우선 팬데믹으로 노동력 투입에 문제가 발생한 사례다. 팬데믹 초기의 중국산 자동차 부품 조달 문제와 작년 3분기 동남아시아 지역으로부터의 중간재 수입 차질 그리고 최근까지 지속되고 있는 미국의 화물 하역 및 운송 대란이 그것이다. 다음으로 미·중 갈등에 따른 혼란을 들 수 있다. 호주가 미국의 대중국 견제에 동참하면서 중국의 호주산 원자재 수입이 축소되고 이것이 한국이 중국으로부터 들여오던 요소수 대란으로 이어진 게 대표적인 사례다. 마지막으로 최근 우크라이나 전쟁과 서방 세계의 러시아 제재 등으로 에너지, 곡물, 광물 등 기초 원자재 가격이 급등한 사례다.
굳이 대외 요인으로 분류하자면 최근 환율 시장에서 원화가 약세를 보이는 점도 물가 상승 압력을 높이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지난 2월 수입물가상승률은 전년 동월 대비 29.4%를 기록했다. 그런데 달러화 기준으로는 20.1%(계약 통화 기준 21.5%)에 불과하다. 그 차이는 만약 우리나라 통화가 달러라면 수입물가상승률은 20.1%로 지금보다 훨씬 낮아질 것이라는 의미다. 즉 원화가 약세가 돼 가만히 앉아 비싸게 사고 있다는 의미다. 이는 한국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미국 중앙은행(Fed)의 금리 인상 시계가 빨라지면서 나타난 달러화 강세로 대부분 국가가 경험하는 공통된 현상이다.
국내에선 인플레이션 원인을 찾을 수 없다
국내에서는 인플레이션의 주된 요인으로 과잉 유동성(통화량)이 지목받고 있다. 실제 통화량 지표 중 하나인 M2(광의통화, 해당 기간 말일자의 잔액) 증가율 기준으로 보면 코로나 위기 이전인 2019년에는 전년 대비 7.9%에 불과했으나 2021년에는 12.9%에 달했다.물가란 상품과 화폐의 교환 비율이다. 시중에 돈이 많이 풀리게 되면 모든 시장에서 가격은 상승 압력을 받는다. 그래서 국내의 풍부한 유동성이 인플레이션 원인으로 지목받고 있다. 그러나 사실과 가능성은 구분돼야 한다. 돈이 풀린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그 돈이 너무 많이 풀려서 과잉유동성으로 강제 개명되고 그것이 국내 물가를 끌어올린 요인으로 단정하는 것은 가능성이다.
우선 ‘많이’ 풀렸다는 기준이 모호하다. 경제 규모가 매해 커지듯이 유동성도 매년 증가한다. 더군다나 증가하는 속도가 적절한지는 기준이 없다. 물론 최근의 유동성 증가 속도가 높은 것은 사실이지만 2006~2008년 3년 연속 10%대로 증가한 적도 있다.
돈이 많이 풀려 있다는 것을 인정하더라도 그것이 인플레이션을 유발하는 원인으로 단정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어떤 이유로 돈이 잘 돌지 않는다면, 즉 화폐유통 속도나 신용창출 비율이 높지 않다면 인플레이션의 원인이 될 수 없다. 그러한 가능성은 평균소비성향의 하락에 따른 저축률 증가, 기업 투자 위축, 자산시장으로의 유동성 쏠림 등 최근 이례적인 경제 현상에서 엿볼 수 있다. 정리하자면 지금까지 인플레이션에 유동성의 책임이 있는지 확실하지 않다는 점이다. 다만 앞으로 실물경제가 회복되는 과정에서 영향을 미칠 우려는 있다. 그 정도에서 그쳐야 한다.
다른 요인으로 시장 수요가 인플레이션을 유발할 가능성도 있다. 가장 정형화된 인플레이션의 모습은 수요가 급증하면서 물가가 오르는 경우다. 내수시장이 코로나 충격으로부터 회복 국면에 있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그 회복세가 물가를 자극할 정도인지는 의문이다. 지금 시장 수요 요인에 의해 가격이 갑자기 뛰는 품목은 별로 없다. 소비자물가지수에서 일시적 충격에 의한 물가변동분을 제거하고 시장 수요 요인에 의한 물가상승률을 측정한 핵심물가(농산물 및 석유류 제외지수 물가) 상승률을 보면 높아지는 추세이기는 하다. 다만, 3월 핵심물가상승률은 전년 동월 대비 3.2%로 소비자물가상승률(4.1%)보다 한참 밑에 있다. 아직까지는 수요 회복이 인플레이션의 주된 원인은 아니다.
