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정부 출범이 한 달도 채 남지 않았다. 경영계는 지난달 대선에서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가 당선된 이후 연일 노동개혁을 외치고 있다. “지난 5년간 노동계로 기울어졌던, 아니 기울어지다 못해 뒤집어졌던 노사관계 균형을 바로잡아 달라”는 주문이다. 윤 당선인도 경제단체와의 자리를 마련하는 등 적극 호응하는 모양새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등 노동계의 지속적인 대화 요구에는 일정 거리를 유지하는 것도 새 정부의 노동개혁 의지를 가늠케 하는 대목이다.

문재인 정부는 2017년 5월 집권 이후 공개적으로 ‘친노동’을 표방하며 경영계의 우려와 호소에는 아랑곳없이 정책을 집행하고, 여당은 거침없는 친노동 입법을 강행했다.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을 통한 소득주도성장, 노동조합의 단결권을 강화해주겠다며 밀어붙인 국제노동기구(ILO) 핵심 협약 비준과 노동조합법 개정,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 정책 등이 대표적이다. 정부뿐만 아니다. 현 정부 출범 이후 친여 성향이 대거 포진한 법원에서는 노동 친화적인 판결이 이어졌고, 심지어 노사관계 권리분쟁 조정기구인 중앙노동위원회에서는 기존의 대법원 판결마저 뒤집는 판정도 속출했다.

구체적 개혁 비전 없는 인수위

탈탄소 디지털 혁명이라 불릴 정도로 산업 구조가 급변하는 가운데 새 정부의 노동개혁에 14.2% 수준의 노동조합 우산 속 근로자들을 제외하고는 이견은 없을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그럼에도 새 정부의 노동개혁에 대해 우려의 시선을 보내는 전문가들이 적지 않다. 노동개혁 자체에 대한 우려가 아니라 노동개혁의 구체적 비전이 없는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 대한 우려다. 이런 우려의 배경에는 준비되지 않은 개혁 추진으로 ‘개혁시계’를 10년 이상 거꾸로 돌렸던 박근혜 정부 노동개혁 실패에 대한 데자뷔가 있다.

2015년 9월 15일, 대통령직속 사회적대화기구인 노사정위원회(현 경사노위)는 ‘9·15 노사정 대타협 합의문’을 발표했다. 주요 내용은 임금피크제 도입을 통한 청년고용 확대, 근로소득 상위 10% 임직원 임금인상 자제, 공공부문 정규직 전환 확대, 파견과 도급 구분 기준의 명확화, 최저임금의 지역·업종별 결정 등 종합 개선방안 마련, 주 52시간제의 단계적 적용과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6개월로 확대, 직무 중심으로 임금체계 개편 등이다. 지금으로서는 상상하기조차 어려울 정도의 파격적인, 노동시장 선진화의 단초를 마련한 합의였다.

2015년 개혁 실패 교훈삼아야

하지만 이 합의는 발표 이튿날 여당인 새누리당이 이른바 ‘5대 개혁법안’을 발의하고, 정부는 3개월여 뒤에 노동계와 지속 협의하기로 약속했던 ‘양대 지침(일반해고·취업규칙 변경)’을 전격 발표하면서 물거품이 됐다. 당시 한국노동조합총연맹은 즉각 대타협 파기와 노사정위 불참을 선언했고, 경영계에서조차 정부의 ‘무리수’에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로부터 6년, 문재인 정부는 9·15 합의 중 노동계의 요구 사항만 빼내 하나하나 현실화했고, 경영계는 탄력근로제 6개월 확대 정도에 만족해야 했다.

2015년 당시 노사관계 전문가들은 9·15 노사정 대타협을 노동시장 구조 개선이라는 ‘황금알’을 낳아줄 거위에 빗댔다. 고질적인 갈등의 노사관계와 점점 확대되는 노동시장 이중 구조를 개선하고, ‘공장법’ 시대에 머물고 있는 낡은 노동법·제도를 선진화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기대였다. 하지만 당시 여당과 정부는 1년이 넘는 산통 끝에 나온 거위의 배를 3개월여 만에 갈라버렸다. 새 정부는 작전도 로드맵도 없이 실패했던 박근혜 정부의 노동개혁 실패를 반면교사로 삼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