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창작 뮤지컬 '쇼맨', '누군가의 대체품'인 두 사람…세대 넘어 진짜 나 찾다
나는 ‘진짜 나’로 살고 있는가. 사회적 욕망을 개인의 욕망으로 착각하고 살아가는 우리는 ‘가짜’로 살아가고 있는 게 아닐까.

지난 1일 서울 중구 국립정동극장에서 개막한 창작 뮤지컬 ‘쇼맨’(사진)은 이런 문제의식을 관객에게 던진다. 이 작품은 한정석 작가, 이선영 작곡가, 박소영 연출가 등 공연계에서 주목받는 ‘삼총사’가 의기투합해 만든 기대작으로 꼽힌다. 뮤지컬계에서 ‘소극장 드림팀’으로도 불리는 이들은 앞서 ‘여신님이 보고계셔’(2013년) ‘레드북’(2018년) 등을 함께 제작해 흥행에 성공한 바 있다.

극의 배경은 미국 뉴저지의 소도시다. 과거 가상의 국가 파라디수스 공화국 독재자 미토스의 네 번째 대역 역할을 했던 ‘네불라’(윤나무·강기둥 분)와 한국계 입양아 ‘수아’(정운선·박란주 분)가 주인공이다. 남을 똑같이 따라하는 데만 재능을 보였던 네불라는 연기자를 꿈꿨지만 실패하고 독재자의 대체품 역할에 충실했다. 수아는 양부모의 마음에 들기 위해 장애가 있는 동생을 돌보며 ‘굿걸(good girl·착한 아이)’ 연기를 하며 살아왔다. 문득 ‘누군가의 대체품이 아닌, 진짜 내 모습은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을 시작한 두 사람은 70대와 20대 나이 차를 극복하고 연대의식을 갖게 된다.

관객들은 생각하지 않고 그저 열심히 살아온 네불라와 수아의 모습에서 자기 자신을 발견한다. 자신 있는 연기를 하라고 했을 때 자신 있는 사람을 따라 하는 데 그쳐버리는 네불라를 보며 쓴웃음을 짓게 된다. 네불라는 수많은 사람을 죽이고 각종 악행을 저지른 독재자를 따라 할 때도 별다른 문제 의식 없이 ‘얼마나 똑같이 따라 하느냐’에 열중했다. 악행은 네불라와 같이 생각하지 않는 평범한 사람에 의해 일상적으로 행해진다는 ‘악의 평범성’을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다.

막이 오르며 시작된 넘버 ‘인생은 내 키만큼’은 작품 말미에서 다시 한 번 변주돼 등장한다. ‘인생은 내 키만큼 깊은 바다/파도는 계속 쉼없이 밀려오는데/나는 헤엄칠 줄을 몰라/제자리에 서서 뛰어오른다’는 내용의 가사는 애써 뛰어올라야 숨을 쉬고 살아갈 수 있는 인생의 고단함을 표현한다. 거센 바다 위로 헤쳐나오는 듯한 네불라의 몸짓은 절박하다. 숨을 쉬기 위해 뛰어오르는 찰나에 ‘진짜 나’를 마주하게 된다. 극장을 나와서도 노래와 몸짓이 가슴 속에 맴돈다.

트럼펫을 비롯해 바이올린, 첼로 등 다양한 악기를 사용한 음악이 인상적이다. 초반부 트럼펫 독주는 당당하지만 때로는 쓸쓸한 극의 분위기와 어우러진다. 뮤지컬 평론가 원종원 순천향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네불라 역을 맡은 윤나무·강기둥 배우 등은 공연계에서 연기력을 인정받고 있다”며 “‘웰메이드’ 창작 뮤지컬을 탄생시킨 제작진이 의기투합한 만큼 많은 관심을 받는 작품”이라고 말했다.

신연수 기자 sys@hankyung.com