엥겔계수 12.86% … 21년 만에 최고치
시대와 상황에 따라 인플레이션이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다양한 양상으로 나타난다. 지금 가장 우려되는 폐해는 서민 경제의 위축이다. 소위 ‘장바구니 물가’라고 불리는 생활물가상승률은 3월 전년 동월 대비 5.0%에 달한다. 이 말은 한 가계가 1년 전과 동일한 규모와 품질의 소비를 하기 위해서는 소득이 5% 늘어야 가능하다는 의미다. 그렇지 않다면 씀씀이를 줄여야 한다. 생존에 필수적인 소비는 유지하면서 불필요한 소비를 줄이는 것이다. 그 현상을 측정할 수 있는 대표적인 예가 엥겔계수(가계의 총소비에서 식료품·비주류음료 소비가 차지하는 비중)다. 현대경제연구원(2022년) 분석에 따르면 2021년 엥겔계수는 12.86%로 2000년(13.29%) 이후 21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국민의 삶의 질이 21년 전으로 후퇴했다는 의미다. 여전히 팬데믹 영향에서 벗어나지 못한 가운데 ‘월급 빼고 다 오르는’ 상황은 서민들의 자괴감을 증폭시킨다.고물가가 가져오는 또 하나의 폐해로 정부 정책에 대한 신뢰성을 담보하기 어렵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지금처럼 고물가가 장기간 이어지면 앞으로 물가가 더 오를 것이라는 생각이 고정된다. 즉, 인플레가 인플레를 부른다. 정부가 어떤 물가 대책을 내놔도 약발이 먹히지 않는다. 예를 들어 ‘물가 안정 대책’이라는 경제 정책의 출발점과 ‘물가 안정’이라는 정책의 도착점 사이엔 서울 지하철 노선도만큼이나 복잡한 경로가 존재한다. 잘못된 경로를 타면 언제 목적지에 도착할지 기약이 없다. 최단 시간 그리고 최대 효과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정책에 대한 민간의 신뢰가 중요하다. 시장에 기대인플레이션이 팽배하고 정부의 대책이 별 효과가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변하지 않는다면 정책은 정책에서 끝난다. 그래서 지금 인플레이션율을 낮추는 것보다 인플레이션 심리를 잡는 것이 더 중요할 수 있다.
향후 국내 물가가 안정될지 여부는 대부분 해외 여건에 달려 있다. 구체적으로는 팬데믹과 우크라이나 사태의 전개 과정이다. 이 같은 해외 여건에 드라마틱한 변화가 없고 현재 추세가 유지된다는 전제라면, 올해 물가 안정을 기대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극단적으로 2021년의 상승 속도를 적용하면 2022년 연간 소비자물가상승률은 4%를 훨씬 넘어선다. 3월 소비자물가 수준이 더 오르지 않는다고 할 경우에도 3.3%에 달한다. 예측건대 올해 소비자물가상승률은 3%대 후반 또는 4%대 초반으로 2021년(2.5%)보다 훨씬 높아질 가능성이 크다. 기간별로는 하반기에 들어 물가상승률은 다소 낮아질 것으로 보인다. 작년 하반기 물가 급등세가 매우 높았고 그래서 역(逆)기저효과의 영향을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물가상승률이 낮아진다는 것이지 물가가 하락한다는 것은 아니다. 즉 올해 말, 지금보다 더 비싼 가격에 물건을 사야만 한다.
