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수조원대 재건축, 주민에게만 맡길 일인가
서울 강남구 삼성동의 S재건축 아파트는 재건축 시장에서 대표적인 성공 사례로 거론된다. 2011년 10월 재건축 조합 설립에서부터 2018년 3월 입주까지 딱 6년5개월이 걸린 속도전 덕분이다. 시공사와의 공사비 갈등으로 공사 중단 사태가 벌어진 둔촌주공 재건축은 2009년 12월 조합 설립 이후 착공까지만 10년이 걸렸다. 내년 8월로 예정됐던 입주일도 최소 9개월 이상 연장될 전망이다. 법적 분쟁이 지속되면 언제 입주할지 장담할 수 없다.

물론 두 사업장을 단순 비교하긴 어렵다. S재건축은 조합원이 230여 명인 소규모이고 둔촌주공은 6100여 명에 달하는 국내 최대 재건축 단지다. 둔촌주공은 공사비만 3조2000억원이다. 조합원들의 복잡한 이해관계뿐만 아니라 사업 초기부터 석면 철거, 정부의 분양가 옥죄기 등 걸림돌도 많았다.

재건축 조합집행부는 회사 경영진과 같다. 시공사 선정뿐 아니라 사업에서 필요한 모든 걸 결정해야 한다. 둔촌주공은 조합이 연 매출 3조원 규모의 회사를 운영하는 셈이다. 10명 안팎인 조합 집행부가 갖는 압박감과 책임감은 상상만 해도 무겁다.

조합의 주 상대는 대형 건설사다. 정비사업만 수십~수백 건 맡아온 전문가 집단이다. 공사비로 갈등을 겪는 재건축 사업장은 둔촌주공뿐만이 아니다. 대부분 계약을 체결하고 나면 조합이 ‘불리한 계약이었다’고 문제를 제기한다. 하지만 냉정히 보면 시공사를 상대로 아마추어인 조합이 유리한 계약을 체결할 수 있을까 의문이다.

전문성이 부족한 조합이 수조원짜리 사업을 시행착오 없이 수행하는 건 구조적으로 어렵다는 얘기다. 민간 조합에만 사업을 떠맡기지 말고 정부가 체계적으로 사업을 지원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는 이유다.

지금도 지원 제도가 없는 건 아니지만 활용도가 낮다. 공공재건축·재개발은 사유재산을 제한하는 부분이 많아 사업장들이 꺼리고 사업 초기부터 전문가가 돕는 서울시의 신속통합기획은 둔촌주공엔 해당사항이 없다. 서울시는 코디네이터를 둔촌주공에 파견해 갈등 중재에 나섰지만 성과가 없었다.

둔촌주공 사태를 특정 사업장의 문제로만 치부할 수 없는 건 수조원 규모의 재건축 사업지들이 앞으로 줄줄이 예정돼 있기 때문이다. 서초구 반포주공1단지 재건축은 2조6000억원, 서초구 신반포3차·경남은 1조1277억원, 강남 개포주공4단지는 1조467억원 규모에 이른다. 1조원이 넘는 한남3구역 재개발 사업도 진행 중이다. 대형 재건축 조합에서 반복되는 갈등을 해소하기 위한 정부 차원의 해법 모색이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