눈이 아프면 눈에 안약을 넣어야지 소염진통제를 바르면 안 된다.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서는 인플레이션을 일으킨 핵심 원인에 대한 처방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수입물가를 안정시키는 대책이 주가 돼야 한다. 그렇지만 현실적으로 수입하는 원자재 가격을 어떻게 낮출 수 있겠는가? 그래서 정부의 물가 안정 대책도 겉돌기 쉽다. 유류세 인하, 분명히 필요하다. 그런데 그것만 인하해서 소비자물가를 얼마나 하락시킬 수 있을까? 석유류 제품은 소비자물가지수를 구성하는 수백 개의 품목 중 극히 일부일 뿐이다. 단순히 석유 가격만 오른 것이 아니라 모든 원자재 가격이 다 폭등해 있다. 어떤 원자재는 석유 가격 상승 폭을 훨씬 뛰어넘는다. 모든 수입 원자재에 붙는 세금을 다 크게 내려주지 않는 이상 물가 안정 효과는 없다.
정책목표 ‘물가 안정’에서 ‘서민생활 안정’으로
한국은행의 기준금리를 인상하는 것도 고민이다. Fed가 금리 인상을 시작했기 때문에 우리도 따라가야겠지만, 과연 금리 인상이 물가 안정에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다. 과소비나 버블에 의한 인플레이션이라면 금리 인상이 합당하고 효과적인 처방이다. 금리 인상을 통해 물가를 잡을 수 있다는 생각은 과거 1970~1980년대 오일쇼크로 인플레이션이 극심했을 당시 빠르게 금리를 인상해 물가를 안정시켰던 경험에서 나오는 것 같다. 그렇지만 그 경험이라는 것이 ‘늙은 생각’일 수 있다. 그때 금리 인상이 물가 안정에 도움이 된 부분도 있지만, 국제 유가가 안정화되면서 자연스레 인플레이션이 해소된 측면도 있다. 또한, 당시 세계 경제를 움직이는 힘 그리고 각국 정부 간 정책의 연관성이 반세기가 지난 지금과 같을 수 없다.따라서 그때와 같은 방법이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 회의적이다. 너무 단순하게 세상을 해석하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 거시적으로 금리 인상은 어느 정도 필요하다. 통화 유동성이 인플레이션의 주된 원인은 아닐지라도 언젠가는 물가 상승 압력으로 작용할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그것은 중앙은행이 시대착오적이고 경직적인 ‘늙은 생각’이 아닌, 현실에 바탕을 둔 유연한 ‘젊은 생각’을 가질 때 타당할 수 있다. 상황에 맞게 금리 인상 속도의 완급을 조절해야 한다. 재정정책은 물가 안정보다는 실물경기 활력 진작에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다. 다만 하반기 예상되는 대폭 증액한 추가경정예산 편성은 생각해 볼 일이다. 자칫 금리를 올리면서 재정을 푸는 것은 존 코크런 교수가 언급했듯이 ‘정부가 액셀과 브레이크를 동시에 밟는 어리석은 짓을 한다’고 민간이 받아들일 수 있다(IMF, 월스트리트저널, 2022).
끝으로 차라리 정책 목표를 ‘물가 안정’에서 ‘서민생활 안정’으로 집중하고 그에 맞는 대책을 세우는 것이 현실적이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물가가 100% 뛰어도 구매력이 보존돼 실제 소비가 위축되지 않는다면 인플레이션은 문제가 안 된다. 물가 안정이라는 강박관념에서 조금만 벗어날 수 있다면 생각의 폭이 넓어지고 다양한 아이디어가 나올 수 있다.
잘만 하면 정책이 서민생활 속에 녹아들어 가계의 구매력과 소비를 보전하는 쪽으로 옮겨갈 수도 있다. 정책 입안자가 트라이아스기 유물인 IS-LM 모형을 가지고 자신의 주장을 합리화하는 데 시간을 쏟기보다 현장으로 뛰어들어가 하루하루가 전쟁인 서민들의 생각을 읽어내는 것이 더 중요할 수 있다.
■ 주원은…
주원은 고려대에서 경제학 학사, 석사,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이후 현대경제연구원에서 20년 동안 재직 중이다. 경제연구실장으로 경제 연구를 총괄하고 있다. 연구원에서 250여 편의 연구보고서를 집필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예타대상선정(기술성평가) 총괄자문위원회 위원, 대통령직속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자문위원 등을 지냈다. 산업통상자원부 자체평가위원회 무역투자분과 위원, 한국은행 통화정책자문회의 위원, GVC 재편대응 특별위원회 위원, 외교부 경제안보외교 자문위원회 위원 등 주요 정부 위원회 위원으로 활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